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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츠파이 Nov 13. 2023

'29년만에 되찾은 우승' LG 트윈스 눈물의 귀환

'한의 시리즈' 시리즈 3탄, LG 트윈스

LG 트윈스의 우승을 확정짓기까지 딱 1아웃만 남은 상황. 

마운드엔 LG의 마무리 고우석이 있었고, 타석엔 공교롭게 '한때 LG의 유망주' 구 배병옥-현 배정대가 드러섰다. 한국시리즈 최고의 타자였지만 고우석은 정면 승부를 펼쳤고 배정대의 마지막 타구는 2루수 신민재에게 잡혔다. 


29년만에 LG 트윈스의 한이 풀린 순간이다. 

무려 7명의 대통령이 바뀌고, 서태지와 듀스가 풍미했던 가요계는 이제 뉴진스와 아이브와 같은 상큼한 걸그룹들이 주류가 됐다. 당시 13살의 기억 속에 갖혀살던 나도 43살이 되서야 더 뚜렷한 화질로 기억속에 LG 트윈스의 우승을 다시 새길수 있었다.


"우승 2년마다 할 수 있는거 아냐?" 90년대 최강팀 LG

1990년 럭키금성은 MBC로부터 야구단을 인수한다. 사실 프로야구 원년부터 참여할수도 있었지만 구자경 회장이 해외출장 중이었던터라 참여가 무산됐다가 8년만에 프로야구 판에 뛰어든 것이다. 모기업은 럭키금성이었지만 세련된 네이밍으로 팀명을 짓고자 하는 구단주의 의지가 반영되어 LG 트윈스란 이름을 갖게 된다.



90년 LG 트윈스는 백인천 감독의 카리스마를 중심으로 팀이 똘똘 뭉치며 창단하자마자 우승을 차지했다. 바로 직전해 정삼흠이 감독과 항명사태를 벌이며 감독을 잘라냈던 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단합력이었다.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4-0으로 격파한 LG는 6월까지 꼴찌였던 팀이 1위까지 올라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기록을 남겼다. 


94년 LG 트윈스는 이광환 감독이 취임한 첫해, 두번째 우승을 차지한다. 1994년 우승은 단순한 프로야구 팀의 우승이 아니었다. 이전까지 프로야구는 아저씨들이 술에 취해 욕하며 보는 스포츠란 이미지가 강했다면, 1994년 LG 트윈스는 김재현-서용빈-유지현으로 불리는 '신인 트로이카'와 신바람 야구로 불리는 깔끔한 야구를 무기로 젊은 야구팬들을 대거 유입시키는 물꼬를 텄다. 


'스타 시스템'이라 불리는 투수 분업 시스템 역시 1994년 이광환 감독이 KBO리그에 첫 도입했다. 

그전까지 투수들의 혹사가 당연시 됐다. 선발로 나온 선수가 팀 사정에 따라 중간 계투나 마무리로도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광환 감독은 철저하게 투수 보직을 정하고 절대 원칙을 흔들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체계적인 투수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 


여기에 장기적인 팀 성장을 이끄는 프론트진, 야구에 진심인 구단주 등 LG 트윈스는 KBO리그에 선진적인 야구팀이란 무엇인가? 란 물음에 모범답안을 보인 첫 사례였다. 


워낙 강력한 전력에 탄탄한 지원까지 힘입은 LG 트윈스의 우승이 1994년이 마지막일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94년 우승멤버이자 현 LG 단장인 차명석 단장도 "우승은 2년마다 할 수 있을줄 알았다" 라고 할 정도니까 말이다. 



한번 망가진 팀이 살아나는데 걸린 시간 '29년'

1994년 우승 이후 LG 트윈스는 2023년 한국 시리즈 우승을 다시 차지하기까지 29년이 걸렸다. 1997년과 1998년, 2002년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현대-해태-삼성에게 각각 발목 잡혔고, 2002년 이후엔 플레이오프도 못올로가는 약팀이었다. 6-6-6-8-5-8-7-6-6-7로 불리는 10년 암흑시대를 겪기도 했다. 


한때 KBO리그를 선도했던 팀이 이렇게 망가진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나치게 능력을 과신한 프론트와 구단주에 있었다. LG가 1994년 먼저 선진적인 야구단 운영 기법을 도입한 것은 맞지만, LG가 아니었더라도 2-3년안에 다른 팀들도 같은 형태의 노하우를 적용했을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이미 하고 있던 야구단 운영 기법이었고, LG가 성공 사례를 만들자 삼성이나 OB, 새롭게 KBO리그에 합류한 현대 등 많은 팀들이 발빠르게 따라잡았다. 


그리고 단순히 기법만 따라하는게 아니라 삼성처럼 슈퍼스타들을 끌어모으는 자본력 쏟아붓거나, 두산처럼 팜시스템을 탄탄히해 젊은 유망주들을 육성하는 KBO리그 맞춤 팀운영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LG는 1994년에서 정체되었다. 자신들이 정체된 줄 모르고 구단주나 프론트는 여전히 자신들이 야구에 깊은 안목을 갖고 있고, 팀운영에 정답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아무런 고민없이 '리빌딩' 버튼을 눌러버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끈 김성근 감독을 경질시키고 1994년 LG 우승 감독인 이광환 감독을 재임명한 사건일 것이다. 'LG다운 야구를 하지 않는다'라는 매우 추상적인 이유를 들며 감독을 갈아치운 프론트는 정작 LG다운 야구가 무엇인지, 그런 야구를 하려면 어떻게 전력을 구축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다. 


