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커일기 (2021년 11월 2일)

와~ 다사다난한 하루

by sposumer

오늘은 앞으로도 출전하기 어려울 것 같은 ‘TCS 뉴욕 마라톤’을 완주했다. 이건 희망사항이고 코로나 때문에 메이저 마라톤의 추가 수익 사업이 된 버츄얼 마라톤을 신청해서 완주했다. 아침 7시부터 달려서 완주를 하고, 오후에는 7년된 자가용을 교통안전공단 정기점검을 받아야 해서 배민커넥트를 하루 쉬었다. 어제는 배민커넥트를 시작하고 가장 다사다난했던 하루였다. 우선 아침에 눈을 뜨니 예전 홍보대행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기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와있었다. 아버님께서 오랫동안 투병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 친구는 반일 물결로 국내 지사를 철수한 일본 자동차 브랜드 홍보팀에서 끝까지 고생만 했다. 더구나 장례식장이 집에서 멀지 않은 대형 종합병원라서 가야만 했다. 나랑 시간이 맞는 후배와 장례식장 앞에서 오후 3시에 만나기로 했다.


첫 현금 결재

오전 첫 배달은 매운 떡볶이었다. 떡볶이를 픽업해서 배달장소인 고층 아파트로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고객 요청 사항을 보니 ‘현금 결재’였다. 아, 내가 잘못 본 것이기를 바라면서 다시 한 번 봤는데, ‘현금 결재’가 맞았다. 떡볶이 가격은 19,500원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현금은 하나도 없었다. 매운 떡볶이를 왜 먹나 생각하실 것 같은 할아버지께서 문을 열고 나오셨다. 손자나 손녀를 사주시는 것이 확실한 것 같은데 이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만원 짜리 두 장으로 2만원을 주셨는데, 난 500원을 거슬러 드릴 수가 없었다. 2만원을 받고 개인으로 현금영수증 발행까지 해드렸다.

“어르신, 제가 다음 배달이 있어서요. 제가 점심 배달이 오후 2시에 끝나는데, 그때 카톡으로 송금해드릴께요. 제가 카톡으로 송금해드리려면 어르신 전화번호가 필요하니 좀 알려주세요.”라고 말씀드렸다. 어른신이 하시는 말씀이 잘 안들려서 몇 차례 되물으면서 아이폰 메모장에 어르신 전화번호를 메모해서 맞는지 보여드렸다. 번호는 맞다고 하셨고, “영수증은?”이라고 하셨다. “배민 어플에서 확인 가능하세요.”라고 말씀을 드리고 급하게 1층으로 내려왔다. 1층으로 내려와서 생각을 해보니 내 번호를 저장하셔야 카톡에 친구로 추가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기억이 안나서 제 번호도 저장을 해달라는 문자를 드렸다. 친구 관리에서 새로 고침을 여러 번 했지만, 어르신은 카톡 친구로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죄송스럽게도 아직도 500원을 거슬러 드리지 못했다.


첫 브이로그

늘 의욕충만으로 구입한 영상장비는 사용빈도가 높지가 않다. 11월부터는 배민커넥트 관련 브이로그도 만들어보기로 했기 때문에 촬영용 미러리스에 삼각대까지 결합해서 나왔다. 첫 현금 결재 사건이 발생한 시간은 콜이 쭉쭉 이어지는 시간은 아닐 것 같아서, 잠깐 셀카로 영상 촬영을 하고 있는데, 콜이 들어왔다.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1분 미만의 영상 촬영으로 배달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마음에 그런 여유가 전혀 없다. 콜이 들어오면 최대한 빨리 오른쪽으로 문지르기(나는 ‘스와이프’라는 말이 입에 잘 붙지 않는다)를 하고 출동을 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첫 브이로그는 촬영을 하기는 했지만, 별 기대가 없다. 자전거 헬멧을 쓰고 있는 아저씨의 독백이 대부분인 영상을 누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편집을 잘해도 구제는 어렵다. 오후에도 계속 이런 상황이었다. 촬영을 하려고 하면 콜이 오거나, 시간이 남으면 영상을 촬영하기에는 장소가 어정쩡하거나, 혹은 역광이었다. 촬영 영상이 마음에 들면 편집 의욕이 생기는데, 첫 배커 브이로그 영상은 의무감이 편집을 담당하게 될 것 같다.


