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하반기. 게임의 우승자가 상금으로 456억을 받게 되는 내용의 넥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인기는 대단했다. 아내를 포함해서 오징어게임을 정주행 한 사람들 덕에 나는 오징어게임의 줄거리는 대강 알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 뉴스 섹션에서 오징어게임 관련 뉴스가 뜸해지고, 올림픽공원 잔디광장에 전시된 대형 영희 모형이 철거될 때쯤 나는 오징어게임을 봤다. 그리고 456억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다시 목숨을 걸고 게임에 참가하겠다며 이정재가 전화통화 중에 내뱉은 저 대사가 내 귀에 딱 꽂혔다. 배민커넥트 앱의 AI배차에 따라서 정신없이 배달을 하다 보면, 오징어게임의 참가자가 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을 하면 내가 일하고 싶을 때 하는 플랫폼 노동이니 신규 배차를 안 받고 배달을 그만하면 된다. 하지만 배달피크 타임인 점심과 저녁에 배달을 하고 있으면, 이런 생각을 할 틈이 없이 배달료를 따라서 움직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2021년 4월. 어렵게 말하면 법정구호단체, 쉽게 말하면 NGO에서 홍보팀장으로 일을 할 때, 자전거 배달인 ‘배민커넥트’를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기업들이 NGO에 기부를 했는데, ‘우아한 형제들’ 김봉진 의장의 기부는 뭔가 달랐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기부를 했다는 점은 다른 기업들의 기부와 비슷했지만,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 기부금을 사용해달라는 요청은 유별난 것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수업이 많아지고 있는데, 의외로 노트북이 없는 저소득 가정의 학생들도 많으니, 교육청과 연계하여 최신 사양의 노트북을 구매하여 이런 학생들에게 전달해달라는 것이 김 의장의 요청이었다. 요즘 초중고생들의 숙제도 수준이 높아서 저가 노트북으로는 그 숙제를 할 수 없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중학생 조카가 있는 나였지만, 노트북의 소유 여부에 따른 교육격차 심화라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홍보팀장이었던 나는 ‘배달의 민족’을 위해서 뭔가 좀 기발하고 효과적인 홍보를 해주고 싶었다. 기부를 한 기업에 대한 홍보는 기업의 사회공헌업무 담당자와 더 나아가서는 최고 경영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배달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배달의 민족’으로 배달을 시켜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오토바이도 좋아하지 않아서 내 눈에 띈 것이 바로 자전거 배달인 배민커넥트였다.
나는 자전거 회사도 1년을 다녔기 때문에 자전거 4대가 있었다. 원래는 흔히 사이클이라고 하는 ‘로드레이스’ 자전거를 많이 탔지만, 배달 가방을 메고 허리를 굽힐 수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서 MTB로 불리는 산악자전거로 배민커넥트를 시작했다. 첫 배달을 위해 주말 오전에 아내에게 운동 좀 하고 오겠다며 슬쩍 나갔다. 배달 가방은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해둔 차에 넣어두었다. 내가 어리둥절하며 처음으로 간 배달 픽업지는 원래 알던 동네 커피숍이었다. 그런데 내 첫 배달음식은 액체인 커피가 아니고 커피 원두였다. 배달지도 역시 알던 근처 아파트였다. 뻥 둟려있는 오래된 아파트 공동현관을 지나서 낡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가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엘리베이터는 힘겹게 한층 한층을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배달을 시킨 호수의 벨을 ‘띵동’ 눌렀더니 할머니가 문을 열어주셨다. 내가 커피 원두가 담긴 비닐봉지를 드리자 “고마워요”라고 하면서 봉투를 받아가셨다. 문이 닫히고 배민커넥트 앱에 ‘전달완료’ 버튼을 눌렀다. 내가 벌은 배달료가 바로 찍혔다. 첫 자전거 배달 전까지 나는 배달음식을 즐겨 먹는 사람은 좀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커피를 직접 내려서 마시고 싶은 할머니처럼 배달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코로나 시대라 면역력이 약한 노인분들은 얼마 안 되는 거리라도 직접 커피 원두를 사러 나서는 것보다는 배달을 시키는 것이 더 안전했다. 이렇게 내 첫 번째 자전거 배달로 의외의 깨달음을 얻었다. 한 가지 더 깨달은 것은 내가 돈을 버는 일에 무척 관심이 많다는 것이었다. 배달이 완료되면 배달의 민족 캐릭터인 ‘배달이’가 펄쩍 뛰면서 배달이 완료되었다고 나오고, 내가 번 배달료가 화면에 나타난다. 자전거 배달은 천장에서 아래로 블록이 떨어지는 너무 단순한 테트리스 게임 같았다. 블록을 맞추지 못해서 블록이 천장에 쌓일 때까지 계속하게 되는 테트리스처럼 나는 스마트폰에 찍히는 3천 원 이상의 배달료를 보면서 계속 자전거 배달을 하게 됐다. 금요일 점심쯤에 일주일 간 내가 번 배달료가 계좌로 입금이 되면 한 주의 피로를 잊고, 힘차게 다음 주 배달을 준비하고 있었다.
