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감정에 힙스터의 대응법

도쿄의 스타트업에서 3개월이 지났다

by 조서형

진정한 힙스터라면 힙스터임을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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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여행을 다녀온 언니로부터 <아빠들은 오리지널 힙스터다Dad are the original Hipsters>라는 제목의 책을 선물 받았다. “이 책에 실린 아빠는 자신이 힙스터로 소개된 것이 기뻤을까?” 책을 훑어보던 친구는 책의 내용과 그다지 관계없는 듯한 의문을 내놨다. 당시에 관점을 제시하고 모든 걸 한 번 꼬아서 바라보기에 꽂혀있던 그 친구는 이어 말했다. “진정한 힙스터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면 스스로 힙스터임을 부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

책에선 말한다. 틀에 박힌 트랙이 아닌 남다른 인생을 꿈꾸고 실천하고 있다면 그가 바로 힙스터라고. 여기서 얘기하는 ‘남다른 인생’이 사실 남과 다를 바 없거나 혹은 남이 보기에 보잘 것 없거나 하는 문제는 뒷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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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알폰스 무하는 생계를 위해 포스터와 삽화 그리는 일을 했다고 한다. 훗날 그의 작품은 그가 돈을 위해 그렸던 상업적인 그림들을 통해 깊고 넓어졌다고 평가 받는다. 그런가 하면 책 <달과 6펜스>에는 가족을 버리고, 배를 곯아 가며 하고 싶은 예술에만 몰두한 위대한 예술가 스트릭랜드가 등장한다. 누구 하나를 진짜 예술가라고 말할 수 없다. 내가 갈 길은 여전히 정해져 있지 않다. 사회에서 말하는 ‘제대로 된 어른’의 틀 같은 건 사실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상황에 맞춰 좋은 판단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며칠 머리를 싸맨 끝에 내린 결론은 고작 ‘좋은, 노력, 최선’ 같은 진부한 얘기였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성패를 가르는 것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또렷한 개념과 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다. 스스로 어떤 선택을 내렸다면 그는 이미 힙스터다. 살기로 했고, 그래서 살고 있는 인생에 대해서 굳게 믿어주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힙스터의 삶일 것이다.



까끌까끌하고 포동포동한

살이 포동포동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덧 세 달이 지나 회사에 잘 적응했다는 것이며 나태해지기 시작했다는 걸 알려오는 지점이다. 나는 살찐 회사원이 아니라 근육질의 모험가로 살고 싶다(이건 직업군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무거운 몸이 불편했다.

덩달아 매사에 까끌까끌하게 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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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끌까끌거리는 대화

1) 어느 날 점심, 절 함부로 칭찬하지 마세요.

“서형씨 언어 잘하잖아요. 제가 보니까 언어에 특출난 사람이 있더라구요“

- 언어 공부를 좋아할 뿐 잘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은 제가 보니까 보통 외향적이에요. 왜 말 많고 말하는 거 좋아하고.”

- 글쎄요. 전 세계에는 70억명의 사람이 살고 있고 모두 다 다른 색을 하고 있어요.

자신이 몇백 명의 언어를 잘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제가 보니까~”라며

함부로 일반화 시킬 수는 없는 일이에요. 게다가 저는 말하기보다 읽고 쓰기를 좋아합니다.

2) 어디가 좋았는지 물어보지 마세요.

“여행을 많이 다녀오셨던데.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 제가 어디가 좋았다고 하면 거기 가시게요? 사실 그럴 생각도 없으시죠?

제가 추천하는 곳에 가면 별로인 곳을 여행할 가능성을 없애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가장 좋았다고 해도 그건 제 성격과 그 날의 기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고, 그 날 그 장소의 상태 그리고 저와 함께 있었던 사람 등 변수가 아주 많은걸요. 그러니까 저에게 좋았던 곳을 물어보셔도 별 소용 없어요 (사실 아이스브레이킹용 주제로 그냥 한 말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3) 별로 별같지 않은 소리도 하지 마세요.

“살아본 나라 중 일본은 10점 만점에 별 몇개야?”

- 내가 살아보고 내린 별점인데 그게 너한테 무슨 의미가 있어? 별의 기준이 난데?

