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을 박차고 나가 눈사람을 만나자
"너 펭귄 아니냐?"
마구로(다랑어) 덮밥에 얹혀 나온 달걀 노른자를 헤집어가며 군침을 쏟고 있을 때였다. 보는 것만도 불편한지 동료가 눈살을 찌푸렸다. 대학교 때 정장을 좋아하던 키가 작은 남자 동기가 하나 있었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자주 동네를 화려한 슈트 바람으로 돌아다니곤 했다. 바지 기장은 언제나 짧게 줄여진 채로. 대신 귀여운 양말을 신었다. 스웨덴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간 그는 정장을 입은 작은 동양인이었으니 꽤 눈에 띄었으리라. 스웨덴 친구들이 '조 펭귄'이라고 별명을 만들어줬다고 자랑을 했었다. 아, 나도 조 씨인데. 밥을 먹다가 헤헤 웃었다. 나는 온갖 비린내 나는 것들을 사랑한다. 자기 냄새에 대해 스스로 확실히 해 둔 것들이 기특하다.
"비위가 강한가 봐요. 비장과 위가 튼튼하면 그렇다던데." 생선구이 정식을 주문한 사람이 건네준 날달걀도, 텐동(튀김 덮밥)을 주문한 사람의 반숙 튀김도 널름널름 받아먹었다. 도쿄의 작은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일한지 6개월이 다 되어갔다. 해외 취업 장려금을 신청할 수 있다고 하여 틈틈이 서류를 준비했다. 눈알이 빠질 것 같던 지독한 야근은 프로젝트의 종료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아침 여섯 시 반 지하철을 타고, 갓 오픈한 스타벅스에 앉아 출근 전 나의 아침을 가졌다. 일을 마친 다음엔 다시 그 스타벅스에 들러 리필용 영수증을 내밀고 드립 커피를 받아 마셨다.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많지는 않지만, 결코 적지 않은 월급을 받았다. 만난 지 일 년이 넘은 남자친구와 잘 지냈다. 한국에서 친구 몇이 도쿄로 워킹홀리데이를 왔고, 주말이면 호떡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그들을 만났다. '할머니들의 하라주쿠'라는 귀여운 별명을 가진 동네 '스가모'에서는 아이스크림콘을 실수로 떨어뜨려 커피에 떨어뜨린 듯한 음료를 팔았다. 약간의 발상의 전환이 만들어 내는 귀여움에 나는 박수를 쳐가며 좋아했다.
그런가 하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되기도 했다. 내 인생이 가장 불행한 것 같은 기분에 휘말려 울고 불평하고 동네 사람들을 미워하고 식탐이 늘어나고 잘 소화하지 못하고 잠을 설쳤다. 그 모습을 한 내가 스스로 지겹고 싫었다. 초콜릿 칩이 박힌 건조한 쿠키와 같은 작은 것으로 나를 붙들었다. 반으로 썰어서 씨를 빼낸 아보카도에 온센타마고(온천 물에 익힌 반숙 계란)를 담아 얇게 저민 하몽으로 감싼 요리를 먹으러 갔다. 느끼하고 찐-한 것들이 향연이 입안에서 펼쳐졌다. 웬일인지 비린 맛이 코로 올라와 토할 것 같았다.
둘째를 임신한 친구가 아이 사진을 보내왔다. 안부를 나눴다. 통화가 길어지자 내게선 구질구질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 다 지겨워. 너무 힘들어. 나 너희 동네로 이사할까? 옆에 가서 나도 아기 키울까? 회사 못 다니겠어." 친구는 마치 제 아이를 대하는 말씨로 맞받아쳐 줬다. "뭣이 그렇게 힘들어. 누가 널 못 견디게 한다냐. 호온~내줘야겠네."