2021년 7월, 10번째 회사로 이직을 했다. 이직을 했지만 자전거 배달을 계속했다. 이제 내 자전거 배달의 이유는 배달의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 타기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자전거 배달을 계속하는 이유였다. 그러다 갑자기 자전거 배달을 해야 하는 이유가 확 달라졌다. 3개월 만에 10번째 회사생활을 정리해야 했다. 문제는 이전과 다른 코로나 시대였다. 나는 바로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지 못했다. 이제 자전거 배달의 이유는 그냥 돈이었다. 나도 아내도 안 먹고 안 쓰면 되지만 4살 아들한테도 그렇게 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자전거 배달 시간이 늘어났고,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면서 이 일들을 어딘가에는 이야기하고 싶었다. 만약 코로나 시대가 아니었다면 내가 ‘브런치’라는 공간에 배민커넥트와 관련된 글을 써서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선배, 친구, 후배를 만나서 술을 마시면서 열심히 내 배달 무용담을 이야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는 이런 모임과 수다를 허용하지 않았다. 크고 좋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일수록 출근과 퇴근을 제외하면 외부인과 접촉을 삼갈 수밖에 없었고, 코로나 때문에 타격을 받아서 술 마실 형편이 아닌 사람도 많았다.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이라서 중언부언할 수가 없었다. 나는 엑셀 시트에 내 배달 기록을 적고 저장하기 시작했다.
2021년 11월, 내가 브런치에 올린 배민커넥트 관련 글 덕분에 배민커넥트와 인터뷰를 하고 일반인 모델로 영상도 촬영하게 되었다. 하루 동안 스튜디오와 야외에서 인터뷰와 촬영을 완료했다. 어느덧 겨울이 되었고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나도 추위를 생각하면 자전거 배달 아니 아예 자전거를 타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열이 많고 추위를 잘 안타는 체질이라는 것이다. 친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던 초등학교 4학년 때, 전라남도 광양에서 벌초를 하다가 땡피 벌집을 건드려서 자택 무단침입에 분개한 땡피들에게 엄청난 봉침 공격을 당한 덕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첫눈 기념으로 반바지와 반팔을 입고 농구를 하기도 했는데, 나이가 마흔이 넘으니 겨울의 찬 바람은 피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이브까지 꾸역꾸역 자전거 배달을 하면서 브런치와 엑셀 시트에 기록을 계속한 이유 중 하나는 자전거 배달을 하는 사람들이 오토바이 배달을 하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라이더유니온’이 있다. 라이더유니온은 오토바이 배달을 하는 사람들에게 불공정한 근로조건들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또, 안타깝지만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배달 오토바이 인명 사고 때, 오토바이 배달을 하는 사람은 인터뷰를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말할 수가 있다. 물론 특정 사례만 집중해서 고수익 직종이라고 언급하는 뉴스는 오토바이 배달하는 사람들이 보면 어이가 없겠지만, 여하튼 오토바이 배달하는 사람들은 종종 뉴스에 언급이 된다. 음식 배달 세계에서 오토바이 배달이 메이저리그라면 자전거 배달은 마이너리그 같다. 자전거 배달이 뉴스 소재가 되거나 자전거 배달을 하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22년 1월, 배민커넥트에서 멋지게 편집한 인터뷰 영상이 나왔다. 