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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민 Mar 27. 2020

비인기 종목 전성시대 "결국 Feeling"

지난 시간에 비인기 종목 이기는 하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피겨, 격투기, 씨름, 컬링 종목의 성장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들 종목은 큰 틀에서 '스타'와 '미디어'를 바탕으로 성장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비인기 종목마다 처해진 상황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특정한 성공 방정식을 쫓기에 무리가 있다. 하지만 성공은 상수가 아닌 변수이기에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성공'여부가 아닌 '성장'그 자체에 있다. 비인기 종목들이 어려움을 딛고 성장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이 될 것이다. 이 글은 비인기종목이 척박한 한민국 스포츠 환경 속에서도 어려움을 이겨내고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출발했다.


지금부터 비인기 종목 성장과정을 팬덤fandom이 형성-확산-유지되는 과정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 팬덤fandom: '팬덤'이라는 단어는 'fanatic'이라는 열광자, 광신자라는 뜻에 'dom'이라는 세력범위라는 뜻이 합쳐진 합성어다. 특정 스타나 장르를 선호하는 팬들의 집단을 일컫는다.


먼저 팬덤이 형성되는 단계다.


팬덤 형성 중심에는 늘 스타가 함께한다. 피겨 김연아, 격투기 최홍만, 컬링 송유진이 그들이다. 씨름은 '태극장사' 선수들이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선수들은 비인기 종목이 대중들에게 부각 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미디어 노출에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실제 비인기 종목 선수일수록 미디어 노출에 부담을 느끼는 선수들이 많은데 평소부터 미디어 트레이닝을 할 필요가 있다. 국내 무대를 떠나 LPGA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인지선수는 "라운드 후 혹시나 있을 수 있는 공식 인터뷰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예상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 라운드 도중 중얼거리며 연습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스포츠 선수들이 인터뷰 연습을 한다든지 대중 연설 훈련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능을 포함한 방송 출연 역시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김연아 선수는 선수로서 한창 주가를 달리고 있는 시점에 무한도전, 김연아 무릎팍 도사, 키스 앤 크라이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과 출연해 피겨 종목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은메달 획득 후 많은 팬을 확보한 팀킴 역시 연예가중계, 무한도전, 마리텔 등 꾸준히 방송에 출연해 컬링 종목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스타 선수 방송 출연은 경기력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최홍만 선수는 K-1무대에서 당대 최고 파이터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짧은 시간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 이후 예능 활동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었다.

비인기종목 흥행의 시작은 선수로부터 시작한다. 선수로부터 시작한 흥행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해 관계자인 협회, 연맹, 선수, 미디어, 에이전시 등이 보다 유기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협회-연맹은 선수 초상권을 가지고 있는 프라퍼티 오너로서 잠재력 있는 스타를 발견하고 키워야 한다. 선수는 해당종목 홍보대사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경기장 안 밖에서 행동을 신중히 해야 한다. 미디어는 1등은 아니지만 해당 종목에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선수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려야 한다. 에이전시는 선수가 경기 외 다양한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줘야 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그 어떤 거대 팬덤도 시작은 미미하다. TV에 얼굴 한번 내밀지 못한 홍대 밴드도 소수의 열정적인 팬덤이 있기 마련이다. 열정적인 팬들은 자발적인 바이럴 활동에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팬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좋아하는 가수를 홍보하는 시대임을 잊지 말자.


둘째 팬덤이 확산되는 단계다.


바야흐로 미시어 시대다. 팬덤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미디어 힘이 절대적이다. 현대 스포츠는 해당 종목이 정규 편성 되었다는 사실과 별개로 해당 종목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부각시킬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투기 종목은 경기장 외 비하인드 스토리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드라마틱한 요소를 부각시키는데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에서는 2011년 XTM에서 방영한 '주먹이 운다'가 큰 인기를 끌면서 국내 MMA단체인 로드FC 인지도를 끌어 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2017년에는 격투기 소재 프로그램인 '겁 없는 녀석들'이 MBC지상파를 통해 방영되었고 최근에는 SBS Fil에서 새로운 격투기 프로그램(맞짱의 신)이 방송 중이다. 

국내 격투기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UFC의 TUF(The Ultimate Fighter)나 복싱의 컨텐더(contender)와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했다. UFC인지도는 2005년 TUF(The Ultimate Fighter)서바이벌 격투 프로그램이 대박이 나면서 크게 올라갔다. 최근에는 데이나 화이트 컨텐더 시리즈(Dana White’s Contender Series)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초기 격투기종목은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미지로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격투기 소재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링 밖에서 선수들이 훈련하고 도전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다각도로 부각하면서 격투기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실제 격투 프로그램을 통해 인지도를 쌓은 선수들이 메인 이벤트에서 선전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메인 이벤트와 방송 프로그램 간 시너지가 극대화 되었다.


