신원 불명
집 안 내부에 대자리가 깔려 있다. 작은 창문 두 개가 딸려 있고 하얀색 책상이 창밖을 바라보게 놓여있는 방. 책상 위로 컴퓨터 스크린 두 대가 나란히 켜져 있다. 방 안에는 거울과 시계 그 어느 것도 없다.
우거진 나무와 초록색 잔디가 깔린 작은 마당이 창문 밖으로 보인다.
내가 있는 방은 2층 정도 높이의 방인 것 같다. 그렇다고 2층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높지 않아 보인다. 뛰어내리자니 조금 높고, 안 뛰자니 다칠 것 같진 않은 애매모호한 높이. 낮이 지나 저녁이 다가오면서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다.
나는 방을 두리번 거린다. 바닥에 누워 있는 여자 한 명을 애써 외면하면서. 단발머리에 넓적한 얼굴, 얇은 아치형 눈썹과 하얀 피부 그리고 수수해 보이는 눈매. 입술은 분홍빛을 띠고 있다. 옆에서 내가 부산을 떨어도 의식이 없다. 계속 그 자리에 누워있다. 얼굴은 평온한 표정인데 몸이 꽤 육중한 편이다. 하얀색 반팔과 무릎 정도 내려오는 반바지를 입고 가만히 옆으로 바닥에 누워 있다. 나는 그 여자를 쳐다보면서 "이 사람은 여기에 왜 누워 있는 거지" 하며 생각했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여기서 일을 하는 사람인 듯하다. 아니 어쩌면 우연히 이곳에 도착한 낯선 사람? 여하튼 이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
방 구조가 낯설지 않고 어딘가 익숙하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느낌. 지금의 상황이 내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어떤 신호를 주고 있는 것인가 계속 생각한다.
순간 본능적으로 이곳에서 뛰쳐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방문을 열어보니 지상과 연결되어 있다. 문밖에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한 남자. 나를 고용한 사람인가? 바가지 머리에 진한 검은색 머리 그리고 큰 코와 입을 한,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는 제법 젊은 사람. 겉모습은 세상 좋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눈빛을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 잘 알 수가 없다. 그의 허점 어느 것도 엿볼 수가 없다. 그의 양옆으로 통통한 남자 두 명이 함께 서있다. 다부진 체형을 한 남자 둘.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있고 머리가 짧은, 그 둘은 쌍둥이처럼 보인다. 나를 보고도 별말 없는 것을 보니 나는 이곳에 원래부터 있어야 했던 사람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그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다시 방 안을 둘러본다.
내가 갖고 온 옷가지와 짐이 여기저기 수북이 쌓여있다.
'아, 나는 여기서 일을 하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한다.
무슨 노예 같은 건가?
도대체 이 상황은 어떤 상황인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생각해 바닥에 얌전히 누워있는 여자에게 물어봐야겠다 생각한다.
뒤돌아 바닥을 다시 내려다본다.
그 여자가 없다.
방금 전까지 누워있던 여자가 사라진 것이다.
너무 이상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방안에 여자가 있었는데, 그리고 그 여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부산을 떨어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던 그런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내게 어떤 인기척조차 남기지 않은 채로. 그럼에도 이를 보며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방을 다시 둘러보는 나였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창문을 향해 놓인 하얀색 책상 위로 어린 여자아이가 누워있다.
어린 여자아이는 아까 그 여자와 똑같은 포즈로 누워있다. 피부관리를 하기 위해서인지 뷰티용 마스크 팩을 하고서. 죽은 건가? 아니, 숨은 쉬고 있다. 혹시 자는척하는 건 아닐까 마스크팩 눈 쪽을 향해 조용히 바라보지만 자는 것이 맞다. 그것도 아주 깊이 잠들어 있다.
'지금 이 상황은 결코 평범한 상황이 아니야'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
방문을 여니 바가지 머리를 한 사장이 (이제 편의를 위해 바가지 사장이라 부르겠다) 나를 쳐다보고는 들어오려다 만다. 그러고는 집 밖으로 빙 돌아 창문 밖에 있는 푸른 잔디 위로 가 앉아 창문을 바라보며 다짜고짜 내게 말한다.
"제가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하면 돼요"
"?"
