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 시리즈' 시리즈 2탄, 한신 타이거즈
한신 타이거즈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이어 두 번째로 인기가 많은 팀이지만, 동시에 모든 야구팬들이 놀리는 웃음벨 이미지도 강한 팀이다.
한신은 일본 '제 2의 도시' 오사카를 연고지로 갖고 있다. 오사카는 한국으로 치면 부산과 매우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억센 사투리와 유난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시끄러운, 그러면서도 정이 많다는..
이런 유별난 연고팬을 가진 전국 인기 NO.2 팀이 1936년부터 시작된 일본 프로야구의 유구한 역사 중에 우승은 단 1번이다.
야구를 못하는 팀을 좋아하면 그냥 한신만 좋아하면 될 것을.. 한신팬들은 리그 최강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최대 라이벌이 자신들이라 칭하며 온갖 허세를 부린다.
이런 유난스런 점은 다른 지역팬들에게 충분한 놀림거리다. 마치 롯데를 바라보는 그런 시선이라 해석하면 비슷할 것이다.
한신은 1934년 창설한 일본 프로야구의 원년 멤버다. 오사카 타이거즈란 이름으로 창단해 1961년 한신 타이거즈로 이름을 바꾸고 지금까지 그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역사는 유구하지만, 1980년대까지 이렇다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우승 밥 먹듯이 하는 요미우리에게 간혹 딴죽을 거는 고춧가루 역할만 했을 뿐. 양대 리그로 바뀌기 전인 1950년까지 4번의 우승, 양대리그로 바뀐 이후 6번(2023년 포함)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일본 시리즈 우승은 1985년이 유일했다.
그들이 라이벌이라 여기는 요미우리가 22번의 일본 시리즈 우승과 38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같은 오사카 연고를 쓰면서 인기면에서 한신에게 확연히 밀리는 오릭스 버팔로스가 5번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정도면 한신팬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처받았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런 한신팬들이 '라떼는 말이야~'라면서 행복하게 떠올리는 시절이 있으니 바로 유일한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1985년이다.
1985년 한신은 카케후-바스-오카다로 이어지는 전설의 클린업 트리오를 앞세워 74승 49패, 2위인 히로시마를 7경기 차로 제치고 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엔 클라이막스 시리즈 없이 리그 1위끼리만 일본시리즈에서 맞붙는 형식이었다.
.350-54홈런-134타점을 기록한 바스는 그야말로 상대팀 투수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존재였다. 바스의 존재는 오카다(.342-35홈런-101타점)와 카케후(.322-34홈런-84타점)에게 우산효과처럼 엄청난 공격 효율을 뽑아냈다. 1985시즌 한신의 팀 득점(731점)은 팀 득점 2위인 요미우리와 115점이나 벌어질 정도로 압도적인 공격력을 무기로 삼았다.
특히 85년 4월 1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터트린 백스크린 3연타석 홈런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역사적인 장면이다.
1-3으로 뒤진 7회말 한신 공격.
2사 1-2루에 요미우리 투수는 마키하라였다. 1981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 지명된 간판 투수. 그 시점까지 타율 .133였던 바스였기에 마키하라가 쉽게 경기를 마무리할거라 모두 예상했지만 바스의 역전 3점 홈런이 터진다.
그리고 뒤이어 카케후와 오카다도 마키하라를 상대로 연달아 배너스아이에 떨어지는 큼지막한 백투백투백 홈런을 터트리며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이 경기를 계기로 바스는 완전히 다른 타자가 되어 팀 우승을 이끌었다.
일본 시리즈에서도 세이부 라이온스를 4승 2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는데, 바스는 1차전 결승 3점 홈런, 2차전 역전 결승 투런 홈런을 터트리는 등 우승의 일등 공신으로 활약했다.
1985년 이후 한신이 다시 일본시리즈로 돌아온건 2003년이 되어서였다.
주니치를 강팀으로 이끌었던 호시노 감독이 한신에 부임했고, 히로시마 4번타자인 가네모토가 FA로 이적했다. MLB 양키스에서 뛰다 복귀한 이라부와 신인 에이스 이가와까지 가세하며 한신은 오랫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일본시리즈 상대였던 다이에 호크스의 전력이 더 강했다. 3승 2패로 시리즈를 리드하기도 했지만 상대 홈인 후쿠오카에서 열린 6-7차전을 모두 내주며 통한의 패배를 당했다.
