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

함부로 생각하는 나는 이불 밖으로

by 조서형

어떤 일이든 그럴듯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과정이 있다. 이 때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공들여 걸어야 한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생이 하나 있었고, 한국에서 짐을 싸들고 넘어온 내 친구가 엊그제 출근을 했다. 너무 잘하려고 힘빼지 말고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열심히 하자.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서두르지 말고, 서툰 일은 주눅들지 말고 질문하자. 나는 세 달의 수습 과정을 마치고 도쿄 스타트업의 마케터로, 정식 사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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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참 피곤하게 산다

점심시간에 회사 동료가 내게 이렇게 말했을 때, 난 마침 그 얘기를 백 번째 듣는 참이었다. 평일엔 늦게까지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주말에는 하루종일 호떡을 구웠다. 일주일 내내 제대로 쉬지 못해 피곤에 쩐 채로 다시 월요일을 맞이했다. “아니 네가 대체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일주일 내내 무리하는 거야?” 아? 나는 뭔가 아쉬웠다. 뭔가 부족해서 매우 아쉬워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엄청나게 달콤한 초콜릿을 쪼개 먹고 요구르트까지 한 통을 비우면서도 아쉬웠다. “아무리 돈이 필요해도 한인타운에서 일하진 않으려고. 거기 질이 안 좋다더라.” 어느 날엔 문득 이런 얘기를 들었다.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있었는데 막상 주말에 한인타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알았다. 한 겨울에 비지땀을 쏟으며 일하는 바르고 어린 친구들의 성실함을 보고 있자니 다음 번에 그런 얘기를 들으면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나는 똑똑하지 못해서 딱 움직인 만큼만 배운다. 움직이지 않으면 사고의 반동도 덩달아 좁아진다. 가만히 지내는 편안한 날엔 남의 신발을 선뜻 신어보려 하지 않고, 들은 이야기를 겪은 것처럼 믿어버린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살게 될 삶이 아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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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헛헛함을 해결하지 못해 더 많은 일을 하는 걸로 달랬다. 친구들을 자꾸자꾸 만났고 책을 꾸역꾸역 읽었다. 일을 더 많이 했고, 멍하게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일을 더 길게 해야했다. 삿포로식 스프카레로 점심을 먹은 날에 나는 오후 세 시부터 배가 고팠다. 달걀을 두껍게 부쳐 만든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었는데, 월말의 금요일이라 일이 많았다. 기껏해야 초콜릿, 감자칩, 커피를 번갈아가며 입에 집어 넣는 게 최선이었다. 열량으로 치자면 충분하고도 남을 일이었지만, 먹고 싶은 게 따로 있는데 열량이나 영양 같은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따뜻하고 포근한 음식을 생각하며 먹는 감자칩은 바삭거리는 소금 기름 범벅 따위에 불과했다.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 게 아니듯, 마냥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인생을 사는 건 아니다. 헛소리같은 괴담을 늘어놓으며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지만 분명 중요한 부분이 빠졌다. 허전해서 자꾸만 더듬거렸다. 평소에는 있다는 걸 의식도 못하면서 이가 빠지면 그 부분을 혀로 자꾸 더듬게 되는 것처럼.


무슨 말인지 알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미 알고 있다면, 이 시간들이 단순히 버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어서 보내는 게 될 수도 있어. 아까 어쩔 수 없이 먹던 그 감자칩으로 허기가 달래지지 않는 것처럼. 무슨 말인지 알지?”

결국 일을 덜 마친 채 퇴근하는 길의 나는 아쉬움의 원천을 발견했다. 원인을 알았다면 해결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

“뭐. 대충 알겠는데.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뭔데? 일본에서 마케팅 회사 다니고 싶어했잖아, 지금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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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둬도 잘 하는 애.