"제가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하면 된다고. 요"
"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하지 말라는 게 뭔지를 알려줘야죠"
"... 그건 혼자서 알아서 찾아내야지. 요!"
"하지 말라는 게 뭔지 알려줘야 하지 않을 거 아닙니까"
"아무튼 그렇게 하기로 한 거니까. 요. 30일 지켜볼게. 요"
나는 그와 어떤 계약도 맺은 적이 없지만, 아니면 내가 기억하지 못한 건가?, 그는 나를 보며 계속해 '30일 동안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지 말라'라고 반복해 말할 뿐이었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향했다.
나는 다시 방 안을 둘러본다. 여전히 책상 위의 어린아이와 내가 남아 있다. 아직도 그 아이는 의식이 없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 팩이 얌전히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잠버릇이 고약하진 않은 것 같다.
똑똑.
다시 울리는 방문 노크 소리.
바가지 사장이 방문을 열고 밖에서 손짓한다. 나와보라는 것이다. 그를 따라 큰 검은색 가마솥이 있는 외부 주방으로 향한다. 쌍둥이 조수는 거기서 나와 사장을 기다리고 있다. 사장이 뭐라고 계속 떠드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사람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긴 한 건지? 대답은 한 건지? 사람들은 시늉만 하고 사라지는 듯 보인다. 그는 돈의 액수에 대해서 신이 나게 떠들었다. 얼마를 벌 것이고 얼마나 할 것인지 우리가 또 얼마나 벌었는지. 그러니 열심히 하라니. 그따위의 말을 청산유수처럼 내뱉었다. 그의 말이 격정을 향해 달려갈 때 사람들의 마음속으로는 욕망이 자라나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은 붉은색으로 물들었고 뭔가에 취한 표정들이었다.
확신이 섰다.
'도망쳐야 해'
'반드시 도망쳐 나가야 해'
나는 그날 밤, 탈출을 감행하기로 결심한다.
주방에서 대화가 끝난 뒤 잔디 깔린 마당에 바가지 머리 남자와 쌍둥이 조수, 그리고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내 방을 향해 난 창문을 보고 계속 뭔가 중얼거리고 있다. 회의라도 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들의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고 그 대화가 끝났을 때 방 안에 흩어진 내 짐을 조용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누워 있던 아이는 어느 순간 이불을 덮고 있었는데 그 위로 커다란 손이 그 아이를 계속해 보듬어주고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크고 흐릿해 보이는 손, 어쩌면 내 눈에만 보이는 것 같은, 그 손이 아이를 보호하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쓰다듬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다. 부모의 손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더러운 변태 같은 손으로 보이기도 했다. 선명하지 않았다. 회색빛을 띄고 있었다. 이도 저도 아니었다.
"씨발, 여하튼 진짜 별스러운 곳이네 여긴" (나는 실제로 개 같은 곳이라 느꼈다)
자정이 넘어갈 무렵 창문 밖으로 카메라 렌즈 두 개가 방 안을 비추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노을이 졌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카메라다. 내가 보지 않으면 나를 향해 기웃거리다 내가 보려고 하면 렌즈를 닫거나 모습을 감춰버리는 사람같이 기분 나쁜 물건. 사람이 나를 관찰하는 건지 기계가 자동으로 나는 촬영하는 건지 나를 누군가 보고 있는 듯한 시선. 뒤에서 렌즈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창문 쪽을 바라봤고 잠시 보였던 카메라나 형상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가방에 가지고 있던 짐을 하나 둘 쑤셔 넣었다.
'서둘러야 해 그들이 깨기 전에.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몰라'
나는 가방에 노트북을 비롯한 옷가지와 정들었던 물건들을 하나 둘 넣어 가져가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가방에 다 들어가지도 않을뿐더러 이러다가는 시간은 다 가버리고 밖으로 뛰쳐나가지도 못할 것 같았다. 옷을 입으려 부산스럽게 움직이면 바가지 사장과 털보 두 명이 나타나기라도 할 것처럼 느껴졌다. 가만히 방에 앉아서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다.
결국 나는 내가 갖고 있던 물건을 방 안에 그대로 둔 채 버려두고 알몸으로 뛰쳐나왔다. 왜 알몸으로 뛰쳐나온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뛰쳐나왔다.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곳에 올 때 가져온 휴대폰 하나와 혹시 모를 공격에 방어하기 위한 날이 크고 튼튼한 커터 칼 하나. 딱 두 가지였다.