“어두운 기운이 누나를 덮쳐오고 있어. 불길해”

불길함은 스스로도 감지할 수 있었다. 내게 뭔가 문제가 있었다. 고개를 들지 않으면 별이 뜬 걸 볼 수 없다. 나는 지불한 입장료에 대해 어떻게든 뽕을 뽑고야 말겠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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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노잼 시기의 태동

뭘 해도 흥이 나지 않는 시기가 있다. 인생 노잼기라 칭한다. 처음 그 순간을 맞이했을 때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뜬금없이 왔다가 문득 가기도 한다는 걸 알기에 이젠 담담해져 보려 노력한다. 이 시기의 단점은 몰려오는 무기력함과 함께 나빴던 지난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사건이고 사람이고 기분이고 몽땅.

나는 스무살 때 일본 카레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꺼번에 쟁반을 세 개씩 들 수 있게 되면 시급을 올려주겠다는 말에 양 손과 팔을 이용해 용을 썼다. 혹여나 비싼 그릇 떨어뜨려 깰까 손이 파르르 후덜덜 떨려도 질끈 참아냈다. 이내 손목이 자주 시큰거렸고 염좌에 인대까지 늘어나서 깁스를 해야했다. 그 이후, 엄마의 말씀처럼 무리할 때면 여지없이 손목이 경고라도 하듯 아려왔다. 커피포트를 쥔 손목이든 앙꼬를 누르기 위해 호떡 누르개를 쥔 손목이든 헬스장에서 바벨을 쥔 손목까지도, 한 걸음 더 악써서 해 볼 마음이 되면 손목부터 팍 꺾여버리곤 했다.

인대는 고무줄과 같아서 한 번 늘어나면 원상태로 복귀되는 일이 힘들다고 한다. 특히나 제때 치료받지 않은 경우 재발하기 쉽다. 그렇다면 이쯤해서 또 삐딱하게 질문. 나는 앞으로도 그럴까?

내가 상처 받고 상처 준 일들을 반복하며 살게 되는 걸까? 이전에 그랬으니까? 빽 소리를 지르는 상사와 일을 하는 데 이전의 불같은 성격의 매니저 밑에서 일하던 때의 기억이 그대로 떠올라버렸다. 나는 다시 무력감에 빠진다. 내가 혹시 사람들을 견딜 수 없을만큼 화가 나게 하는 건가? 사회라는 곳은 사실 이렇게 무서운 사람들이 있는 곳이고 그러므로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 걸까?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다들 이렇게 살기 때문에 나도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몸이 축 늘어져 있는 동안 머리는 계속 물음표를 찍어댔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건지 고민을 털어 놓으니 친구에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없듯, 뭐가 뭔지 다 알고 살 수도 없어.”

그럼 이렇게 다시 질문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혹시 뒤져보면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만약에 전 세계에 그런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면 내가 예외가 될 수는 없는 걸까? 결국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없게 되고 다 알지 못한 채 계속 살게 된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만약 행복하게 살 수 없다면 나는 계속 질문 속에 살게 되는 걸까? 질문을 하다보면 마침내 어떤 결론에 다다를 수 있진 않을까?



우린 벼가 아냐, 고개를 들어.

몸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보자. 한 번 아팠던 곳은 약해져 반복적으로 아프게 된다. 하지만 몸이라 해도 상처의 경우 회복하는 과정에서 단단한 흉터가 피부를 감싸면서 원래보다 강해지기도 한다. 나는 과거의 힘들었던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삶은 어떤 단편적인 일과 자주 비유된다. 그러나 가수 싸이는 이렇게 노래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 우린 벼가 아냐. 고개를 쳐 들어.

난 벼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저 사람은 그 때 그 사람이 아니니까.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니까. 내 마음은 내 몸이 아니니까. 손목 인대는 눈썹의 흉터가 아니니까. 내가 다녀본 나라 중 가장 좋았던 나라를 남에게 추천해주는 것이 의미가 없듯, 작년에 겪은 악몽이 돌아올까 걱정하는 것은 부질없다. 모든 것은 닥칠 때 마다 어차피 새롭게 생각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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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겨우 떨쳐낸 새벽녘의 도쿄는 신비로웠다. 문 밖을 나와 마주하는 길은 청아하고 청초했다.

우리는 매일 아침, 하루를 다르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얼마든지 변하고 나아질 수 있다. 입은 툭 내밀고 정신은 물음표 속에 갇힌 채 퇴근시간만 계산하던 나는 며칠간의 다메닝겐(だめ人間, 안 될 사람)이었지만 또 새로운 하루를 부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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