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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sumer Jun 14. 2024

왜, 내 단골 술집은 망하는 걸까?

문을 닫은 동네 세계 맥줏집 앞에서...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생각하면 아주 잠깐이지만 행복해진다. 특별히 힘들 것이 없는 월요일 저녁이었다. 5개월째 출근을 하고 있는 13번째 회사에서 근무를 마치고 문득 사무엘 아담스가 마시고 싶었다. 6월, 보스턴 마라톤이 열리는 4월도 아닌데, 왜 사무엘 아담스가 생각이 난 것일까? 사무엘 아담스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은 대형 마트 세계 맥주 코너에서 사서 집에서 마시기와 동네에 있는 세계 맥주집에 가는 방법이 있다.

 '세계 맥주집'. 이 표현 자체도 적절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전 하이네켄 TV 광고처럼 대형 냉장고에 세계 각국의 병맥주들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는 맥주집을 의미한다. 자신이 마시고 싶은 병맥주와 맥주잔을 가져다가 마시고, 나중에 맥주병을 가지고 가서 계산을 하면 된다. 좀 더 보기 좋게 얼음을 채운 버킷에 맥주를 넣어둔 '와바'같은 곳도 있으나, 우리 동네에 있는 세계 맥주집은 사무엘 아담스도 파는 평범한 곳이었다. 지하철역을 내려서 힘차게 세계 맥줏집 앞으로 걸어갔다. 저 멀리 보이는 세계 맥줏집. 이제 여름철이기 때문에 가게 바깥쪽 드럼통 테이블에서 손님이 있을만했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간판이 떨어진 휑한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사무엘 아담스가 머릿속에서 지워졌고, 오랫 친구의 장례식장 앞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단골 술집들 중에서 이 세계 맥주집은 가장 조용하고 조용하다 못해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안주가 거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세계 맥주집은 저녁 7시 전까지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저녁 7시가 넘어가면 2차로 오는 손님들이 좀 많았다. 나는 안주는 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보통 동남아 맥주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 사무엘 아담스를 마시고는 했다. 가끔 안주를 시키면 '바스버거'에서 버거가 나오기 전에 공짜로 먹을 수 카바사칩을 시켰다. 여러 가지 병맥주를 마시면서 이것저것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맥주의 특성상 마시다가 화장실을 찾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가게 안에 화장실도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내가 가끔씩 마시는 병맥주 몇 병으로는 세계 맥주집이 운영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작년이었던 것 같은데, 단체 손님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조금 조용히 해달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맥주를 마시는 단체 손님들이 시끄러운 것이 당연한 것이고 조용히 해달라고 한 내가 이상한 사람 같다. 지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세계 맥주집이 폐업을 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2인용 테이블에서 병맥주를 마시고 있는 손님과 단체 손님을 비교하면 단체 손님이 세계 맥주집 매출 증진에는 도움이 되는 분들이니까...

 내 단골 술집들이 망할 때마다, 망하기 전에 한번 더 들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내 주변에 사람들 중에서도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더 보자라고 생각을 한다. 문을 닫는 단골 술집들처럼 모든 사람은 영업시간이 정해져 있다. 우리는 모두 죽음이라는 영업시간을 따라야만 한다.

 오늘 퇴근할 때는 이제 간판도 없는 세계 맥줏집 앞에 잠깐 서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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