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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드링크 Jun 13. 2023

친절, 어디까지 해야 하나요

일련의 두 가지 사건을 겪고

지난주. 내 오픈 카톡 프로필로 왠 모르는 사람이 문자를 보냈다.

카카오톡명 화난 제이지: 약사님?


나도 모르게 내 오픈 프로필은 공개로 되어 있어 '약사'로 검색하면 나오는 사람 중 하나였나 보다.

약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길래 물어보시라고 했더니, 좌약을 샀는 데 사용법을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글로나마 친절하게 알려드렸다.

화난 제이지: 고맙습니다. 정말 친절하시네요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몇 시간 후 또 문자가 왔다.

화난 제이지: 이거 자꾸 튀어나오는데 어떻게 밀어 넣어요

이 문자도 늦게 봤더니... "약사님?" "이거 설명해 주세요.."이런 식으로 문자를 몇 개나 더 보냈다.

내가 핸드폰을 붙들고 사는 것도 아니고.. 그때부터 약간 느낌이 싸했다

그래도 글로 설명할 수 있는 한 설명을 하고 정 모르시면 산 약국에 가져가시라고까지 하고 넘겼다.

그런데 다음날 낮에 또 문자가 온다

화난 제이지: 약사님, 이거 넣을 때 오른쪽으로 밀어요? 왼쪽으로 밀어요?

순간 너무 화가 나기도 하고 약간의 희롱을 당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답변을 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이렇게까지 자세히는 안 물어봐요.  산 약국에 가서 다시 여쭤보세요. 그리고 제가 계속 답변해드릴만큼 시간이 없어요"

이렇게 하고 그 대화방을 나왔다.  물론 약사로 검색하면 안 나오게 하는 것도 같이 했다.

뭔가 되게 기분이 이상한 느낌. 다른 약도 아니고 좌약을 설명해 달라는 것도 왠지 기분이 나쁘고..

그리고 어제는 또 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작가님?"

알고 보니 우리 집에 택배를 배달하는 우체국 택배 택배기사 아저씨란다. 자기가 맡은 구역에 작가가 세명쯤 사는데 내가 제일 친절할 것 같다면서 별안간 책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 묻는다. 자기도 작가가 꿈이란다.

솔직히 내 개인정보로 연락한 것도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우리 집에 택배를 가지고 오시는 분이라길래 이메일 주소를 주시면 제가 아는 한 내용을 간단히 적어서 보내드린다고까지만 말하고 끊었다.

여기서 개인정보 어쩌고 화를 냈어야 하나? 나도 모르게 쓸데없이 친절했단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한참 후 아이들과 정신없이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또 카카오톡으로 문자가 와 있다.

자기가 쓴 시라면서 읽어봐 달라며 "저 잘 썼나요?" 이렇게 보낸 걸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소름이 쫙.. 내가 자기 친구도 아닌데..

작가이자 약사로 살며 모르는 사람들에게 고맙다 감사하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낯선 두 명이 비슷한 시기에 연락해 오는 것이 (둘 다 남자임) 많이 무섭다~

친절도 한계가 있는데 내가 과잉 친절을 베푼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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