창문 뒤 뜰과 마찬가지로 마당 밖으로는 넓게 깔린 잔디가 그 별장부터 공용도로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주변에는 초록색 나무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공용도로를 지나면 이어진 시내가 나온다. 나는 그 긴 거리를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서 탈출하는 것은 애초부터 막을 생각도 없었다는 듯, 그 누구도 뛰쳐나오거나 도망쳤다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애초부터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듯.
"헉, 헉, 빨리. 빨리!!"
나는 누군가 금방이라도 쫓아올 것처럼 헐떡이며 집에서 앞에 넓은 들판으로, 들판에서 내리막길로, 내리막길에서 시내로 들어섰다. 나는 정신없이 뛰었다. 추운 건 느껴지지도 않았다. 춥지 않은 날씨였다. 그저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일념으로 허겁지겁 사람들이 있는 인파 속을 향해 뛰었다.
뒤를 몇 번이고 돌아봤지만 그 어떤 것도 나를 쫓아오는 것은 없었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려면 옷이 필요했다.
이 몰골로 인파 속에 들어갈 수는 없다.
시내에 도착했을 때 체감상 새벽이었다. 아직도 장사를 한창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의 알몸을 길 건너편에 있는 노상 여자가 무표정으로 쳐다본다. 지나가는 남자들은 모른척했다. 볼 건 다 보고 보일 것도 다 보였지만 나는 보지 않았다는 그런 표정을 지었다. 여자들은 킥킥거렸다.
나는 양손으로 음부를 가리며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뒤뚱뒤뚱 걸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 마당에 체면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후! 이게 무슨 꼴이람"
"?"
"어, 형님 여기 예쁜 애들 많은데"
키가 작고 새파랗게 어려 보이는 남자가 레고머리를 하고 옆에 예쁘장해 보이는 여자 한 명을 세워놓고서 내 모습이 웃기기라도 한다는 듯 떠보듯 말했다.
"좀 놀다 가지"
그의 말투는 "네가 오고 싶으면 오는 거고 말려면 말고 나는 상관없고, 여기 이렇게 예쁜 애들이 있어. 선택은 네 자유"라고 말하는 듯 들렸다. 그런데 그 이면에 '네가 놀고 싶다고 놀 수 있겠냐' 하는 투가 서려 있다. 그 옆에 있는 여자도 똑같다. 이 상황이 뭔가 재미있다는 듯 남자와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언제 봤다고 형님? 이 미친 새끼가"
"아니 왜, 그냥 물어본 건데"
나는 그를 향해 멱살을 움켜쥐고 내 음부를 드러낸 상태로 얼굴을 몇 번이고 내리쳤다. 그는 예상외의 전개라는 듯 수그러들었고 짜증 섞인 표정 위 이마에서 피가 났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남자 네댓 명이 가운데 테이블을 두고 앉아 있다. 새파랗게 어린 얼굴을 한 남자 무리. 나는 멱살을 잡고 있는 그 남자에게 말했다.
"너 포함, 안에 있는 새끼들 다 나오라고 해. 이 새끼들이 눈에 뵈는 게 없구나. 나와. 이 새끼들아"
그런데 안에 있는, 제일 센 놈처럼 보이는 놈이 창문 밖을 힐끗 보더니 뭐라 중얼거렸고 안에 있는 남자들은 이 상황을 모른척했다. 일을 크게 만들기 싫어서 그냥 피하려는 듯이 느껴졌지만 나는 이미 분노가 차오른 상태였다.
"야, 너 안에 있는 애들이 너 안 도와주려나 보다. 어?"
"....큭,,, 크헉"
"저런 놈들을 친구라도 두고 있으니. 멍청한 새끼. 똑바로 살아. 그렇게 살지 마. 사람 봐가면서 건드려"
옆에 서 있던 여자는 이 상황에 대해 통제고 뭐고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의 멱살을 놓고 물었다.
"옷 한 벌 있으면 좀 내 와"
"옷? 네가 사 입어... 이 새끼야..."
