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서 말하는 겨울,

하노이 겨울은 촉촉하고 나는 나를 위해 그 계절을 났다

by 조서형

상대적으로 저렴한 베트남 물가는 독립 이후로 어깨를 짓누르던 돈 문제를 해결하는 듯 했다. 성적에 따라 대학에 가고, 대학교 이름에 따라 월급이 달라지는, 한 번 늦으면 영원히 뒤쳐지는 대열에서도 벗어나는 듯 했다. 그동안 나는 두 줄로 승객을 꽉 채운 에스컬레이터에 선 채 꼼짝없이 갇혀있었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제치고 뛰어 올라갈 일은 없었다. 그랬던 내게 하노이는 누가 되고 싶은지 자유롭게 결정해도 된다고 말했다. 부지런히 기웃거렸고, 어리고 열정에 달뜬 채 일자리를 얼마든지 제안 받았다. 그렇게 나는 처음 공항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하노이에 있던 두 달 내내 흥분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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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어 몇 단어로 원하는 바를 간단히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페이스북 커뮤니티에서 20만원을 주고 씨티백 오토바이를 샀다. 나는 하노이 안에서 점점 더 가볍고 즐거웠다. 귀국하지 않을 명분은 이로써 충분해 보였다. 두 달의 무역회사 인턴 체험이 끝나자 아무 꼬투리나 잡아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딱 열 달 뒤로 미뤘다.


롯데 타워 5층 고깃집에 동갑내기 한국인이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반가운 나머지 대뜸 가게로 찾아갔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네가 하늘이니? 너도 스물 한 살이야? 하노이에 오래 있었다며? 여기 겨울이 그렇게 춥다고 들었어. 나는 여기서 겨울을 보는 게 꿈이야. 아마 이루어질 것 같아서 정말 기뻐. 만약 너무 추워서 죽더라도 한국의 친구들이 ‘야. 조서형, 하노이에서 얼어 죽었대.’라는 소문이 나면 웃길 것 같아.” 하늘이는 지친 눈으로 빤히 날 내려다 보다가 겨우 “응” 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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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이불 밖으로 나온 발이 시렸다. 제법 겨울이 된 모양이었다. 밖으로 나가니 패딩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국의 친구들이 웃는다. 하핫. 그 더운 나라에서 겨울이 추워봤자지. 아니다. 오토바이가 이동수단인 이 도시에서 느끼는 겨울 바람은 엄살 보태 가히 살인적이다.


하노이의 물가에 적응이 되면서 넉넉하던 마음이 솜사탕처럼 사라졌다. 그 자리엔 꼿꼿이 박혀있던 심지만 덩그러니 남았다. 나는 추운 날씨에 약하다(더운 날씨에도). 엄마가 특별히 겨울이면 배고프고 춥게 키우진 않았을텐데. 어쨌든 공기가 차가워지면 왠지 마음이 덩달아 가난해진다. 도란도란 따스한 모닥불 앞에 모여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고 있는 가족을 유리창 넘어 바라보는 성냥팔이의 마음이 된다. 하노이에 다가온 겨울에 나는 또 그런 마음이 되었다. 가습기 속을 걷는 듯 촉촉한 안개를 뚫고 오토바이를 타느라 손이 시렸다. 길거리 여기저기서 언니들이 구워 파는 옥수수 냄새는 황홀해서 허기졌다. 서러움이 울컥 찾아올 때면 더 열심히 지냈다. 일에 매달리고 친구를 찾아 만나고 신경질적으로 글을 뽑아내고 운동을 하고 다시 아침이 오면 돈을 벌었다. 잠시만 쉬어도 비참하단 생각이 튀어나왔다. 정말 비참한 건지 비참하고 싶어 이러는 건지 이젠 헷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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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을 등에 업고 골골대며 하루 일을 마쳤다. 코 끝이 찌르르했다. 재채기가 시작될 징조다. 눈물이 쌜룩 나왔다. 이내 퐁퐁. 엄마는 내게 품격 있게 살라고 했다. 아무 일이나 덥석 물고 끙끙거리며 이고 가려 하지 말고, 먹을만한 거 하나만 집어 도도하게 살라고. 누워서 코를 훌쩍이며 생각해본다. 외국계 대기업에 가서 맵씨나는 서류가방 들고 또각또각 해외 출장을 다녔어도 좋았을 걸.

