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의 호떡굽기를 좋아하세요?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by 조서형


도쿄에 오자마자 호떡을 굽기 시작했으니, 이 계절은 일본에서 지낸지 1년 하고도 반이 지나는 지점일 것이다.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마케팅 솔루션을 제시하는’ 나의 회사 일은 큰 프로젝트를 끝내고, 새 인원이 충원되면서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머리를 쥐어 뜯고 천근만근인 눈꺼풀을 들어올리느라 몸서리치는 시기는 한 풀 꺾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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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집 불 나듯’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철판을 밀다가 기름만 튀어도 움찔했다. 마감하는 날에는 가스는 다 끄고 나왔는지, 문은 잠갔는지, 돈 봉투는 제자리에 잘 두고 나왔는지 한참을 곱씹고 걱정해야 했다. 나는 여전히 주말이면 호떡을 구우러 갔다. 선생님이 막대기를 탕탕 내리치며 “호떡집 불났냐!” 윽박지르시던 말의 또 다른 의미를 나는 이 즈음 알게 된 것 같다.


호떡용 가루에 떡집 쌀가루를 반씩 섞어 물을 넣고 반죽한다. 젓가락에 끼운 직육면체 모양 모짜렐라 치즈를 반죽으로 덮는다. 빵가루를 덮은 다음 1분간 기름에 튀겨낸다. 기름이 빠지도록 30초 채에 걸쳐뒀다가 바삭! 하고 씹는 순간 치즈가 1m까지도 늘어나는 훌륭한 비주얼의 핫도그가 된다. 설탕에 뒹굴고 머스타드와 케첩을 얇게 뿌리면 더 맛있다. 한 장의 사진으로 소통하는 인스타그램 중심의 비주얼 시대가 아닌가. 재미있는 사진 몇 장으로 인기를 얻은 호떡집의 치즈 핫도그는 방송을 타고 도쿄에 여러 비슷한 가게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호들갑스럽고 시끄러운 상황에서 쓰이던 호떡집에 불났다는 표현은 이른 출근 길에 십 리 밖에서도 보이는 가게 앞 줄을 보면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삶의 터전인 호떡집에 불이 났으니 주인은 피를 토하는 기분으로 다급하게 외쳤을텐데, 어쨰서 그저 소란스러운 때 사용되는 문구가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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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닝’이라는 잡지에 글을 한 편 기고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주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나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무역왕이 되고 싶어서 오랫동안 닉네임으로 삼을 만큼 그 공부를 매우 자랑스러워 했었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엔 마케팅과 기획 일이 하고 싶었다.

이번에 회사 일을 한 숨 돌리게 되면서 나는 내가 속한 회사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버즈라고 부른다. 인터넷에 흩뿌려진 이야기를 다시 줏어 모은다. 모든 것은 과학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것이어야 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조금이나마 예측하자고 하는 일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해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던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불확실한 것은 확실하지 않아서 불확실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 확실하게 주장하는 건 매우 똑똑해 보이겠지만 사실 허깨비 같은 일일지 모른다. 철저히 과학적인 분석으로 만들어진 카피라이트가 정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나저나 나는 좋아하는 일에 대해 써달라고 받은 부탁에 그동안 해 온 공부와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은 고민 끝에 잡지 시즈닝에 실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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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떡 굽기를 좋아한다. 나는 길에서 호떡을 구웠다. 여름엔 찌는 듯 덥고 겨울엔 살을 에는 듯 추웠다. 주의력이 떨어지자면 화상을 입었고, 오픈이나 마감 때면 검댕 범벅이 되어 온갖 무거운 것을 옮겨야 했다. 고약한 일이었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그럼에도 호떡을 굽는 일은 사실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잘 발효된 반죽을 두 세 번쯤 줄다리기 하는 모양으로 잡아 늘인다. 엄지와 검지를 가위 삼아 빠르게 싹둑 적당량을 끊어낸다. 손목 스냅을 이용하여 반죽을 아기 엉덩이처럼 동그랗고 통통하게 다듬는다. 속을 넣는다. 양손으로 캐치볼 하듯 옮겨가며 속이 반죽의 정가운데로 가게 한다. 쏠리거나 터지지 않도록. 반죽은 오무린 손바닥 위에 반들반들하고 매끈하다게 앉아있다. 철판 가까이 다가가 손바닥을 뒤집어 반죽을 옮긴다. 속도가 중요하다. 팩 내팽개치면 기름이 튈 수 있다. 천천히 손바닥에서 흘러내려오면 애써 몰아 넣은 속이 치우쳐 버린다. 이제 도구를 이용한다. 길에서 우연히 친한 친구를 만난 반가움을 기억하자. 가운데 폭 솟아 있는 부분을 누르개로 빗겨 내리친다. 뒷통수를 맞고 얼얼해 하는 동안 뒤집개를 이용해 빠르게 뒤집는다. 정신이 들기 전에 꾸욱 누르면 소가 골고루 퍼질 것이다. 집게와 몇 개의 손가락을 이용해 잘 구워진 호떡을 종이 봉투에 넣는다. 끝. 이 모든 과정을 손님은 바로 앞에서 지켜보게 된다. 그러므로 온화한 표정과 전문적인 단호함은 필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니. 전달 받은 주제는 “뭐 좋아하세요?” 라고 물어오는 어색한 소개팅 상대만큼이나 당황스러웠다. 글쎄 뭐 독서, 영화 감상, 친구, 사진, 여행 좋아하고, 들기름으로 구운 반숙 계란 후라이 등… 좋아하다가도 또 시큰둥해지기도 하는데 무슨 얘기를 해야 좋을까. 좀처럼 글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났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왜 쉽게 입을 뗄 수 없었을까.

좋아하는 일은 잘하게 된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기대의 눈빛을 받는다. 외국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그랬다. 토익 점수를 궁금해 했고, 대뜸 아무 말이나 한 번 해보라고 했다. 사람들은 더 나아가 ‘좋아한다’와 ‘잘한다’의 개념을 헷갈려 한다. 태권도를 좋아한다. 시합에서 신나게 맞고 1회전에서 K.O패를 당한 나를 두고 사람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잘 아는 일로 생각해버리기도 한다. 어떤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 작가와 문체에 대해 빼곡히 알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꼭 “좋아만 해요.” 라고 ‘만’을 변명처럼 덧붙이고 강조했다.


좋아하는 일을 이야기 할 때 당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일은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인 것 뿐이다. 나는 찌는 듯한 여름 날에 이글거리는 철판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일을 좋아한다. 나는 추운 겨울 날 호떡을 먹기 위해 줄을 선 손님들을 보는 일을 좋아한다. 빠른 비트의 힙합을 틀어놓고 훅을 다같이 외치며 신명나게 호떡을 굽는 일을 좋아한다. 나는 내가 빚은 호떡을 철판 위에 올렸을 때 흠모의 눈빛을 쏘아 보내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배가 고플 때 구워 먹던 앙꼬치즈 호떡을 좋아한다. 호떡을 굽다 만난 남자를 좋아한다. 설탕, 치즈, 팥, 초코, 바나나, 고구마, 불고기, 김치 등의 소를 넣은 재미있는 호떡을 좋아한다. 어설픈 일본어로 호떡의 유래를 설명하고 타지 생활을 외로워하던, 호떡을 구워 팔던 그 날의 친구들을 좋아한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지 좋아하는 일을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는 호떡 굽는 일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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