"안되겠다"
"아!!! 잠깐잠깐 알았어. 준다고, 주면 될 거 아니야"
하얀색 긴 팔과 청바지.
나는 그 한 벌을 속옷도 입지 않은 채 입고, 계속해서 인파 속으로 향했다.
그리고 뒤를 계속 돌아봤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들과 거리가 꽤 멀어질 무렵 도로에 있는 킥보드에 올라타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시장이 있는 골목길을 지나 막다른 길에 도착해 다시 발길을 돌리기를 반복. 골목길을 들어가니 길이 막혀 있어 돌아서 나오고, 돌아서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고, 제자리에 도착하니 나는 또 길이 있을까, 하고 계속 그 주변을 맴돌고.
익숙하지 않은 얼굴의 남자가 골목길 안에서 헤매고 있으니, 이 모습이 흥미롭다는 듯, 회차를 거듭할수록 구경꾼이 늘었다. 내가 길을 찾고 있는 것을 흥미롭게 보고 있는듯했다. 골목길을 서 너 바퀴 돌았을 때, 한 노인이 이를 바라보고 있다가 나를 세워 물었다.
"나도 여기서 나가고 싶은데... 자네는 지금 길을 찾고 있는 거지?"
"..... 네"
"아... 응, 나도 나가세. 저기 저쪽에 길이 있을 거야"
"제가 먼저 나갈 테니 영감님이 저를 따라와 주세요"
"응, 알겠네. 그런데 내가 그... 자네가 타고 있는 게 없어서, 어떻게 하지?"
"그럼 제 뒤에 타세요. 제가 끌고 나가면 되죠"
"그게 되려나... 모르겠네, 내가 자네가 타고 있는 그 킥 뭐는 없어도 자전거는 있다네"
"그럼 자전거라도 타고 골목 밖으로 나가보시는 게 어때요?"
"좋네. 그렇게 하세. 그렇게 한다고 다시 골목 밖을 나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야"
우여곡절 끝에 골목밖에 있는 도로 옆 인파 속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 노인은 없었다.
나는 별 수 없다는 듯 휴대폰으로 메신저를 켰다.
내게는 몇 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내 행방을 걱정하며 왜 연락이 안 됐냐고 물어보는 여자친구, 나의 신변을 걱정하는 부모님, 그리고 지금이라도 당장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튀어오기라고 할 것 같은 동생. 그리고 몇 친구들의 연락. 연락이라고는 전부 청첩장 얘기나 자기 영업 도와달라는 얘기뿐.
조금 누그러진 마음으로 답장을 하려는 찰나, 그 순간 내 뒤로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바가지 머리 사장, 털보 쌍둥이 둘.
나는 속으로 외쳤다.
'제기랄 또 이놈들이야'
"아.... 진짜, 제가 분명 이야기했죠! 30일 동안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라고"
"엿이나 드세요. 이 새끼야"
나는 중지를 들어 그 사장을 향해 소리쳤고 이어 말했다.
"뭘 하지 말라는 건지도 알려주지 않고, 뭘 하라고 한 건지도 명확하게 지시하지도 않아놓고 무슨 30일 타령을 하고 있어. 그리고 나는 네가 어떤 놈인지도 몰라, 거기가 뭐 하는 곳인지, 내가 왜 거기에 가 있는지도 말이야. 알겠어?"
바가지는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차 안에서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러고는 미친놈처럼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똑같이 중지를 쳐들었다.
"좋습니다. 그럼 뭐 멋대로 하시죠? 잡아! 저 사람"
차 안에 있던 쌍둥이 둘이 내려 나를 뒤쫓았고, 나는 그들에게 등을 돌려 전속력으로 뛰어가며 여자친구와 부모님, 그리고 동생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내가 지금 이 메시지 이후로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갈색 별장이 있는 언덕에 날 구하러 와 줘. 나는 아마 그때 살아있을지 죽어있을지 모르지만, 힘이 닿을 때까지 살아내려 노력해 볼게. 버텨볼게. 날 믿어주고, 내가 말이 없어도 그대들 사랑한다는 건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 나는 지금 저항하고 있어. 나를 옭아매는 그 인간들로부터 벗어나고 말 거야. 사랑해! 모두."
어느 순간 나는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그리고 잠에 들 듯 깊은 꿈으로 다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