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커일기(2021년 12월 14일)

배민커넥트 서비스 운영팀에게 보내는 편지

by sposumer

안녕하세요?

저는 부업으로 배민커넥트를 하고 있는 40대 남성입니다. 올해 4월부터 배민커넥트를 시작해서 '커넥터'가 되었습니다. 10월에 권고사직을 선택한 이후에 부업으로 점심과 저녁에 꾸준히 자전거 배달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까지 총 469건 배달을 했습니다. 이제까지 배달을 하면서 배민커넥트 운영팀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보려고 4살 아들을 재우고, 새벽에 혼자 주방 식탁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어제도 점심과 저녁에 배달을 해서 피곤한데, 왜 새벽에 편지를 쓰냐구요? 특별히 배민커넥트 운영팀에 뭔가 쌓인게 많아서는 아닙니다. 계기라고 한다면 어제 저녁에 우연히 '우아한 형제'들 사무실에 두 번 배달을 가게 되었습니다. 몽촌토성역 앞에 있는 큰집을 먼저 갔고, 연달아서 잠실역 근처의 작은집도 가게 되었습니다. 우아한 형제들 직원분들이 아마도 야근을 하면서 음식 배달을 시킨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분들이 매너가 없다거나 이런 일도 아닙니다. 그냥 두 곳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사무실 복도에 붙어있는 우아한 형제들의 '미션(Misssion)'을 보았고 꼭 이제까지 참았던 할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 1. 작은집 로비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

17년간 회사를 다닐 때 주로 마케팅과 홍보 업무를 맡았던 제가 보아도 '배달의 민족'이라는 브랜드의 해야 할 일을 잘 압축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달의 민족의 성공비결을 다룬 책인 '배민다움(홍성태 저)'을 읽을 때 처음 알게된 문장이고 자전거 배달을 하면서도 여러 번 공감한 말입니다. 병원에 입원한 아이가 병원밥은 싫고 꼭 점심으로 신전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하면, 혼자 병실에서 아이를 지키는 엄마 입장에서는 배민으로 병원 입구까지 배달을 받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명한 선택일 겁니다. 배달을 하면서 이런 경우에는 매우 보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배달을 하면서 계속 보람찬 상황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배민커넥트 앱이라는 플랫폼이 이 플랫폼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 큰 만족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플랫폼으로 배달을 시키는 사람, 플랫폼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 플랫폼으로 배달을 하는 사람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토바이로 전업 배달을 하는 '라이더 유니온' 소속 라이더들처럼 전업으로 배달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전거 배달을 부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전거 배달을 전업으로 하는 분들보다 배달건수가 적고, 배민커넥트 앱 개선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자격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쓰레기는 먼저 본 사람이 줍는다'라는 문장에서 힘을 얻어 몇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진 2. 역시 작은집 엘리베이터 옆에 붙어있던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11가지 방법'입니다>


첫번째, '대단지 고층 아파트 배달'은 다른 알고리즘을 적용할 수 없을까요?

개인적으로 고층 아파트 배달은 싫습니다. 특히 대단지 고층 아파트 배달은 더 싫습니다. 더구나 저녁 시간에 대단지 고층 아파트 배달이라면 정말 싫습니다. 저는 배달할 때 배민커넥트가 배차해주는 AI 배차를 쭉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단지 고층 아파트 배달이라도 그냥 다 수락합니다. 반경이 1km가 넘는 아파트라도 도로명 주소로는 같은 곳입니다. 이것은 정부가 만든 주소 체계의 문제로 봐야 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배민커넥트 앱 캡쳐. 올림픽선수촌아파트는 앱 안내대로 따라만 가도 됩니다. 하지만 대단지 아파트 중앙으로 표시되는 경우도 있어서 앱만 믿으면 안됩니다.

처음에는 대단지 아파트 배달을 가면 아주 허우적 거렸지만 이제 '108동이니 동문으로 들어가야지' 이런 식으로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겨서 알아서 잘 찾아갑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저녁 시간대에 엘리베이터 대기 시간입니다. 20층이 넘는 곳으로 배달을 다녀오면 엘리베이터 대기 시간을 포함해서 5분 이상이 소요됩니다. 제 성격이 기다리는 것을 잘 못하는 것도 있지만, 문제는 다음 배달이 지연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배민커넥트 앱에 표시되는 거리로 치킨집과 500m 떨어져 있는 대단지 고층 아파트 28층과 5층짜리 빌라의 배달 소요 시간은 현격히 차이가 납니다. 5층 빌라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대단지 고층 아파트 28층보다 5층 빌라로 배달이 훨씬 빠릅니다. IT쪽으로는 잘 알지를 못해서 어떻게 개선하는 것이 좋다고 의견은 제시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배달이 지연된다면 '고객만족'과는 멀어지는 것이라서 꼭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대단지 아파트 20층 이상만이라도 다른 알고리즘을 적용해보면 '고객만족'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번째, '코로나' 상황이라 커넥터도 조금 더 보호받고 싶습니다.