“서형이는 가만히 둬도 잘하니까요.” 선생님은 우리 엄마를 위해 자주 그런 말을 하곤 했다.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할 일을 잘 하는 기특한 학생이라고 해석했지만, 엄마도 이내 알게 되었다. 어차피 백 날 말해도 시키는 일을 얌전히 하는 종류의 아이가 아니니 내버려 두는 게 낫다는 얘기였다. 여전히 나는 주어진 일 밖에 존재하는 것을 궁금해한다. 구매대행 사업을 작게 벌였는데, 상품을 내가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주문을 받았다. 덕분에 추운 날씨에 동분서주 한정판 인형을 사고, 새벽부터 장인이 만든다는 화과자 집에 줄을 서야 했다. 노력에 비해 버는 돈이 얼마 없었으나 사람들이 무엇을 가지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어 보람차다고 말하고 있는 나였다.

다시 말하지만 난 편견의 덫에 잘 갇히는 형편없는 인간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이불 밖으로 나와 해보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뱃 속으로 들어가면 똥 될 거, 뭐하러 줄 서서 사먹는거냐"라는 생각이 들 때면, 언 발을 동동 녹이며 기다림 끝에 무언가를 사는 뿌듯함을 줄을 서 보며 알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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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의 부재

“매뉴얼이 없어서 헤매는 데 시간이 다 가는 것 같아. 아주 잔업의 씨앗이야.” 치킨을 뜯으며 불평하는 주말의 내게 대기업을 그만두고 도쿄 워킹홀리데이를 온 친구는 대답했다. “대기업도 마찬가지야. 모든 일에 답을 줄 수 있는 매뉴얼이 어딨겠냐. 반복 위주의 단순 노동에나 있을까.” 매뉴얼은 열 댓 명의 작은 회사의 복잡함도 포용하지 못한다. 한 사람의 인생처럼 복잡하고 모두가 다른 일에 해답이 존재할 수 있을까. 왜들 그렇게 멘토 타령을 하는건지. 어느 날 떠오른 부정적인 질문의 답을 위해 멘토링을 해준다는 스타트업 모임에 찾아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마이크를 잡고 “선배님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로 시작하는 상담을 요청하고 있었다. 요지는 마케팅도, 스타트업도, 도쿄 취업도 다 내가 간절히 원했고, 한참을 발버둥쳐서 얻었는데 ‘이게 내 길인가’ 생각하고 있는 내가 혼란스럽다는 것이었다. “그 고민은 디자이너 17년차인 저도 10년 이상은 해 왔어요. 이 길이 내 길이다 확신이 드는 때가 올 거에요. 애석하지만 그건 최선을 다해 그 길을 걸어온 다음 일거에요. 하지만 꼭 그 날이 올 거에요. 너무 걱정 말아요.”, “잘 하고 있는 건가? 이 길이 맞는 건가? 매 걸음 고민하는 일은 고통스럽죠. 하지만 자꾸 질문을 던지는 건 잘하고 있는 거에요. 끊임없이 생각해봐야 해요. 그게 서형씨를 만들 거에요.”


역시는 역시다. 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냅다 “멘토같은 거 됐다 그래라! 사람 인생이 모두 서로 다른데, 누가 누굴 가르쳐?”라고 심술부터 부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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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그러나 내일을 무서워하며 살고 싶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하다 알게 된 친구가 있다. 어린 나이에 가수로 데뷔를 했지만, 지금은 고깃집에서 버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노래가 좋은 그녀는 코엔지에서 버스킹 공연을 한다고 촬영을 도와달라고 했다. 수줍게 길바닥에 기타를 들고 자리를 잡은 작은 친구는 노래를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끌어낸 그녀의 목소리는 아름답고 또 아름다워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추운 바람을 머금은 깊은 밤에 길에 멈춰서서 노래를 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어떻게든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눈을 뜨면 회사에 갔다.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동선의 최적화를 위해 코트를 입은 채 세수만 하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일이 나의 하루였고 나의 아침은 가물가물하다가 밤은 흐물흐물했다. 그럼에도 내 곁엔 어떤 일도 성실히 간절하게 해내는 친구들이 있었다. 가진 걸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일을 힘차게 노래하는. 영상의 기온에 머무는 도쿄의 겨울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작년 겨울, 호떡을 굽는 손이 얼마나 시려웠는지 떠올렸다. 사무실에 앉아 있다는 사실은 내가 생각을 멈추는 이유가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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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사에서 뽑은 신년 운세에는 ‘달이 떠서 어둠이 사라질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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