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의 시한폭탄 연봉 조정제도
LA 다저스의 영웅 코디 벨린저와 보스턴의 심장 무키 베츠가 MLB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먼저 벨린저는 1988년 커크 깁슨 이후 다저스 야수로는 처음으로 MVP를 수상했고 이번 연봉 조정 신청 자격을 가진 1년 차 선수로는 최대액인 1,15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2018년 연봉 60만 5천 달러에서 20배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무키 베츠 역시 2,7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으며 3년 차 연봉 조정 신청 자격을 가진 선수들 중 가장 높은 연봉 기록을 경신했다. 베츠는 2년 차 최다 연봉 기록(2,000만 달러)도 보유하고 있다.
KBO리그도 연봉조정신청 제도가 있지만, 유명무실한 제도란 비판을 받을 정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MLB의 연봉 조정 제도의 특징과 KBO리그의 연봉조정제도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MLB 연봉조정신청
연봉조정신청 제도는 1974년 단체협약을 통해 도입됐다.
MLB에서 서비스 타임 3년 이상(6년 이하) 뛴 선수는 연봉조정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특이하게 2년 차에 연봉조정신청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슈퍼2’라고 부른다. 슈퍼2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데뷔 후 2~3년 차 구간에 있는 선수들 중 서비스 타임이 리그 상위 22% 안에 드는 선수들일 경우 부과되며 대표적으로 세인트루이스에서 뛰고 있는 덱스 파울러가 해당된다.
어쨌든 일반적으로 3년 차까지는 구단이 주는 대로 연봉을 받지만 4년 차부터는 구단의 오퍼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클레임을 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생기는 것이다. 보통 서비스 타임 6년 차에 FA를 선언하는 시장 상황에 3~5년 차 선수들의 입지를 지키며 구단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는데 목적이 있다. FA 권리를 갖지 못하는 선수들의 경우 구단이 보류권을 갖는 만큼 어떻게든 연봉을 깎으려 하는 게 당연지사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신청 방법은, 만약 연봉 조정 자격이 있는 선수가 CBA(단체협약)에서 정한 기안까지 계약에 실패할 경우 선수와 구단이 각자 희망하는 연봉을 연봉 조정 위원회에 제출한다. 연봉 조정이 신청되면 연봉 조정 위원회는 야구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로 조정 위원을 추천한다. 추천한 인물들 중 MLB 선수 노동조합과 MLB 사무국에서 원하지 않는 인물을 빼는 방식으로 3명의 위원을 추린다.
위원들이 선출되면 청문회가 진행되며 청문회에서 선수와 구단은 각자 제출한 연봉이 합당한 이유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보통 선수가 먼저 이유를 설명하고 구단이 반박하고 다시 선수가 설명하는 식으로 공수가 바뀌면서 진행되며 3번의 텀을 마치고 구단이 반박하는 순서로 마감된다.
결과는 선수와 구단 중 어느 쪽 주장이 합당한 지 따져 한쪽 연봉을 선택한다. 연봉 조정 위원이 합의선을 제시해 중간 금액을 결정하는 경우는 없다. 선택된 연봉으로 선수의 최종 연봉은 결론지어진다.
보통 청문회가 마무리되기 전 양측이 합의해 계약을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번 벨린저와 베츠의 경우도 일찌감치 합의해 계약을 발표한 경우에 해당한다. 1974년에 처음 도입된 이후 총 572번의 연봉조정심리가 열렸다. 그중에 구단의 손을 들어준 것이 323번으로 56.47%로 승률이 약간 높고 선수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은 249번으로 45.53%였다.
KBO리그 연봉조정신청
KBO리그도 구단과 선수간의 연봉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연봉조정신청 제도가 존재한다. 겉으로 보면 3년 차 이후 선수에게 주어지는 자격 등이 MLB의 제도가 비슷해 보이지만 속을 자세히 뜯어보면 유명무실함을 알 수 있다.
일단 MLB는 6년 차 이후 계약이 종료되는 모든 선수들이 FA 자격을 얻지만 KBO리그는 FA 자격이 되는 선수들이 FA 권한을 행사하는데 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실력이 월등하게 뛰어난 선수가 아니라면 다른 팀이 보호조항을 감수하면서 자신을 영입할지에 대해 확신 없이 FA를 선언하기란 불가능하다. 만약 FA 선언 이후 소속팀과 계약이 무산되면 1년 이상 무적 선수로 남을 각오도 해야 한다. 최근엔 사인 앤 트레이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선수들이 살 방법을 찾아주긴 하지만 이는 팀이 선수를 위해 ‘특혜’를 준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린다.
FA도 제대로 선언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 보유권이 팀에 묶인 3~7년 차 선수들이 연봉조정신청을 하기란 눈치 보이는 일이다. 게다가 야구와 상관없는 사람들로 조정 위원회가 이루어지는 MLB와 달리 KBO리그는 KBO 총재가 결정을 내린다. 최근까지 구단주 출신이 KBO 총재에 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구단들에게 운영비를 의존하는 KBO리그 특성상 구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실제로 1984년 해태 강만식-MBC 이원국 선수 이후로 96번의 연봉조정 신청이 있었지만 선수가 승리한 경우는 2002년 LG 트윈스의 유지현이 유일했다. 이중 76번은 중도 계약 합의가 됐고 나머지 19번은 구단이 승리했다. 2010년 롯데 이대호가 타격 7관왕을 차지하고도 2003년 이승엽이 받은 최고 연봉 6억 3천만 원과 같은 금액을 구단이 제시하자 7억 원을 요구하며 연봉조정신청을 냈다가 패하기도 했다.
만약 선수가 승리하더라도 그 뒤에 오는 후폭풍도 문제. KBO 규약상 선수가 승리하고도 구단이 거부하면 중재된 연봉을 무조건 지급하도록 명시되어 있지만, 구단이 마음먹고 1년 치 연봉 날린다는 생각으로 선수를 없는 사람 취급할 경우 처벌할 근거가 없다. 또한 그 해엔 조용히 지나가더라도 1~2년 뒤 불이익을 줄 경우 막을 방법도 없다. 2002년 승리한 유지현도 2년 뒤 은퇴를 선언했다.
최근 젊은 선수 육성과 비용 줄이기에 앞장서고 있는 KBO리그 구단의 형태를 봤을 때 지금과 같은 연봉조정 제도로는 선수들의 불만과 리그의 리스크를 감당하긴 힘들어 보인다. 시스템과 효율화가 목표라면 명확하고 공정한 제도로 개정하고 손보는 것이 먼저 선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