인터뷰 영상과 배민커넥트 블로그에 올라간 인터뷰 내용 모두 내가 생각하고 말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인터뷰를 짧게 요약하면 ‘배민커넥트는 하고 싶은 시간에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괜찮은 플랫폼이다’ 정도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좀 많았다. 자전거 배달을 하다가 서울시 공공 자전거인 ‘따릉이’로 배달을 하는 20대를 봤다. 자전거 배달은 한건에 3천 원인데 따릉이 대여료를 빼면 뭐가 남을까? 남 걱정만 한 것은 아니다. 뉴스에서 많이 봤지만 치킨 배달을 갔다가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는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쌓여 갔다. 코로나 시대인데 왜 이렇게 대면 배달이 많을까? 자전거 배달료가 최소 3천 원인데 이게 그렇게 비싼가? 배민커넥트 앱에서 GPS 정확도가 향상될 수는 없을까? 왜 주류 배달을 하게 되면 자전거 배달하는 사람이 고객에게 서명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주류를 포함해서 비대면 배달을 요청한 고객에게는 어떻게 서명을 받아야 하나? 왜 배달하는 사람은 마스크를 써야 하고 고객은 당당하게 마스크를 안 쓰는 것일까? 또, 자전거 배달을 하면서 배달을 시키는 사람 입장보다는 이런 서비스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드라마 ‘송곳’의 명대사인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를 실감하게 되었다.
2022년 3월, 배달완료 1,000건을 달성했다. 하지만,빅데이터가 대세인 시대에 내 배달완료 1,000건은 사례의 수에 초점을 둔 정량적인 자료가 되기 어렵다. 내 배달지역이 서울시 강동구와 송파구라는 지역에 한정되어 더욱 한계가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더구나 나는 전업도 아닌 부업으로 자전거 배달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전거 배달을 하는 사람으로 대표성도 부족하다. 배달완료 1,000건을 토대로 한 내 이야기는 자전거 배달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본 자전거 배달 세계에 대한 것이다. 나만의 관점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다. 그라고 17년간 마케팅과 홍보 업무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전거 배달을 좀 더 쉽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해보았다. 또, 요식업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배달음식을 픽업하러 갔던 음식점들을 보고 배운 점들과 몇 가지 제언들도 적어보았다. 아쉽게도 앞서 던져둔 자전거 배달에 대한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답들은 제시하지 못했다. 제 경험을 힌트로 삼아서 ‘우리 같이 한번 이런 것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정도이지 않을까? 다만 한 가지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편리한 생활을 도와주고 있는 플랫폼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로봇과 같은 ‘도구’로 취급하지 말자는 것이다. 음식을 주문하는 것,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을 만들고 업데이트하는 것, 음식을 만들고 포장하는 것, 포장된 음식을 배달하는 것 모두가 앱을 통해서 이루어지니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쉽지 않겠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나는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타인의 처지를 공감할 수 있으며, 이 공감을 통해서 서로간에 배려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한번 ‘오징어게임’ 시즌 1 마지막 장면, 이정재의 대사를 곱씹어본다. “난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은 말이 아니다.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배달음식을 전달해준 누군가는 말이 아니다. 로봇도 아니다. 몸 속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이 따뜻한 피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
- 2022년 3월 바람드리길 B612에서 원이 아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