당시 유망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경수, 박병호, 정의윤, 이용규 등 국가대표팀 유망주들이 LG 트윈스를 거쳐갔다. 

대형 FA계약을 안했던 것도 아니다. 

홍현우, 진필중, 마해영, 박명환을 대형 계약으로 영입했지만 먹튀 리스트만 장식했다. 


장기적인 계획없이 유망주와 대형FA만 쏟아부으면 알아서 팀이 강해질 것이란 안일한 팀 운영의 결과는 10년간 가을무대도 구경못하는 암흑기였다. 


박종훈 감독 시기엔 청문회를 열기도 했고, 2012년엔 긍정적인 시위를 하겠다며 축제 시위를 펼치는 진풍경을 만들기도 했다.


미래를 준비한 10년, 마침내 결실을 맺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복귀한 이병규와 MLB에 적응하지 못한 봉중근과 류제국이 합류하며 전력 보강에 나선 LG는 김기태 감독의 과감한 개혁과 함께 2013년 가을무대에 복귀한다.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게 덜미를 잡히며 탈락했지만, 2013년을 기점으로 LG는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신인 스카우트에 공을 쏟으며 가능성 높은 신인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매번 두산의 댑스를 부러워하던 LG는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두산 못지 않은 댑스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2016년 3라운드 홍창기

2017년 2차 1라운드 고우석

2018년 10라운드 문성주

2019년 1차 1라운드 이정용, 2라운드 정우영, 3라운드 문보경

2020년 2차 1라운드 김윤식, 5라운드 유영찬


거의 매년 올스타급 선수들을 배출했다. FA계약도 치밀한 계획 아래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우승에 실패했지만 이진영과 정성훈이 합류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더니 2018년 김현수, 2022년 박해민, 2023년 박동원의 합류는 이번 시즌 우승을 이루는데 신의 한수였다. 김현수는 LG의 덕아웃 리더로 경기장 안팎에서 모법이 됐고, 박해민은 매년 두산의 정수빈의 넓은 수비 범위에 막혀 눈물을 흘렸던 과거를 그대로 갚아줄 수 있는 화룡정점이었다. 박해민이 합류한 덕에 홍창기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며 타격에 집중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계약 당시엔 오버페이란 지적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야알못'들의 오지랍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역대급 한국시리즈 '29년의 한을 풀다'

LG는 정규시즌 86승 56패 2무로 2위 KT와 6.5경기차 여유있는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로 직행했지만, 불안요소는 존재했다. 외국인 에이스 플럿코가 부상을 이유로 한국시리즈에 합류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고, 지난 몇년간 단기전에서 패하기만 했던 주축 선수들의 경험부족도 약점으로 지적됐다. 


실제로 한국시리즈 1차전은 마무리 고우석이 무너지며 2-3 역전패를 당했다. 150km가 넘는 속구를 뿌리던 주전 마무리의 부진은 한국시리즈 행보가 가시밭길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한국시리즈 2차전도 선발 최원태가 0.1이닝 4실점을 허용하며 무너지는 대참사가 일어나며, 2022년 플레이오프 플럿코 대참사의 데자뷰가 찾아오는 듯 했다. 하지만 염경엽 감독은 류지현 감독과 달랐다. 선발 최원태를 과감히 내리고 벌떼 야구를 시전하며 이후 KT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타선도 조금씩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8회말 박동원이 거짓말 같은 역전 투런 홈런을 터트리며 한국시리즈의 분위기를 확 바꿨다. 

한국시리즈 3차전은 그야말로 KBO리그 한국시리즈 역사상 가장 극적인 경기였을 것이다. 

오스틴의 선제 3점 홈런이 터지며 쉽게 가는듯했던 경기가 3-4로 뒤집혔고, 6회 박동원이 다시 한번 역전 투런 홈런을 터트리며 리드를 되찾았다. 하지만 8회말 믿었던 오지환이 쉬운 더블 플레이 찬스에서 실책을 범하며 대위기를 만들었고 고우석이 박병호에게 역전 투런포를 얻으맞으며 악몽이 시작되는듯 했다. 


하지만 오지환은 난세의 영웅이었다. 9회 2아웃 1-2루 찬스에서 만화 같은 역전 3점 홈런을 터트리며 역적에서 영웅으로 탈바꿈했다. 

위기를 넘긴 LG는 자신감을 되찾고 4-5차전에서 KT를 손쉽게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잠실 구장에 모인 2만명의 팬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우승 세리머니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함께하며 선수들과 기쁨을 함께 누렸다. 


젊은 유망주들이 즐비하고 선수 댑스는 KBO리그 최고라 평가받는 LG가 앞으로 왕조를 구축할 것이란 평가도 받는다. 물론 우리는 그동안 많은 우승팀들을 보았고 이들이 여러가지 변수로 인해 연속 우승에 실패하는 것 또한 많이 봐왔다. LG도 이번 우승 이후 향후 몇년간 같은 기쁨을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00년대 그들이 했던 실수에서 얻어낸 교훈을 잊지 않는다면, 그 주기는 길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LG 트윈스의 우승은 한화나 롯데처럼 강제 리빌딩 이후 암흑기를 겪는 팀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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