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국가대표 웨이크보드 선수, 현재는 최고의 지도자를 꿈꾸다
아버지가 다양한 해외 스포츠를 경험하셔서, 국내에 웨이크보드가 생소하던 시절 남들보다 빨리 접할 수 있었어요. 7살 때 처음 접했는데 한 번에 물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주변에서 보게 되었고, 웨이크보드에 소질이 있다며 선수를 권해서 자연스레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와 남동생 2명이 함께 같은 운동을 하는데, 형제들이 같이 운동하다보니 서로 자극제가 되고 집에서도 운동 이야기를 자주 한 덕분인지 국가대표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성장하기 위한 마인트 컨트롤을 늘 했던 것 같아요. 학생이기도 하고 선수이기도 했으니 두마리 토끼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웨이크보드는 해외 선수들이 많은 종목이다보니, 국제 대회에 나갈 때 학생들이 시합장에서 시험공부를 하는 경우를 자주 보거든요. 선수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미래를 그려보고, 그 중 선수라는 직업이 하나의 과정이지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어서 그 모습에 저도 자극을 받아 더 바쁜 학창시절을 보낸 것 같아요.
매일 6시에 기상해서 수업 1시간 전에 부족한 부분을 공부하고, 정규 수업이 끝나면 경기도 외곽으로 이동해 웨이크보드 훈련을 2~3시간 하고, 저녁 8시 30부부터 8시 30분까지 체력 훈련, 10시부터 11시까지 취약한 과목 과외 후 12시부터 2시까지 복습 학습 또는 문제 풀이를 했고요.
저는 한쪽 귀와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장애가 있어요. 국가대표 선발전이 치러지던 날,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상대선수의 지도자가 '너는 장애인도 못이겨?'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장애인을 못이기냐는 표현이 마치 '홍승현 같은 장애인도 못이기냐'라는 표현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더라고요. 차별은 언제 어디서 꼬리표처럼 따라붙었어요. 제가 그 차별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장애가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는 방법밖엔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것에서도 뒤지지 않기 위해 두 배, 세 배 강도 높은 훈련과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웨이크보드와 스노우보드 자체가 물에서 타는 서핑을 즐기던 서퍼들로부터 시작되었다보니 서핑을 즐기면 웨이크보드를 즐기고, 스노우보드를 즐기면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한 종목에서 파생되어 서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기도 하고요.
또 계절의 영향을 받는 운동이다보니 겨울에는 스노우보드, 여름에는 웨이크보드를 타면서 보드 그 자체의 감각을 익히며 훈련해요. 웨이크보드로 시작했지만, 보드라는 하나의 장비로 자연스럽게 다양한 종목을 하게 되면서 보드라는 하나의 장비를 통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게 되었고요.
Go Getter, A Better Life.
저의 스승이자 아버지의 아이디어로 14년 웨이크보드 강습 재능기부를 시작했어요. 그 당시 대중들에게 웨이크보드는 생소한 종목이기도 했고, 다양한 빠지가 생겨났지만 안전사고 등을 안일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국내 웨이크보드 초기 멤버라는 사명감같은게 있어서 웨이크보드를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방식으로 알려주고자 시작하게 되었어요.
제 1회 재능기부 캠프를 마무리하고 다음시즌을 준비하던 중 스포츠콕을 알게되었고, 스포츠콕이 추구하는 가치(배리어프리 스포츠, 생활체육 저변 확대 등)와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가치관이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에 먼저 연락을 했어요. 15년 당시에는 서비스 출시도 되기 전이었는데, 직접 대표님을 만나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미팅을 하며 스포츠 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던 것들을 만들어갈까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그때의 인연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하며, 제가 꿈꾸던 방향을 조금씩 시도해보면서 선수에서 지도자로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되었어요.
청각장애와 시각장애를 갖고 계신 분들을 교육했던게 아직도 생각나요. 시각장애를 가진 멤버에게는 여러 감각을 활용하여 웨이크보드를 탈 수 있도록 동작 하나하나 다 느껴지도록 손으로 동작을 만지게 하여 자세를 익히는 감각을 이해하도록 지도했어요. 물 속에서는 제가 서포트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중간중간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으셨고 하루 만에 물 위에 뜨면서 자연스레 라이딩까지 성공까지 하셨거든요.
저도 물 속으로 들어갈 때 보청기를 빼고 운동을 해서 무엇보다 다른 부분에서 감각을 익히려고 많이 노력하는데요. 이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공감이 되니 그 어떤 교육부다 뿌듯했던 것 같아요. 장애에 유념하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기 위해 노력했던 멤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지도자가 되고자 했던 이유를 또 한 번 생각할 수 있었어요.
어릴 적에는 '폼생폼사'라는 집의 가훈을 따랐고, 대학 시절엔 나중에 죽을 때 '아, 인생 후회 없이 즐거웠다' 하는 삶을 살아야지 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그래도 목표하는 기준을 두고 하루하루 주어진 것을 꾸준히 하면서 살아가려고 해요. 웨이크보드는 정말 많은 시도와 실패 끝에 기술이 성공하거든요. 실패한 기술들을 생각하면, 이 기술이 가능할까에 대한 두려움과 막연함이 오는데 그냥 하루하루 꾸준한 연습을 하면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성공하는 순간이 오거든요. 그래서 저도 하루하루 주어진 걸 잘 해내다보면 제가 목표하는 삶에 도달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하려해요.
유쾌함.
강한 힘.
그리고 보기보다 다정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