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는 일이 오늘도 어려워서
젖은 솜 되어
어렸을 때부터 들으면서 커 온 말은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게 분명하다. 흙을 파던 흙을 파 먹던 힘껏 해서 하루의 끝엔 에너지가 전부 소진되어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회사를 다니게 된 후로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매일매일 젖은 솜이 되어 침대로 빨려들 듯 잠에 들었다.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을 배우고, 아니 그 이전에 일본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오는 충족감은 어마어마했다. 너무 오랫동안 백수로 지냈던 탓인가. 흥분과 놀라움에 찬 모지리가 다름 없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동기화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나는 일하는 자체에 월급보다도 더 큰 만족감을 느꼈다. 스스로 창의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지리였다.
자아가 사라지는 공간, 살아지지 않는다
무리하는 날도 많았다. 일주일 내내 야근이 이어져 막차시간을 외워버리게 되었고 편의점 음식의 입점 시간도 알게 되었다.
“오늘 얼굴이 참 좋네?” “그럴 리가요. 눈에 소금 뿌린 것 같은걸요.”
까칠하고 거침없는 농담이 가능할 만큼 업무강도가 높은 회사였다. 자아도 잊게 만드는 마성의 공간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왜 매번 발을 들이는 곳 마다 이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걸까? 정신을 차려서야 힘이 든다는 생각을 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늘 도시를, 이왕이면 수도를 동경했지만 자리잡는 일은 여지없이 혹독했다.
매일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내용에 대해 촘촘하게 의견을 제시한다. 혼을 쏟아 부어 만든 PPT는 광고대행사에서 빨간 펜으로 여기저기 지적을 당한 채 돌아온다. 뼈를 깎는 고통으로 두 회사 주장의 중간점을 맞춰 광고주에게 제출한다. 끝이다. 후 죽을 뻔 했네 한 숨 돌리면 애매한 답장이 돌아온다. "저희 제품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하신 다음 기획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다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러느라 효율이 오히려 뚝뚝 떨어지는 이 곳은 바로 과잉경쟁사회의 핵인가.
분명 내가 그렇게나 동경하던 공간이었다. 나는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벽을 쳐다보면서 시간을 보낼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일한 것보다 조금 덜 받더라도 분주하게 눈알을 굴리고 손을 놀리며 빠르게 많은 일이 하고 싶었다. 고작 삼 개월이 지나는 시점에 나는 조금 지쳤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문제는 원점으로, 나는 나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노력도 습관'이라더니 습관적으로 노력하는 나는 단순히 노력 중독자일 뿐이었다. 뭐가 하고 싶은지 잊어버린 채 뭐든 좋으니 노력만 하고 싶은. 언제 행복할 수 있는 걸까. 한계는 매일매일 코 끝까지 와 있었다.
체력을 좀 더 길러보라는 대표님의 말씀에 입을 삐쭉 내밀었다. 여덟 시만 지나도 머리는 지끈거렸다. “아. 얼음 띄운 사이다에 몸 담그고 싶다.”, “으. 밖에 발가벗고 나가서 고함 지르고 싶다.” 이런 얘기가 입에 붙었단 건, 사무실이 답답해졌다는 걸까. 도쿄의 하늘은 너무나 파랗고 아름다워서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런 내가 나였다니, 이런 예쁜 하늘 아래 그게 나였다니!
다시 태어나기 위해 매일 아침 눈을 번쩍 떴다. 운동을 하거나 일본어 공부를 위해 일찍 카페에 갔다. 마의 3개월을 이겨내고 다시 에너지가 넘치길 바랐다. 어떤 점심엔 덮밥과 메밀국수가 같이 나오는 세트를 주문해서 많이, 아주 많이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공원에 앉아 있기도 했다.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여기저기 털어놓다가 조금 마음이 나아지기도 했다. 집 나간 탕아처럼 여섯 시 반 정각에 회사를 박차고 나온 날엔 홀린 듯이 매운탕 집을 찾아갔다. 한국인이 많아 싫다며 한인타운을 불편해하던 나는 거만한 한국인이었다. 사람들이 일군 소중한 공간에, 긴 시간을 들여 고생스럽게 만들어진 특별한 동네에 대하여 매운탕을 앞두고 깊은 경의를 표했다. 흰 밥을 가득 얹은 숟가락에 매운탕 국물이 잘 배도록 적신 다음, 기가 막히게 잘 익은 김치를 얹어 두 공기를 해치웠다. 뭐가 그렇게 나만 특별하다고 건강한 저염식 끼니 타령을 하고, 남과 다른 척 말하고 행동하고 지내왔는지. 깨끗이 비워진 완벽한 매운탕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숙연해졌다. 자주 잊어버리지만 나는 영락없이 엄마가, 할머니가 끓여주던 밥을 먹고 자란 한국 사람이다.