씨름은 유튜브를 통해 활성화된 케이스다. 2018년 8월 유튜브에서 시작된 씨름 열풍이 공중파 프로그램 '씨름의 희열'을 통해 확산되기까지 약 1년 3개월 정도 시간이 걸렸다. 공영방송인 KBS와 민속스포츠인 씨름은 대중성을 바탕으로 좋은 궁합을 보였다. '씨름의 희열'을 주목해야 하는 건 단순히 젊고 잘생긴 선수들이 힘겨루기 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씨름 자체가 가진 매력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시합에 어떤 기술이 들어갔는지 하나씩 배워갔다. 시합 이면에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느끼는 감정도 세심하게 표현했다. 이제 씨름 종목 선수들은 각각의 캐릭터를 갖게 되었다. 초대 장사로 등극한 임태혁 장사. 작은 체구지만 최고 승률을 자랑하는 윤필재 장사, 실력과 비쥬얼을 겸비한 손희찬, 이승호 장사, 시크한 매력을 뽐내는 박정우 장사, 강호동이 롤 모델인 전도언 장사, 부상투혼을 보여준 허선행 장사, 씨름 인기 선봉장 황찬섭 장사와 같이 씨름의 희열에 출연한 씨름 선수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캐릭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씨름의 희열'은 팬덤을 확산시킨 대표적인 방송 프로그램이 되었다.

국내 미디어 환경은 전통적인 방송시장이 아직 건재하고 넷플릭스, 유튜브와 같은 인터넷 기반 미디어 시장으로 외연이 확장되고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미디어는 제작 편성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경기 자체가 주는 재미와 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반면 뉴 미디어는 방송 시간, 편성, 제작, 송출에서 자유롭고 무엇보다 화제성에 강점을 보인다. 다만 화제성만큼 휘발성 역시 강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비인기 종목에 대한 노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환경에서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은 비인기 종목들 에게 새로운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다만, 뚜렷한 목적없이 유튜브가 대세라 무턱대고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식은 곤란하다. 자신의 종목이 어떤 미디어 환경 속에서 팬덤을 끌어 모을 수 있을 지에 대한 전략적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팬덤이 지속성을 유지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결국 새로운 스타 탄생이 관건이다. 스타는 스타로부터 탄생한다. 비인기 종목일 수록 장기적으로 '키즈 세대'를 키우려는 순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협회, 연맹은 스타가 탄생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스타가 탄생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단기적으로 이루기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유소년 활성화가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임을 감안한다면 꼭 이뤄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도 관건이다. 해당 종목 인기는 국제 대회 성적과 비례한다.

씨름의 경우는 좀 특별한데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스포츠라 비교 대상이 없다. 이러한 점이 전통 민속 스포츠인 씨름에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종목(몽골 부흐, 중국 솔각, 우즈베키스탄의 크라슈, 일본 스모, 스페인 루차)을 제도화해 씨름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는 분위기다.


비인기 종목 활성화를 위한 한가지 팁을 더하자면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을 뒤흔들 느낌표가 있어야 한다.


'척' 봤을 때 '확' 바뀌었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느낌'에는 다양한 감정이 들어있다. News(새로움), WOW(놀라움), HELP(도움), 충격(SHOCK) 등이다. 씨름의 희열은 기존 씨름이 가지고 있는 칙칙한 이미지를 벗어 던졌다. 선수 소개부터 등장까지 세련된 씨름의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무대, 조명, LED, 특수효과등을 활용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감각적인 씨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에 반해 컬링은 온라인상 뜨거운 열기와 달리 현장 분위기는 냉랭하다. 실제 국내 컬링 경기장은 오직 경기만을 위한 곳으로 관람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해외 스포츠의 경우 팬들로부터 발생하는 티켓 판매, 먹거리, 머천다이징이 주수입원으로 분류되는데 비인기 종목이 한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현장 관람객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미디어 친화적인 종목이라는 이유로 팬을 등한시 한다면 진정한 성공의 반열에 오를 수 없는 것이다.


이상으로 비인기 종목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최근 당구가 프로화 되었다. 캐롬 사상 최초 대한민국을 종주국으로 한 국제프로스포츠 기구 탄생이다. 당구는 피겨, 격투기, 씨름, 컬링 사례를 보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볼 수 있다.

당구 스타가 존재하는가?

당구 선수들은 미디어 친화적인가?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당구 관련 인기 프로그램이 있는가?

당구와 가장 어울리는 미디어 플랫폼은 무엇인가?

'키즈 세대'를 위한 시스템이 정착되었는가?

마지막으로, 프로라고 느낄 만큼 폼 나는가?


대한민국에는 당구 외 경쟁력을 가진 많은 스포츠들이 있다. 스포츠 종목에도 다양성이 필요하다. 다양한 스포츠는 곧 다양한 행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늘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다. 오늘은 뭐~ 신나는 게 없을까? 이 땅의 많은 스포츠 종목이 때를 만나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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