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로 인형을 꼬옥 안은 꼬마에게
구정 연휴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2월은 다른 달과 비교해서 짧아서 그런 것인지, 계속 바빴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일정이 변경되는 일까지 있었다. 이제 주변에도 확진자가 늘어났다. 5살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도 2년 만에 첫 확진자가 나왔다. 아들은 아직 코로나 백신을 맞지 않아서 밀접 접촉자로 분류가 되니, 주말에 예약해둔 캠핑장도 가지 못했다.
코로나 확산 때문에 자전거 배달에도 변화가 생겼다. 1월까지는 배달음식을 시킨 고객을 만나서 직접 전달하는 대면 배달이 더 많았다.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배달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하고 2021년 12월과 1월 배달 내역을 기록한 엑셀 시트를 통해서 빈도를 확인해보았는데 대면 배달이 더 많았다. 대면 배달로 고객과 만날 때 집에서 나오는 고객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 않는 것이 찝찝했고,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본 올림픽 중에 가장 조용한 베이징 동계 올림픽은 조용히 지나갔고, 코로나 확진자수가 역대 최고치 기록을 연속으로 경신하면서 또 변화가 생겼다.
2월 중순부터는 확실히 비대면 배달이 늘어났다. 배달은 끊이지 않고, 스트레스를 주던 대면 배달까지 줄어들었으니 배달 전성시대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코로나가 계속되면서 고객과 주고받는 짤막한 대화도 역시 사라졌다. 배달 음식을 픽업하러 갈 때는 원래 대화라고 할 것이 별로 없다.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곳들은 배달 음식을 대부분 정확한 시간에 맞추어 준비해주고, 픽업하는 장소도 정해져 있다. 음식 조리가 늦어지거나 특이 사항이 있을 경우에만 사무적인 대화가 있을 뿐이다. 가끔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배달 음식을 픽업하러 와서 음식점 주인과 안부 인사도 하고 농담도 주고받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친근한 대화는 내가 전업 라이더가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대면 배달을 할 때는 짧지만 배달 음식을 고객에게 건네주고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하고, 고객과 인사를 피하기 시작한 것은 나였다. 불안한 마음에 대면 배달이라고 해도 문이 열리면 배달 음식 봉지만 문 옆으로 슬쩍 건네주었다. 서로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것도 어려워졌다.
각박해진 2월 배달 중에 기쁜 일은 딱 두 번 있었다. 하나는 커피를 픽업하러 갔는데, 고생하신다고 배달 마치고 드시라며 아이스커피를 받았던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서, 어물어물하다가 제대로 감사 인사도 하지 못했다. 참 소중한 음료라서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장기 보존할 방법은 없어서 점심 배달을 마치고 집에 와서 감사하게 잘 마셨다. 다른 하나는 3층 단독 주택으로 배달을 하러 갔는데, 3층으로 가는 계단을 찾지 못해서 고객에게 전화를 했고, 전화를 받은 고객이 계단 위치를 설명하려다가 친히 대문으로 내려오셨다. 일명 '3층에서 내려온 그대'라고 할까? 보통 비슷한 경우에는 현재 보이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긴 전화통화를 해야만 했다. 저녁 7시가 넘은 경우에는 스마트폰 플래쉬를 켜서 계단 혹은 쪽문 수색과 전화통화를 동시에 했던 적도 있다. 이 기쁜 일들은 다른 메마른 배달들에 금세 묻혀버렸다.
오늘 저녁 배달은 시작이 좀 슬펐다. 보통은 일을 하러 노트북을 백팩에 넣어서 매고 집에서 나갈 때, 배달 가방을 아파트 지하 주차장 차에 넣어둔다. 저녁 배달을 하려고 배달 가방을 차에서 꺼냈는데, 바지 주머니에 자전거 자물쇠 키를 깜박한 것이었다. 자전거 자물쇠를 풀러야 자전거를 가지고 배달을 갈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올라갔다. 태권도 학원을 다니는 아들이 오후 5시면 돌아오는 것을 알고 있고, 아들에게 붙들릴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 왜 이렇게 빨리 왔냐고 물어보는 아들에게 사 오기로 약속한 바나나를 안 사 와서 가게에 간다고 했다. 아들은 자기도 옷을 입고 따라가겠다고 했는데, 추워서 안된다고 하고 자전거 자물쇠 키를 찾아서 후다닥 나왔다. 저녁 배달을 하기에는 추운 날씨였지만, 이번 주는 배민커넥트 AI배차로 송파구 지역에 배달을 하면 한건에 1,000원씩을 더 준다. 나는 원래 AI배차를 사용하기 때문에 욕심이 나서 저녁 배달을 놓칠 수가 없었다. 오후 7시, 나는 반찬을 비롯해서 다양한 음식들을 잠실 고층 아파트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고층 아파트 공동현관에 배달을 시킨 고객 호수를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안녕하세요?"
인사 한 마디를 들었을 뿐이데 이렇게 기쁠 수가 있다니,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인사를 한 꼬마는 눈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꼬마의 양옆으로 인자해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였다. 꼬마는 집에서 바나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들과 키도 비슷했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딘가 다녀오는 것 같았다.
"어, 그래. 안녕!"
내가 답하자마자 꼬마는 꼬옥 안고 있던 인형을 가리키며
"토토로예요"라고 했다. 처음 보는 나를 보고 인사를 해준 것도 참 고마운 일인데, 자신이 좋아하는 인형까지 소개해주다니... 이제까지 800건이 넘는 배달을 하면서 이렇게 마음을 열고 먼저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이 꼬마가 처음이었다. 나는 꼬마에게 인사를 잘하는 멋진 엉아라는 칭찬을 해주었다. 엘리베이터는 15층과 18층 버튼이 눌러져 있었고, 나는 15층에서 내려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도 꼬마의 경쾌한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자전거 배달이 익숙해질수록,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수록, 나는 점점 말수가 적은 사람이 되었다. 배달음식을 픽업하러 음식점에 들어갈 때 '안녕하세요?'와 배달음식을 픽업하고 나올 때 '수고하세요!' 두 마디를 제외하면, 배달을 하는 두세 시간 동안 다른 사람과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비대면 배달이 많아지면서 배달 주소를 못 찾는 경우를 제외하면 고객과 통화할 일도 없다. 사람의 말소리가 아니라, 배달음식을 문 앞에 두고 사진을 찍어서 배민커넥트 서버로 전송하고 계단을 내려올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안심한다. '배달 완료'니 더 바랄 것이 없다. 다만 고객에게 내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 좀 슬프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코로나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대면 배달을 하는 날이 언제쯤 올까? 마스크 안 쓰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서로 '안녕하세요!'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주고받고, 배달 음식을 받아 들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환한 웃음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토토로를 좋아하는 꼬마야, 아저씨에게 친절하게 인사해주어서 정말 고마워! 아저씨 아들도 토토로를 참 좋아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