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배달에 대하여…
‘라면 배달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려다보니 이 글이 ‘배커일기’라는 큰 제목에 묶일 수 있는 글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커일기’는 배민커넥트 자전거 배달을 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토대로 글을 적고 있다. 이렇게 보면 ‘배커일기’에 포괄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갑자기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지금 읽고 있는 장기하의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 때문이다. 산문집에서 ‘내 인생 최고의 라면’부문을 읽다가 오늘 점심 배달 때 나를 좀 곤란하게 만들었던 ‘라면’,정확히는 컵라면(업계용어로는 ‘용기면’)이 아닌 끊인 봉지라면(업계용어로는 ‘봉지면’)이 생각났다.
이번 주 월요일 오전에 코로나19 부스터를 맞았다. 지난 6월에 얀센 백신을 맞고는 접종 부위가 단단해진 것을 제외하고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모더나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장난이 아닐 것이라고 해서,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모더나 백신으로 부스터를 맞았다. 부스터는 원래 백신 접종량의 절반만 맞는 것이기는 했지만, 월요일부터 화요일까지는 정말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열이 심하게 나지는 않았지만, 몸이 전체적으로 코감기 약을 먹고 난뒤, 기운이 없고 몽롱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내무부 장관 분부대로 ‘타이래놀’을 준비해두지 않았다면 큰일이 날뻔했다. 화요일까지는 그래서 배민커넥트 자전거 배달을 할 수가 없는 몸 상태였다. 날씨 역시 바람이 강하게 불고 비가 내렸기 때문에 몸 상태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배달을 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어제, 수요일부터는 몸 상태가 나아졌고, 무려 3일을 쉬었으니 오늘은 평소보다 10분 빨리 11시 20분부터 배달을 시작했다. 첫 도시락 배달부터 오전 배달은 아주 순조로웠다. ‘아, 이런 날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런데 12시 30분에 나도 포장을 해서 먹어본 적이 있는 천호동 떡볶이 가게로 픽업 콜이 왔다. 떡볶이 가게로 가는 것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가게 도착’ 버튼을 누르고 배달 메뉴를 살펴보니 ‘끊인 라면’이 있었다. 우선 내 배달 건 앞에 배달이 쭉 밀려있는 상태였다. 가게 도착하고 10분이 지나면 배달이 늦는다고 버튼을 눌러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주방의 상황을 보고 있었는데, ‘끊인 라면’은 후순위일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끊인 라면’은 미리 조리하면 불어터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면을 따로 삶아서 담아도 마찬가지이다. 군대에서 식사 시간에 식판에 받아서 먹은 라면을 맛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식판 자체가 분위기 있다고 생각하면 맛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2년간 삼시세끼 식판을 사용하면 그런 생각이 안든다). 주방에서는 두 분이 열심히 조리를 하고 계셨고, ‘라면은 3분이면 되니까, 금방 드릴께요!’라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였다. 하지만, ‘끊인 라면’은 조리 시간이 걸리는 튀김과 라볶이 등과 비교했을 때는 점점 더 찬밥이 되어가고 있었다. 9분쯤 기다렸을 때, 깨달을 더 큰 문제는 내가 실수로 ‘픽업 완료’ 버튼을 누른 것이였다. 참, 안절부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배달로 ‘끊인 라면’을 주문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첫 직장으로 라면이 대표 상품인 식품 회사를 다녔던 내 입장에서는 좀 답답했다. 내가 라면 애호가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나름 대기업이라고 구미에 있는 라면 공장 견학은 물론이고, 2주간 합숙으로 신입사원 연수를 받았다. 그때는 신입사원 연수 때 팀 활동으로 뮤지컬 공연을 시키는 것이 유행이라서 뮤지컬 때 아무도 안하려고 하는 ‘여기자’ 역활을 맡아서 했다. 2주간의 학습을 요약하자면, 유탕면(기름에 면을 튀긴 라면)은 공장에서 봉지에 넣기 직전까지가 가장 맛있다는 것이었다. 유탕면의 면을 스파게티면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면을 어느 정도로 익혔는가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모두 기호가 다르다. 이것은 2주간 신입사원 합숙 내내, 밤마다 자사의 용기면을 하나씩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 신입사원 동기들도 같은 용기면을 좋아해도 면을 어느 정도로 익혔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여튼 유탕면은 조리가 끝나고 바로 먹어야 맛이 있다는 생각에 더 안타까울 뿐이었다. 나도 가끔 김밥집에서는 ‘떡라면’을 김밥과 함께 주문한다. 하지만 이건 매장에서 먹을 때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드디어 ‘끊인 라면’이 나왔다. 다행히 조리된 면과 국물을 따로 담아서 포장을 해주셨다. 정말 포장된 ‘끊인 라면’과 순대를 받아들고 쨉싸게 출발했다.
마흔도 되기 전에 인생 최고의 라면을 맛보다니…… 이제 더 이상 전진할 곳은 없는 것인가, 라며 탄식할 필요는 당연히 없다. 이 라면이 인생 최고였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오늘의 나에게 그렇다는 것이지, 내일이나 모레의 나는 입맛이 또 어떨지 모르는 일이다. 사람의 몸이란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이고, 미세한 변화에도 크게 바뀌는 게 입맛이다. 조금만 다르게 끊여도 완전히 새로운 맛이 되는 라면처럼 말이다.
- ‘상관없는 거 아닌가? (장기하 산문)’ P 98 중에서-
비대면 배달이라서 ‘끊인 라면’을 주문한 고객과 손 한 번 닿을 기회도 없었다. 조용히 문 앞에 배달 음식을 놓고, 전달 사진을 촬영했고 ‘배달 완료’ 버튼을 눌러서 ‘끊인 라면’과는 이별을 했다. 이제 저녁 배달을 시작하면서 다시 떠오르는 ‘끊인 라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고객의 ‘인생 최고의 라면’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자전거 배달을 하면서 ‘인생 최고의 라면’을 배달할 기회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