아? 말하려던 순간 머뭇거려진 것은, 그런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사로잡혀있지 않았다. 나는 그냥 언제나처럼 사서 고민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굳이 트집을 잡고 사사건건 걸고 넘어지려 하는 건 부장님이 아니라 나였다. 설사 날 괴롭게 해서 혼내줘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스스로 해야 마땅했다. 이유와 근거를 알 수 없는 심술은, 매 순간 매 사에 못 해 먹겠다고 말하는 이 마음은 남 탓할 것 하나 없이 전부 내 것이었다.
하루는 아침부터 날씨가 구무리하더니 눈이 내리는 모양이었다. 회사 메신저에 공지사항이 떴다. 세 시까지 하던 작업을 정리하고 오늘은 모두 일찍 퇴근을 하라고. 도쿄는 겨울에도 눈을 보기 힘들다. 위험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지하철 및 버스 운행이 중단된다고 했다. '참 별 것 가지고 다 예민하게 구네.' 갑작스러운 퇴근 조치만큼 기분 좋은 게 또 있을까. 지하철을 타러 갔다가 재난 수준의 인파에 마주쳤다. 계단까지 빽빽하게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발 디딜 틈도 없어 내려야 하는 사람이 문 안으로 밀려 들어갈 지경이었다. 한참을 기다려야 될 눈치였다. 얼떨결에 과장님과 밀착된 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삿포로의 호텔에서 오래 일을 했었는데, 좋아하는 가수가 있어 그만뒀다고 했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에 어렵게 취업을 했고, 일하는 2년 동안 단 3일을 쉬었다고 했다.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기절했다가 혼자 깨어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덤덤하게 이어나갔다. 나는 '지치지도 않고 독하게 일 시키더니 그 쪽 출신이였군.' 생각하며 "그 업계가 일이 힘들다고 듣긴 했어요. 과장님, 대단하시네요."라고 대꾸했다. "내가 이직할 때도 방송 일 힘들거라고 주변에서 다 말렸어요. 꼭 자기 발로 밟아봐야 그 길이 험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어요. 남 얘기 듣고 절대 모르는, 모르려고 하는. 그런 사람은 어쩔 수가 없더라고. 안 해보고 견딜 수가 없어."
나는 여덟 살짜리 앞니 같은 사람이다. 흔들흔들하다 언제 쏙 빠질지, 지붕으로 휙 하고 던지면 그 다음엔 어디로 갈지 모르게 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 끄덕거리게 되고, 어느 순간 이걸 못하면 죽겠다 싶은 간절한 기분이 된다. 불길은 자주, 그리고 쉽게 확-하고 옮겨 붙는다. 그럴 수가 있어? 싶지만 내겐 가끔씩 자주 일어난다.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하니까 더 이상 쉽게 흔들리지 말자 다짐했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신 불이 붙은 일을 소중히 다루는 법을 배워나가기로 했다. 생각보다도 더 눈이 많이 쌓였다. 달걀을 사러 나갔다가 눈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나무로 지어진 집은 추웠다. 바닥엔 지푸라기 날리는 다다미가 전부였다. 시린 발을 비비며 밥을 차려 먹는데, 친구가 눈사람을 만들자며 끈질기게 밖으로 불러냈다. 어린이도 아니고 발을 꽁꽁 얼려가며 놀고 싶지 않았다. "아, 싫다고." 짜증을 벌컥 내고 미안해서 10분만 다녀오자 마음을 먹었다. 자전거 위에 고양이가 앉은 모양으로 쌓인 눈도, 동네 아이들이 굴려놓은 눈덩이도, 아직도 그치지 않은 눈보라도 만났다. 세상에. 밖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절대 몰랐을 뻔 했다. 달콤한 간장 소스를 발라 구운 타래 당고도 사 먹었다. 집에 앉아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밀린 시트콤을 봤어도 그렇게 나쁜 저녁은 아니었겠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저녁을 살지는 않기로 했다. 삶을 포기하는 일도, 삶을 시험해보는 것을 포기하는 일도, 삶이 닥쳐오는대로 받아들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눈이 오는 밤엔 내일로 미루지 말고 박차고 나가 귀여운 눈사람을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