아쉽게 패했지만 주축 선수들이 젊고, 탄탄한 투수진을 갖추고 있어 한신의 우승은 머지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2005년 다시 일본시리즈에 오른 한신 타이거즈는 바비 발린테인 감독 지휘 아래 첫 우승을 노리는 치바 롯데 마린스를 만났다. 팀 전력이나 경험상 한신이 조금 우세하단 평가를 받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물론 한신도 변명할 여지가 있다. 당시 퍼시픽리그는 센트럴리그보다 밀리는 인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클라이막스 시리즈(플레이오프)를 막 도입한 때였다. 반면 보수적인 센트럴리그는 이를 지켜보며 도입을 미뤘었는데, 치바 롯데가 치열한 클라이막스 시리즈를 펼치는 동안 한신은 경기없이 푹 쉬다보니 경기 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545-3홈런을 때린 이승엽과 8연타석 안타를 포함해 .667의 타율을 기록한 이마에가 미쳐날뛰는 바람에 한신이 자랑하는 투수진은 구멍 뚫린 문지방처럼 처참하게 부서졌다.
2008년엔 일본 시리즈에 오르지 못했지만 다른 의미로 역사의 굴욕을 남긴 시즌이었다. 7월 9일 기준 51승 23패를 기록하며 2위 요미우리와 13게임차의 1위를 내달렸던 팀이 끝내 요미우리에게 따라잡히며 2위로 마감한 것이다. NPB 역사상 최다 경기차가 뒤집힌 사례로 남았다.
2014년 오승환을 영입한 이후 다시 한번 일본 시리즈에 오른 한신은 클라이막스 시리즈에서 요미우리를 완파하고 일본시리즈에서 소프트뱅크를 만난다. 2003년 다이에 호크스란 이름으로 한신을 무너트린 그 팀이다.
에이스 랜디 메신저가 호투를 펼치며 1차전을 6-2로 잡아낼때까진 분위기가 좋았지만, 이번에도 타선이 문제였다. 2~4차전까지 단 2득점에 그치며 3연패를 당했다. 특히 4차전은 연장 10회까지 0-0으로 버텼지만, 나카무라 아키라에게 끝내기 3점 홈런을 얻어맞아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벼랑 끝에서 맞은 5차전..
7회까지 양 팀은 0-0으로 맞섰지만 8회말 소프트뱅크가 마쓰다의 적시타가 터지며 선취점을 뽑았다. 0-1로 뒤진 한신은 9회초 소프트뱅크 마무리 사파테의 제구 불안을 이용해 1아웃 만루 찬스를 잡았다. 그리고 타석엔 MLB에서 돌아와 한신으로 이적한 니시오카가 타석에 나섰는데, 결과는 허무한 더블 아웃이었다.
그것도 NPB 뿐 아니라 야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끝내기 수비방해.
8회 오승환이 위기를 막아내지 못하고 결승점을 헌납했지만, 니시오카의 명백한 잘못이 워낙 큰 탓에 우승 실패의 원흉은 다행히(?) 니시오카가 됐다.
2023년 한신은 노장 오카다 감독이 부임하며 어수선했던 팀 분위기를 다잡았다. 10승 6패, 평균자책 1.76을 기록하며 평균자책 1위를 기록한 무라카미를 비롯해 이토, 사이키 등 5명의 선발 투수가 모두 두자릿수 승수를 거둘 정도로 뛰어난 투수력을 앞세워 한신은 일찌감치 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18년만에 리그 우승을 되찾은 날 한신팬들은 다시 도톤보리 강에 몰렸지만, 다행히 불상사는 없었다고 한다. 천명 단위로 뛰어내렸던 18년 전과 달리 2023년엔 10명도 안되는 열성팬만이 뛰어내렸다고 전해진다.
클라이막스 시리즈에서 히로시마를 완파한 한신은 일본 시리즈에서 2022년도 우승팀이자 지역 라이벌(?)인 오릭스를 만났다. 시리즈 3승 3패 호각을 이룰 정도로 치열한 접전을 펼쳤지만 7차전 전망은 한신에게 불리했다.
쿄세라돔 원정인 7차전에 6선발 아오야기를 선발로 내보낼 수 밖에 없었던 반면, 오릭스는 10승 4패, 평균자책 2.27을 기록한 2선발 미야기를 등판시킨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로 한신의 대승으로 끝났다. 미야기를 상대로 초반부터 대량득점을 터트렸고 아오야기는 오릭스 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9회 행가레 투수로 나온 이와자키가 긴장한 탓인지 돈구에게 홈런을 얻어맞고 곤잘레스에게 안타를 허용했지만 스기모토의 큼지막한 타구가 좌익수에게 잡히며 한신의 38년 한이 풀렸다.
1985년 우승 당시 한신 팬들이 KFC앞에 있는 커낼 샌더스 상을 도톤보리 강에 던진 사전을 빗대 '커낼 샌더스의 저주'란 말도안되는 도시괴담도 함께 깨졌다. 물론 그동안 한신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것이 저주 때문은 아니지만, 한신팬들은 이 상을 놓고 감사제를 치루는 등 야구에 진심을 담는 모습을 보여줬다.
텍사스에 이어 NPB의 한신이 우승의 한을 풀었다. 이제 29년만에 우승을 노리는 LG 트윈스의 한도 풀릴지 흥미진진하게 한국시리즈를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