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만나다 - 쌍화탕과 핫쵸코
2월의 마지막 날, 점심과 저녁 모두 자전거 배달을 하러 나갔다. 일주일 간 진행되는 송파구 AI 배차 프로모션은 피곤한 몸을 움직이게 했다. 배달지역이 송파구이면 1건당 1,500원을 더 주는 프로모션의 힘은 대단했다. 점심에 강동구에 있는 집을 나서서 송파구로 넘어갔다. 송파구 경계를 넘어선 지점에서 신규 배차를 켰는데 강동구 지역 배달이 잡혔다. 원래 알던 초밥집이라서 배달 음식 픽업을 갔다. 장사가 잘되는 집이라서 배달 5개를 의미하는 봉투 5개에 노련하게 배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좁은 가게였지만, 주방에 3명이 있었고 1명이 홀에서 열심히 포장을 하고 있었다. 조금 기다려서 초밥을 받아 들고 ‘픽업 완료’를 누른 후에 다른 강동구 배달이 들어오지 않도록 신규 배차를 껐다. 600m 정도 떨어진 배달 지점으로 배달을 하고 이번에는 좀 더 송파구 안쪽으로 들어갔다. 몽촌토성역을 지나서 방이동 먹자골목으로 들어가서 신규 배차를 켰다. 배달 한 건에 1,500원 추가 프로모션 덕에 배달 한 건이 5,000원 정도는 되니까 금세 만원 이상을 벌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송파구에서 3건 정도 배달을 하고 난 뒤에 연속으로 콜이 잡히지 않았다. 피크 타임인 점심시간에 15분 정도 콜을 못 잡고 슬슬 자전거를 타고 있으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AI 배차라고 하지만 내가 배차 거부한 것들이 영향을 미친 건인가? 1,500원 프로모션 때문에 배달하는 사람들이 몰렸나? 내일이 삼일절이라 휴일이니 놀러 간 사람들이 많은가? 그 이후에 다시 콜이 잡히기는 했지만, 피크 타임인 점심시간에 이렇게 띄엄띄엄 배달을 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선택을 해야 했다. 달리기로 치면 보폭과 스텝수의 선택과 비슷했다. 빨리 달리려면 보폭을 넓히고 스텝수를 늘리면 된다. 1,500원 프로모션은 늘어난 보폭으로 보면 될 것이고, 배달 건수가 스텝 수로 볼 수 있다. 보폭은 늘어나서 좋은데 스텝수가 비슷하거나 줄어든다면 기록은 더 나빠질 수가 있다. 그래서 그냥 원래대로 스텝수를 늘리기로 했다. 건당 5천 원이 안되더라도 차라리 배달 건수를 늘려서 저녁 배달을 계속했다.
강동구 지역 배달은 아주 익숙하다. 지도를 보지 않고 경험에 의존해서 길을 찾아도 어느 정도 잘 맞는다. 골목골목의 일방통행 여부도 잘 알고 있다.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았고, 마음을 편히 먹고 시작한 저녁 배달이라서 슬슬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빌라 배달이 걸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걸어서 올라가더라도 30층 이상 올라가는 고층 아파트와 비교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없어서 빌라 배달이 더 좋다. 성내동에서 배달 음식을 픽업해서 천호동에 새로 짓고 있는 아파트 뒤쪽으로 갔다. 지도 상에는 길이 없는데, 왠지 길이 있을 것 같아서 가보았더니 좁은 골목길이 나왔던 곳이다. 좁은 골목길부터는 헷갈리기 때문에 스마트폰 지도를 열심히 보면서 배달지로 가고 있었다. 배달지에 거의 가까이 왔는데, 누군가 옆에서 “B88D 배달 오셨죠?”라고 외쳤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배달 음식 번호. 이 네 자리 숫자와 영문 조합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딱 세 사람뿐이다. 배달 음식을 만드는 곳, 나 그리고 배달 음식을 주문한 사람. 급하게 자전거를 세우고 배달 가방을 열어서 주섬주섬 배달 음식을 꺼내서 건넸다. 원래 대면 배달로 고객 요청이 되어있어 배달 완료만 누르면 됐다.
“여기요!”
“저, 수고 많으세요.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제까지 음식을 픽업하면서 뭔가를 받아본 적은 있지만, 배달을 시킨 고객에게 뭔가를 받은 적은 없다. 850건 배달 완료를 할 동안 내가 음식점에서 받았던 것들은 많지 않다. 고객들에게 서비스로 주는 작은 캔 음료 몇 개와 아이스커피 한 잔이 전부다. 배달을 시킨 고객이 몸소 골목 앞으로 나와서 배달 음식을 받아가는 것도 고마운데… 감동을 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키 큰 청년이 민망하지 않도록 그가 불쑥 내민 쌍화탕 한 병과 핫쵸코 분말 스틱 2개를 빨리 받아야만 했다.
“아…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감사하다는 말로 답할 수밖에 없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마웠다. 배달을 온 내가 뭐라고 이런 호의를 베풀어주시나요? 잘 아는 길이라서 배달료 외에 뭔가를 더 받을 만큼 수고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
언제 봤는지 기억도 잘 안나는 동서식품 맥심 커피믹스 TV 광고의 헤드 카피다. 예나 지금이나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코로나 때문에 최근 2년에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은 커녕 못 만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랫 만에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만난 대가인지 이후 저녁 배달은 꽤 험난했다. 강동구에서 고층 아파트들이 많은 고덕동 쪽으로 넘어가서 열심히 치킨을 나르다 8만 원어치 태국 음식을 픽업하러 갔다. 저녁 7시, 고층 아파트 상가에 있는 음식점은 한 테이블에 가족으로 보이는 세 명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방에는 한 명, 홀에는 한 명이 있었고, 홀에서 일하시는 분이 음식이 많아서 좀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배달원은 배달을 마치고 다음 배달을 20분 안에는 픽업하러 가야 한다. 20분이 넘으면 배달을 수행하고 있는지 배민커넥트 앱으로 메시지가 온다. 내가 가게 도착을 했으니 이런 문제는 없지만, 가게에 도착해서 15분을 기다렸다. 오픈 키친이라서 주방에서 한 명이 열심히 다섯 가지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배달을 시킨 고객 입장에서 이런 과정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치열한 과정의 결과물인 따뜻하고 이국적인 요리가 빨리 배달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던 가족이 면 요리 국물까지 후루룩 마실 때쯤에 배달 음식을 픽업했고 배달지로 갔다.
고덕동에 새로 생긴 아파트들은 평지가 아닌 곳에 있는 곳들이 꽤 있다. 오르막을 지나야 만 하고 낮에는 괜찮은데, 밤에는 동별로 입구를 찾아가기가 어렵다. 태국 음식의 배달지는 이런 곳이었고, 오토바이 출입금지 안내판을 넘어서 열심히 105동을 찾아갔다. 공동 현관이 분리수거하는 날이라서 열려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보니 15층에서 올라가고 있다. 배달지는 5층이었다. 원래 기다리는 것도 싫어하고, 저녁 시간 마지막 배달이라서 빨리 마치고 집에 가고 싶었다. 아직까지 다섯 살 아들은 집에 돌아오는 아빠를 배달 음식보다는 훨씬 좋아하니까… 배달 가방을 메고 계단으로 달려서 올라갔다. 비상구를 열고 5층에 도착하니,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던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가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있었다. 배달지인 501호의 문도 열렸다. 가족의 따뜻한 저녁 식사를 배달했으니, 내 가슴도 조금 따뜻해진 기분이었다.
이제 3월, 배달을 하면서 내 가슴에도 봄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