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커일기(2021년 10월 25일)

KT 대란

by sposumer

점심 피크 시간인 오전 11시쯤에 맞춰서 배민커넥트를 시작했다. 첫 콜로 천호 로데오 거리에 있는 닭갈비집을 잡았다. 오며가며 위치를 이미 알고 있던 곳이라서 여유롭게 가게에 도착했다. ‘픽업완료’를 누르고 배달지로 이동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배민커넥트 앱이 먹통이 되었다. 배달지 주소는 배민커넥트 앱을 통해서만 볼 수가 있는데, 앱이 먹통이니 배달지 주소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혹시 내가 아이폰 설정을 잘못한 건가 하고 설정을 보고, 변경도 해보고 했지만 배민커넥트 앱은 계속 열리지를 않았다. 15분쯤 지나서 닭갈비집으로 다시 가서 종업원들에게 혹시 배달지 주소가 뜨는지 물어보았다. 종업원들이 POS 를 확인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저희 POS도 다운 되었어요’였다. 11시 30분이 지났고,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서 닭갈비집으로 들어왔다. 종업원들이 지금은 카드결재가 안된다고 미리 안내를 했다. 종업원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닭갈비집도 인터넷을 KT, 나도 스마트폰 이동통신사로 KT를 사용하고 있었다. 종업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12시까지만 가게에서 좀 기다리겠다고 했다. 근처 스타벅스로 가서 와이파이라도 잡아볼까 했는데, 생각을 해보니 스타벅스도 KT망을 쓴다(나중에 뉴스를 보고 알았지만 스타벅스는 인터넷이 되었다고 하네요). 인터넷이 안되니 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인터넷은 안되는데 인스타그램 피드는 새로 고침이 되어서 살펴보니, 많은 사람들이 KT 때문에 강제 휴식을 하고 있다고 나왔다. 전화는 되서 전화로 지인과 KT 대란을 소재로 잠깐 통화를 했다.


대란의 피해자는?

한 둘이 아니였지만 우선 내가 생각해야 하는 피해자는 배민커넥트 앱으로 닭갈비 음식 배달을 시킨 고객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뭐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12시쯤 되니 닭갈비집으로 고객이 전화를 걸어서 주문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통화가 끝나고 배민커넥트 앱이 다시 작동되었다. 배민커넥트 앱에도 고객이 주문 취소를해서 배달 취소가 표시됬다. 이제 문제는 26,000원 어치 음식이었다. 주문을 한지 거의 한 시간이 지난 상황이기 때문에 이 음식은 폐기할 수 밖에 없었다. 가게에서도 폐기할 음식이었기 때문에 내가 가져가기로 했다. 배달 가방에 26,000원 어치 닭갈비와 볶음밥을 넣고 다닐 수는 없어서 지하철역 코인로커에 음식을 넣어둘까 생각을 해봤는데, 코인로커도 인터넷이 연결되어 작동되는 것이라서 정상 작동이 되지 않으면 시간 낭비이기 때문에 가게에 양해를 구하고 포장된 음식을 오후 2시 이후에 찾아가기로 했다. 배민커넥트 앱으로 콜이 들어와서 더 뭘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빨리 음식을 픽업하기 위해서 출발했다.


대란에 이은 운수 나쁜 날

점심 피크 타임을 1시간 정도 까먹었기 때문에 다른 날보다 더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정말 운수가 나쁜 날이었다. 배달 콜을 받고 가게에 도착을 했는데, 고객이 주문한 감자스프가 재료가 떨어져서 만들 수가 없다고 한다. 문제는 이 배달 콜이 단건배달이었다는 것이다. 이 배달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다른 콜도 받을 수가 없다. 식당 종업원은 주방에서 조리를 하면서 배민 고객 센터에 통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주문을 취소했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이 생각이 났다. 인력거를 끌면서 아내가 먹고 싶어하던 설렁탕을 사서 집에 도착했지만, 싸늘한 주검이 된 아내를 발견하고 울부짖던 주인공. 주인공 김첨지와 달리 나는 가게에 도착을 했지만 배달음식을 받아가지 못했다(아, 김첨지는 비가 오는 날 일을 하러 나갔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군요). 나말고도 다른 배민커넥터 라이더(정식 명칭인 ‘커넥터’라 부르면 햇갈릴듯 합니다) 한 분도 감자스프 때문에 더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 라이더의 배달 건은 감자스프가 포함된 주문을 취소하고 다시 주문을 했기 때문에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배달이 취소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점심 피크 타임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라이더 입장에서 아쉬운 일이다. 나는 주문이 취소된 상황이라서 미련을 버리고 씁쓸한 인사를 라이더에게 건네고 가게를 떠났다.


식어버린 닭갈비는 누가 보상해주나?

오후 2시 20분쯤 점심 배달을 마치고 닭갈비집으로 갔다. 묵직한 포장 음식 꾸러미를 배달가방에 넣고 집으로 왔다. 당연히 점심을 안먹고 배달을 했기 때문에 배가 고플만도 하지만 도도한 위장은 식어버린 닭갈비에는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조금 먹다가 남은 것들은 냉장고에 넣어두었고, 볶음밥은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도 먹지 못했다. 뉴스에서도 KT 대란은 다양한 형태로 보도되었다. 손해보상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기는 했지만 아직 KT 측에서는 공식적인 사과 외에 내놓은 손해보상 방안은 없다. 다른 건 모르겠고, 26,000원의 음식값은 누가 어떻게 닭갈비집에 보상을 해주어야 하는 걸까? KT 대란 시간을 고려하여 이때 배달이 들어왔다 취소된 음식들에 대해서는 배달의 민족이 일괄 보상을 해주고, 이것을 근거로 KT에 보상을 받으면 될까? 아직도 냉장고에 남은 볶음밥을 보니 손해배상이 어떻게 될지 다시 궁금해졌다.


나에게 KT 대란은 약 30분간의 혼란과 26,000원 어치 닭갈비로 막을 내렸다. 또,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초연결 사회라는 것이 참 불안한 점들이 많다라는 점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더불어 아무리 기술이 좋아지더라도 모든 문제의 핵심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KT대란의 원인도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자연재해와는 달리 담당하는 인력들의 실수가 만들어낸 인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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