달달 볶이기
새로운 달(月)이 시작되면, 먼저 휴일이 며칠이나 있는지 확인한다. 주 4일제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투덜거리다가 아버지의 주 6일제 회사생활은 얼마나 고되었을지 고개를 가로짓는다. 말차맛 멘토스 (108엔)은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 어도비 애널리틱스가 돌아가는 동안 턱의 상하운동으로 모두 소진되었다. 순간들이 버거워지고 있었다. 버거운 게 당연한 건가. 남들도 다 버겁게 일 하고 있는데 나만 요란 떠는 건가. 다들 버겁게 일하니까 나도 버거워도 괜찮은 건가. 시간이 지나도, 장소가 변하고 내가 변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했지? 회사원이 아니라. 시킨 일 끝나면 집에 가는 게 살고 싶은 인생은 아니잖아.”
"이렇게 조금 무리하다 싶게 일을 줬을 때, 해내는 사람이 있고 못 견디고 그만두는 사람이 있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
회사는 내가 가장 못 견뎌 하는 포인트를 알고 있었다. 적당히 죽을 만큼 닦달하고 질책했다. 가만히 그대로도 좋은 사람들에게도 그 지적은 떨어졌다. 왜 못 잡아 먹어 안달인지. 그대로 우리 모두는 괜찮은 사람들인데.
투 잡으로 하려던 구매대행은 족족 실패했다. 막차 시간까지 회사 일도 끝내기 버거웠다. 머리가 돌덩이처럼 무거워지면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침엔 스스로에 대한 약속으로 헬스장에 다녀왔다. 친구 결혼식으로 잠깐 한국에 다녀오려 했는데 비행기를 놓쳤다.
과부하가 걸린 상태에서 주말의 해야 할 일을 태산처럼 두고 비행기표까지 새로 끊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틀뿐인 주말에 한국에 다녀오는 회사원들에게 오버스럽다고 손가락질 하던 나였다.
누나 결혼식에 서 있다가 "규호 졸업은 했니?" 라는 작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폭격을 맞는 친구를 구경했다. 그는 떳떳하진 못해도 꿋꿋했다. 사랑니를 뽑고 그 자리를 꼬맸는데 실밥이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그 옆에서 누구는 사랑니 뽑다가 너무 울어서 한 시간을 쉬었다고 했다. 유치하게 이게 뭐냐더니 귓볼을 꼭 잡고 과일이 다섯개가 되길 불꽃 튀기는 눈알로 기다린다. 우리는 할리갈리 게임에 배를 잡고 웃었다. 회사가 싫다고 자기 회사를 차린 사람은 “내일 월요일이야….회사 싫어….”를 연발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학교를 세울 계획이었는데, 계산을 해 보니 120억쯤이 필요하다며 한 달에 백 만원 꼴로 벌고 있어 아무래도 힘들 거라고 말한다. 남의 불행을 보고 위안 삼는 건 나쁘지만 이상하게도 큰 위로가 된 건 사실이다. 잘 꾸며진 터미네이터같은 자기개발서를 너무 많이 읽어서 인간적인 내가 덜 떨어져보였을지 모른다.
그런가 하면 위로는 어디에나 있었다. 지옥같은 하루를 보낼 땐 어디에도 없던 것이었다. 내가 오래 좋아하던 포토그래퍼의 한국에서 열린 사진 전시회에 갔다. 언니의 사진을 좋아하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언니의 열정과 용기를 응원하는 일이 내게 얼마나 큰 에너지로 돌아오는지, 그걸 받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느낀 점을 일일히 적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메세지를 보냈다. 대학 동기의 아르바이트 장소에 출국 전 들렀다. 구워주는 스테이크와 새우를 아기 새 처럼 족족 받아 먹었다. 귤이랑 과자까지 싸 주는 바람에 다 들고 공항으로 돌아왔다. 고독에 몸부림치던 게 전생의 일처럼 멀게 느껴졌다. 귤을 얼마나 많이 싸줬는지 출국장 앞에서 다 먹으려니 손톱 밑이 노랗게 물들었다. 난데 없는 자식처럼 잘난척 하던 것도, 이해받지 못할 거라며 단정하고선 이해를 구걸하던 일도 따뜻한 마음들 속에 사라져갔다. 나도 따뜻한 사람들이 만들어주는 따뜻한 기억들로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사람일 뿐이다.
다시 만날 날,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다 얘기해줄게. 다들 이야기 보따리 단단히 준비해 와.
‘사실은 별로 나한텐 힘들지는 않았지만 말야.이런 일이 있었다구' 우리식으로 MSG 듬뿍 쳐서 허세도 부려 보자.
이대로 살아도 이대로 살 수 있다면 괜찮을지도?
짧은 삼일 동안 일은 자가복제한 듯 폭풍처럼 늘어나 있었다. 몸살이 낫기는 커녕 내가 몸살 자체가 되어버리는 것 같은 착각에 시달렸다. 비록 매일 힘들다고 “저 힘들어요.” 징징거리는 나지만 이게 얼마나 꿈꾸던 일인지 느끼게 되는 순간들도 있다. 이대로 살아도 이대로 살 수 있다면 괜찮을지도? 고마운 도쿄의 한 주가 또 지나갔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잘 추스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