아무래도 배달 가방은 장례식장에 어색해

아침에 부고를 보고 오후 3시에 후배와 장례식장에서 만나기로 해서 오전 배달을 하러 나갈 때 복장을 올 블랙으로 하기는 했다. 하지만 막상 장례식장 앞에 배달가방을 들고 올 블랙 트레이닝복 상하의를 입고 들어가려니 좀 어색했다. 예전 PC 통신은 아니고 다음과 네이버 카페 전성시대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온라인 카페 회원들끼리는 닉네임으로만 소통을 하다보니 본명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회원분 부모님 조문을 갔는데, 카페 회원 중에 장례식장에서 부적절한 닉네임을 사용하던 분이 있었다. 먼저 도착한 카페 회원들이 테이블에서 도착한 그 회원을 발견하고 ‘아, XXX님, 이쪽입니다!’ 라고 했는데, 장례식장이 아주 싸늘해졌다. 그 회원님 아이디가 ‘저승사자’였기 때문이었다.

정부 코로나 대응 단계가 조금 완화되었지만, 그래도 서울시에 만들어 붙인 주의 사항이 덕지덕지 붙은 장례식장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머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절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안내가 되어있었지만, 고인인 동기 아버님의 친구분들은 절을 하셨다. 안내에 따라서 고인께도 목례와 기도를 하고, 동기 어머님께 뭔가 머슥해서 “배달을 하다 와서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배달통이 식장 입구에 있어서 누가 봐도 배달을 하다 온 것인데 필요없는 말을 한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 올 것을 생각해서 점심을 안먹었기 때문에 육개장에 밥 한 그릇을 먹고, 정부 코로나 대응 지침에 따라서 딱 30분만에 식장에서 나왔다.


확신이 없는 실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나라 작가 중에 한 명은 ‘장강명’이다. ‘댓글부대’는 정말 빠른 전개에 감탄했고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장 작가의 책은 발간되는대로 계속 사서 읽었다. 사서 읽는 것이 내가 장 작가를 지지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이게 중간에 끊겼다. 그리고 지금 내 상황은 장 작가 책을 사서 읽을 수는 없어서 도서관에 2020년에 나온 책을 빌렸다. 이제 책에 대한 서평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하고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포함해서 뭔가 적어두지 않으면 읽었는지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점심 배달을 마치고 카페에서 이 책에 대한 글을 좀 썼다. 내 맘에 드는 구절들이 많아서 이 글을 적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오후 5시 30분부터 저녁 배달을 시작했다. 예상 외로 저녁 배달의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집 근처에서 시작해서 명일동까지 누비면서, 만족스러운 배달비를 벌었다. 오후 8시까지는 집에 가는게 보통이라서, 천호역 쪽에서 집으로 가다가 예전에 다녔던 자전거 회사 영업팀 후배와 매우 닮은 사람을 봤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후배에게 카톡을 보내고, 카톡을 보고 내 눈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을 쯤에 배민커넥트 고객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그렇다. 불안한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다. 저녁 첫 배달인 마라탕이 오배송 되었다고 한다. 우선 저녁 첫 배달이라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까 한창 배달을 하다가 취소된 배달이 있다는 알림을 본 것 같기도 하다. 뭐, 이미 늦었다. 고객센터에서 전화를 건 분이 내게 확인을 하고 싶은 것은 내가 오배송을 했는지에 대한 확인이다. 내 아이폰에 남은 배달 기록을 본다. GPS 기반이지만 이게 다 맞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1단지로 갔는지 2단지로 갔는지인데, 이게 찍힌 지점이 애매하다. 결론은 그냥 내가 배달음식 비용을 물어내는 것이다. 귀찮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한 시간이 넘은 배달에 대해서 내가 배달지로 가서 맞는지 아닌지 살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전화를 건 고객센터 직원분께는 비용을 알려달라고 대답했다. 고객센터 안내 쪽지로 배달음식 비용을 송금할 은행계좌가 왔다. 여기에 다시 답문을 보내본다. “다음에는 저도 배달 완료하고 사진을 찍어두어야겠어요” 앱에서는 자동으로 ‘상담시작’이라는 텍스트가 나온다. 하지만 다른 텍스트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번 확신이 없는 내 실수 때문에 이제부터는 한 10초가 더 걸려도, 꼭 카메라 앱으로도 배달 완료 사진을 촬영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내일 풀코스 마라톤을 뛰려면 ‘카본 로딩’을 해야지. 집에 들어가면 바로 이봉주 선수처럼 짜파게티를 끓여 먹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8시반쯤 집에 도착했더니, 아들이 블럭으로 만든 옥토넛 탐험선 X를 대파 아니 완파했다. 이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 다시 만들어줘!’라고 한다. 하하! 아들아 조립 설명서를 다오. 다행이 와이프가 조립 설명서를 찾아서 1시간 동안 탐험선 X를 재구축했다. 정말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P.S. 모더니 백신 맞고 집에서 ‘배커일기’ 첫 브이로그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https://youtu.be/xXcDRInlN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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