코로나로 대형 종합 병원에서 배달은 꾸준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지쳐보이는 의료진분들이 배달 음식을 받아들고 가는 상황은 이제 익숙합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병원은 점심시간이 길지 않아서 배달이 많습니다. 동네 병원 배달은 법인카드로 예상되는 신용카드 결재도 많아 비대면보다 대면 배달이 월등히 많지만 방역 체계를 잘 구축하고 있어서 병원으로 배달을 갔다고 해서 코로나 감염 걱정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배달을 가서 코로나 감염 걱정을 하는 곳은 대학교입니다. 대학교도 배달 요청이 꾸준한 편인데, 병원과 비교했을 때 방역 체계 구축이 형편없습니다. 학생들이 혹은 교직원들이 요청하는 4층 몇 호실과 같은 공간으로 배달을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배달을 가는 저도 불안합니다. 실내 곳곳에서 음료나 간식을 먹으면서 대화를 하는 학생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건물 입구에서 체온을 측정하거나 QR코드를 확인하거나 이런 절차가 전혀 없으니 불안합니다. 대학교는 대형 종합 병원과 마찬가지로 건물 입구 특정 장소에 배달 음식을 두는 방식으로 제한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이건 써놓고 보니 대학교 측에 요청해야 하는 사항 같기도 합니다.


세번째, 주류 배달 시 본인 인증 문제입니다.

우선 배달음식을 가게에서 픽업할 때부터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배달음식에 붙은 영수증을 보면 가게에서 배달을 하는 커넥터에게 배달음식에 주류가 포함되어 있다고 알리도록 되어있는데, 그렇게 안내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비대면 배달 요청인데 주류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비대면으로 배달을 요청한 고객의 요청을 따라야 하는데, 주류가 포함되어 있어서 본인 인증을 해야 한다면 비대면 배달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재 고객들은 '배달의 민족' 앱으로 배달을 시킬 때 '문 앞에 놓고 벨 눌러 주세요'라는 요청을 한 상태에서 주류를 포함한 배달을 할 수가 있습니다. 본인인증을 받겠다고 벨을 누르거나 고객 전화 연결을 하면 비대면 배달을 시킨 고객이 달가워할까요? 어떤 원칙을 지키는 것이 맞을까요? 고객만족을 고려한다면 커넥터가 신분증과 고객 얼굴 대조를 한 것으로 하고, 고객 사인도 대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용카드 결재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으로 카드 번호를 두 번 입력할 때도 '왜 두 번 입력을 하느냐?' 혹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주류 배달 시 신분증과 고객의 얼굴을 비교하는 본인 인증을 배달 음식을 전달하는 커넥터가 쉽게 할 수 있을까요? 배달을 시킨 소비자는 플랫폼을 통하기는 했지만 커넥터가 돈을 받고 심부름을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배달비를 내주는 사람에게 '어, 신분증이랑 얼굴이 다르신데요?'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본인 인증을 안해줄 수가 있을까요?


주류 배달 시 본인 인증 업무는 정해진 시간에 배달 음식을 전달하는 커넥터에게 뭔가 다른 업무를 부가하는 느낌입니다. 업무의 강도나 소요 시간을 떠나서 커넥터의 능력으로 고객에게 요청을 하기 어려운 업무입니다. 카드 결재를 받는 것과 비교해도 확연히 다른 업무입니다. 족발, 신선한 회 등 술과 함께하면 더 맛있는 음식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배달의 민족 앱으로 꼭 주류 배달 서비스가 필요한 것일까요? 만약 주류 배달 서비스를 악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저는 다른 무엇보다 시급하게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뉴스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혁신 기업들을 소개하며, 직원들의 연봉이 얼마나 인상됐고, 성과급이 얼마인지 연일 보도한다. 극심한 취업난을 뚫고 큰 기업에 취업한 인재들은 말 그대로 '좋은 스펙'을 가진 엘리트들이다. 바로 그들이 일류 기업에 들어가 고민하고 설계하고 만들어 낸 것이, 그 기업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위험을 전가하고 더 많은 부담을 감수하게 만드는 알고리즘과 시스템인 것일까?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라고 하지만 기업이 이윤을 추가하는 방식이 인간의 노동 단가를 최소화하는 것만을 포함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별 다섯 개 부탁드려요! (유경현, 유수진 저) P 39 - 40 중에서>


저는 '우아한 형제들'이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런 편지도 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뒤에서 망하라고 욕이나 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대로 불매운동이나 하면 그만이죠. 제가 최근에 경험한 일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서 편지를 줄이려고 합니다. 점심 막판 배달이라서 힘이 들고 대단지는 아니지만 고층 아파트 배달이라서 멍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대면 배달이라서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바로 벨을 눌러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배달을 받으러 아주머니께서 문을 열고 나와 계셨습니다. 멍하게 있느라 배달가방에서 배달음식을 빼지도 않아서 황급하게 배달음식 봉지를 꺼내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엘리베이터 내려가는 버튼을 저 대신 미리 눌러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라고 말씀까지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가끔 대면 배달을 받는 분들이 제 위치가 GPS상으로 나타나니까 문을 열고 나와 계시는 경우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내려가는 것을 생각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대신 눌러준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제 입장을 생각해준 세심한 배려 때문에 배달료를 떠나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는 배민커넥트를 부업을 하고 있고, 수입에도 보탬이 되어 배민커넥트 서비스를 운영하는 분들께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위에 말씀드린 사항들이 개선되지 않는다고 해도 자전거 배달인 커넥터를 계속할 겁니다. 하지만, 배민커넥트로 배달을 시키는 소비자만 고객으로 생각하지 않고, 커넥터도 고객으로 생각하고 그 입장을 조금만 배려해준다면 더 나은 서비스가 될 수 있지 않을가요?


P.S. 이 편지는 469건 배달이라는 팩트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전 11화배커일기(2021년 1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