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커일기(2021년 10월 28일)

배달 중에 고맙고, 재미있는 일도 많아요!

by sposumer

‘배민커넥트 일기’를 적다보니 세상의 안타깝고 우울한 일들만 열거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잊기 전에 메모해둔 고맙고 재미있는 일들도 모아서 적어본다.


고마운 일들

하나, 우선 정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고객 요청사항에 ‘안전하게 오세요!’나 ‘안전 운행’이라는 말은 늘 고맙다.

둘, 배달 음식을 받으러간 식당에서 배달하는 사람들을 위해 ‘감사합니다’라는 문구 아래 사탕 바구니가 있는 경우가 있다. 바빠서 사탕에는 손을 뻗치지 못하더라도 역시 감사하다.

셋, 정말 드문 경우인데 고층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양보해주신 분이 있다. 정말 이런 경우는 단 한 번이었고, 약간 당황해서 몇 초 있다가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넷, 좁은 빌라 계단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내려오고 계셨다. 한쪽으로 비켜서 있었을 뿐인데, 감사하다며 젊은 사람이 고생한다고 말씀해주셨다. 참 감사하고 머쓱했다.


재미있는 일들

하나, 고등학교 3학년으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배달음식을 받으러 정문으로 나왔다. 비대면 배달로 요청을 했기 때문에 배달 음식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음식을 받아서 바로 가버렸다. ‘저기요! 음식 사진 찍어야 되는데요!’라고 급하게 외쳤더니, ‘호호호’하면서 돌아왔다. 두 학생이 손에 배달 음식을 들고 있는 사진을 찍고 감사하다고 했다.

학교로 가는 길, 하늘색 하늘에 노란 은행과 붉은 자전거 도로의 조합이 참 예뻤다 .

둘, 저녁에 고층 아파트로 치킨 3마리 배달을 갔다. 고층 아파트라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약간 뿔이 난 상태였다. 벨을 누르니 ‘치킨!’이라고 한 마디 외치고 배시시 웃는 3살 정도 된 남자아이. 치킨 3마리를 들고 서있기에도 무거워 보이는데, 치킨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나도 같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셋, 재미있는 일은 아니고, 저녁 배달 때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배달을 하러간 오피스텔 1층에 화장실이 있었다. 만약 화장실 비밀번호가 있다면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다행이 비밀번호가 없이 문이 열리는 화장실은 너무나 반가웠다.


이렇게 적고 보니 어제 저녁 있었던 일에 마음이 무겁다. 일주일 전에 내 실수로 배달을 잘못한 분식집에 어제 저녁에도 음식 픽업을 갔다. 분식집에 도착해서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배달이 밀려있어서 사장님께서는 음식 준비로 정신이 없으셨다. 바뻐 보인다는 핑계로 사과를 드리지 못해서 부끄럽다.


배커일기를 적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명인 장강명 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 - 읽고 쓰는 인간’을 읽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을 관심 있게 지켜본다.
우리 모두 움직이는 것을 정지된 것보다,
새로운 것을 오래된 것보다 더 흥미롭게 바라보는 동물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그들이 돌파구를 열어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책, 이게 뭐라고(장강명)’ 175 - 6 중에서

배민커넥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구절이다. 장 작가가 젊은 작가들의 ‘직거래 구독경제’모델 등 새로운 움직임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부분인데, 문득 내가 적고 있는 배커일기 역시 새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돌파구를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정지된 것이 아닌 움직이는 이 글에 관심이 있지 않을까? 배민커넥트 콜이 끊어졌을 때,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제 당황하지 않는다. 콜이 끊어진 그 자리에 있는 것보다는 음식점이 있는 어딘가로 움직이는 것이 새로운 콜을 받을 수 있는 나은 방법이다.


11월에는 쉽지 않겠지만 브이로그도 함께 남겨보려고 한다. 이제 5시라서 저녁 배달을 시작할 시간이다. 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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