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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민 Mar 11. 2020

보라스 코퍼레이션이 6시 이후 전화를 받지 않는 이유

딱 한 명 남은 클라이언트를 위해 '제리'는 그의 인생에 관심을 가진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슈퍼스타로 등극한 스타플레이어는 시합 후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서포터 해준 '제리'를 찾는다. Where is Jerry? 둘은 락커룸 뒤에서 뜨거운 포옹을 나눈다.

- 영화 제리맥과이어 한 장면 -
미국에는 스포츠를 소재로한 영화,드라마 제작이 활발하다


20여년 전 개봉한 제리맥과이어 한 장면이다. 물신양면으로 도와준 에이전트와 함께 기뻐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에이전트 산업이 스포츠 산업의 원동력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에이전트 제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 어느덧 20여년이 흘렀다. 오늘날 대한민국 현실을 살펴보자.


에이전트 능력은 연봉 계약이 핵심


에이전트 가장 큰 의무는 연봉계약(스폰서, 서브스폰서, 인센티브 포함)이다. 혹자는 선수 몸값은 에이전트가 아닌 시장이 결정한다고 이야기 한다. 에이전트 능력으로 선수에게 대박을 안겨주는 일이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선수 몸값이 시장의 힘만으로 결정되기도 어려운 일이다. 실제 에이전트 시장은 모든 정보가 오픈 되어 있지 않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선수 몸값이 시장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건 반만 맞는 이야기다. 에이전트 계약은 정말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가장 큰 변수로 오너(회장)나 의지를 꼽는다. 때문에 가능하다면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서라도 클라이언트(선수)를 다각도로 부각시켜야 한다. 한 손에는 데이터를 나머지 한 손에는 오너 취향을 파악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 에이전트는 계약 과정에서 자신의 클라이언트가 시장가에 비해 손해보는 계약을 해서는 안된다. 훌륭한 에이전트는 숫자로 이야기 한다. 클라이언트와 에이전트 가치는 숫자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선수, 선수 가족 스포츠 에이전트에 대한 기대 수준 낮아


대다수 선수나 선수 가족들은 크건 작건 에이전트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혹자는 에이전트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혹자는 에이전트 전문성이 낮다는 이유로, 혹자는 에이전트 성실성을 문제 삼아 불만을 표시한다. 그런데 컴플레인의 상당수가 연봉과 별개인 경우가 많다. 스포츠 에이전트 근속 연수는 3~5년 이내로 다른 업종에 비해 짧은 편인데 실제 특정 선수를 맡고 있는 에이전트가 단기간 내 바뀌거나 이직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경험상 근속 연수는 선수 스타성과 비례한다.


국내 스포츠 에이전트 근무환경을 살펴보자.


국내 에이전트는 사회 초년생일 수록 거짓말 약간 보태 근무시간이 거의 무색할 정도다. 일년 365일 24시간 선수를 응대하는 집사라 보면 된다. 선수 에이전트 제도가 가장 활성화된 국내 골프 시장을 예로 들자면 에이전트는 소속 선수와 전 경기 일정을 함께 소화하며 경기장 내외로선수를 지원 한다. 에이전트가 경기장에 모습을 자주 비출수록 선수와 가족들은 만족감을 표한다. "우리 선수를 신경 써주고 있구나!" 이른바 '엄마 조항(Mama clause)'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엄마 조항(Mama clause)': 미국 대학농구 선수가 NBA진출할 때 일부 계약의 경우, 팀이 오프시즌에 선수들의 대학 및 대학원 등록금, 졸업 시 보너스를 지불하는 경우가 있다. 한 에이전트가 이 관행을 '엄마 조항(Mama clause)'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이 조항이 선수 어머니들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선수 및 구단도 선수들의 교육과정 이수 인센티브가 양측에 이롭다고 의견을 같이한다.


반면 IMG와 같은 거대 에이전시에 소속된 에이전트들은 메이저 대회나 우승이 가시화 되는 시점에 잠시 얼굴을 비출 뿐이다. "그런데 왜 매번 대회장에 오세요?" 해외 에이전트 눈에 우리가 신기해 보였던 모양이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선수 담당자는 오후 6시 이후에는 클라이언트(선수)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만약 이들이 우리 근무 환경에 대해 이야기 들으면 아연실색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내 선수들은 스포츠 에이전시가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길 기대한다.



대한민국은 "에이전트는 선수가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지배적


실제 선수는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경기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 에이전시에 상당부분 의존하려는 경향이 짙다. 계약서 상 에이전트 주요 업무는 스폰서 영업(메인-서브 스폰서 유치), 용품 계약, 선수 초상권을 바탕으로 한 프로모션 활동 등이다. 경우에 따라서 특별 항목을 신설해 계약 조건에 포함하기도 한다. 특별 항목은 대게 그해 성적이 특출하게 좋다거나 명예로운 상을 받을 경우 특별 보너스를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계약서 상 에이전트 의무를 명기한 맨 마지막에는 대게 다음과 같은 항목이 포함된다. 기타 스포츠 에이전트와 관련된 제반 업무로 선수 건강관리, 신변보호, 이미지 및 가족 관리가 그것이다. 계약서에 명기된 기타 업무로 인해 에이전트는 선수는 물론 선수 가족 대소사까지 챙겨야 한다. 문제는 기타 업무의 범위가 불분명하고 즉흥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해외 에이전트 상황을 살펴보자.


해외 에이전트는 클라이언트가 계약상 맺어진 일 이상을 요구 할 경우 건바이건으로 수수료를 청구한다. 국내 에이전트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명목 하에 모든 것을 처리하는데 해외 에이전시는 움직이는 모든 행위를 비용으로 간주하고 수수료를 청구한다. 수수료 청구는 단순한 업무 대행으로 발생한 수익을 떠나서 업무 항목과 범위가 보다 투명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선수가 에이전트사에 불만을 표시하는 건 의뢰한 일을 시간 내 처리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모든 업무처리가 수수료 베이스로 이뤄진다면 정말 중요하거나 긴급한 일 위주로 일 처리가 가능해 진다. 에이전트 입장에서는 업무 범위가 줄어들고 일에 우선순위가 생긴다. 어느 정도까지 수수료 대상에 포함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발생 할 수 있지만 수수료 존재는 지금하고 있는 일이 '비지니스'에 일부분임을 깨닫게 한다. 에이전트와 선수가 형 동생 관계에서 벗어나 '프로페셔널'한 관계로 재정립 되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대한민국 스포츠 에이전시가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다 세밀하게 업무 항목을 설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상호 권리와 의무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책정되는 수수료는 선수와 클라이언트 간 과도한 개입을 줄이고 업무 성격을 '사적 영역에서 '비지니스 영역'으로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한다.

'선수가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명분하에 모든 것을 부탁하거나 하려고 들지 말자. 영화처럼 선수에게 영감을 주는 말과 위로 그리고 정신적 멘토로서 함께 할 수 있는 관계는 서로가 맺은 약속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환경에서 시작된다. 선수와 에이전시는 한배를 타고 있다. 배를 타고 있는 목적을 잊지 말자. 선수와 에이전트는 선장이 되고자 '키'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기 위해 한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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