그럴 수 없었던 이유를 알고 있다. 나는 못내 아쉬웠다. 뭔가가 더 있을 것 같아 궁금했다.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딛으면 그렇게 2층으로 올라가 버릴테니까. 계단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동안 나는 앞사람 뒷통수 밖에 볼 수 없을테니까. 어리고 건방진 나는 굳이 흙길을 꾸역꾸역 걸어오르며,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저 위엔 뭐가 있을까?” 기대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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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대체 일이 몇 개야? 투잡을 넘어 팔잡(8-Job)이네. 진짜 독하다.”

칭찬이 아니었다. 친구도 듣기 좋으라고 한 이야기가 아니었을 거다. 몸살은 급성 후두염이 되었고 지독한 열에 시달렸다. 입을 열어 말을 하려 하면 왕 구슬을 삼킨 듯 목구멍이 묵직했고, 기침을 하면 속에서 화산 재가 쿨럭이는 것 같았다. ‘네 시간 자면서 공부하면 대학에 떨어지니 세 시간만 자’란 얘기를 들으며 자랐는데, 요 몇 년 사이에 분위기가 변했다. 영화도, 드라마도, 책도, 사람들도 ‘휘게’를 찾고 ‘라곰’을 외친다. 소박하고 균형적인 생활을 하며 오롯이 자신을 들여보자고 말한다. 이제 열심히 달리는 사람은 바보다. 나는 열심히 밖에 모르는 바보다. 죽어라 할 줄만 알고 삶을 잘사는 요령이 없다.


아니, 열심히 사는 게 왜? 가슴 깊숙이 있던 노래를 절절하게 부르고 싶다. 머리가 쟁쟁 울리고 목소리가 서서히 떨려오도록. 멈추지 않고 눈썹 사이에 찡긋 인상을 쓰면서 계속. 가까스로 나의 끝까지 닿는 느낌이 좋다. 나는 열심히 하는 날 좋아한다. 노래를 마치고 눈꺼풀을 살짝 들어올렸을 때 사람들의 일렁이는 눈과 재잘대는 박수와 환호를 마주치면 좋겠다. (이왕이면 기타 가방 안에 돈도 좀 쌓였으면 좋겠고.)


유명해지기 전엔 돈을 벌 수 없다. 움직이는 만큼 돈이다. 열심히 벌수록 열심히 나간다. 병원비가 깨졌다. 아프는 바람에 학원 수업도 놓쳤다. 애걸복걸 성실하게 움직이는 건 추하다. 움직이지 말자. 숨죽이고 유명해지길 기다리자. 가만히 있자. 사무실도 나가지 말고, 학원도 과외 수업도, 아르바이트도 안하면 그만이다. 블로그에 주접스런 글도 그만두자. 나 없이 다들 잘 해봐라. 하노이 겨울은 우중충하고 나는 누워서 이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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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의 겨울은 쌀쌀하고, 전기장판은 꼭 필요하다. 몇 시간 이불 속에 눈을 흘기며 웅크리고 있더니, “이 겨울은 내가 꼭 살고 싶던 겨울이었어!” 펄쩍 일어선다. “잠은 죽어서 자라.”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버릇처럼 하던 소름 끼치는 말을 내가 담아본다. 거울을 보면서 눈알에 힘주고. “구르는 돌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내친 김에 앞 구르기도 한 번 데구르르. 아니, 대충 살고 가장 큰 상처를 받을 건 나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 남으로 오는지 호기심이 일어 봄 찾아 남쪽으로 나부대며 떠날 사람도 나다. 하노이 겨울은 촉촉하고 나는 나를 위해 애를 쓰며 그 계절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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