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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츠파이 Nov 04. 2023

'63년만에 월드시리즈 우승' 텍사스 한을 풀다.

'한의 시리즈' 시리즈 1탄, 텍사스 레인저스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 2볼인 상황. 

조쉬 스보츠의 바깥쪽 높은 슬라이더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자 심판은 삼진콜을 외쳤다. 상대타자인 케텔 마르테는 등을 돌리고 물러섰고, 텍사스의 배터리는 감격을 이기지 못한 듯 펄쩍 뛰어올랐다.

무려 63년을 기다린 텍사스 레인저스의 첫 월드시리즈 우승이 확정된 순간이다. 


63년의 기다림

텍사스 레인저스의 역사는 1961년 창단한 워싱턴 세네터스부터 시작됐다. (워싱턴이 연고인 팀이지만 현 MLB 팀인 워싱턴 내셔널스와는 연관이 없다. 내셔널스의 원류는 몬트리올 엑스포스다.) 사실 그 이전에 같은 동명의 팀이 있었다. 


1901년 아메리칸 리그 창설 멤버인 워싱턴 세네터스가 먼저 존재했다. 이 팀이 1960년 미네소타로 연고를 옮기자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가뜩이나 피해의식을 갖고 있던 워싱턴 D.C. 팬들의 불만을 무마하고자 같은 이름의 워싱턴 세네터스를 창단시킨다. 


기존 세네터스의 역사와는 전혀 다른 팀임을 선언했지만, '최약체' 이미지는 그대로였다. 이렇다할 스타 플레이어 한 명 배출하지 못한채 1972년 텍사스 레인저스로 재창단하기 전까지 30~40% 승률에 머물며 포스트시즌 근처도 가지 못했다. 단 한 시즌도 빠짐없이 강팀들의 디딤돌 역할만 한 것이다. 


이런 팀 좋아하기 쉽지 않다

1967년 팀을 매입한 팀 쇼트마저 재기불능의 팀을 어찌하지 못하고 처분하려하자, 텍사스주 알링턴 시장이 나서 텍사스로 연고지 이전에 성공한다. 팀 이름도 텍사스의 순찰대원들을 가리키는 단어 '레인저스'로 바꾸며 '새술은 새부대에 담는'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여전히 암울한 텍사스 레인저스

연고지까지 이전했지만 텍사스는 여전히 약팀의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몇몇 구단주들이 과감한 투자를 하며 반짝하는 시즌이 있긴 했지만, 긴 안목 없이 단기 처방에만 급급하는 바람에 팀 체질이 바뀌진 않았다. 


불세출의 투수 놀란 라이언이 1989년 팀에 합류해 300승과 5,000탈삼진의 금자탑을 쌓는 대기록을 달성했지만, 이 시기에도 포스트시즌은 구경도 하지 못하는 약팀이었다. 


텍사스의 첫 전성기는 아마도 4-50대 야구팬이라면 기억하는 시대일 것이다. 


'명예의 전당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를 비롯해 후반 곤잘레스와 딘 파머 등 탄탄한 타력을 앞세워 1996년 사상 첫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1999년엔 라파엘 팔메이로가 팀에 재합류해 47홈런-148타점을 폭발시켰고, 2001년엔 '넥스트 아이콘'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10년 장기계약을 잡으며 폭발적인 타선을 갖췄다. 하지만 구멍난 투수진은 항상 텍사스의 발목을 잡는 바람에 디비전 시리즈를 넘지 못했다. 


텍사스는 투수진의 약점을 메우기 위해 2002년 당대 최고의 파워피처였던 박찬호를 5년-6,500만 달러라는 당시 최대규모의 FA계약을 맺었지만,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MLB가 꼽는 역대급 비효율 계약이 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요즘 하도 대형 계약들이 즐비해지면서 박찬호 계약이 돋보이지 않게 됐다. 


'통한의 아웃 1개' 아쉬웠던 2010년대

마크 테세이라, 마이클 영, 행크 블레이락 등 뛰어난 타자들을 육성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여전히 텍사스는 투타 전력 불균형이 시달리며 2010년대까지 이렇다할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느낀 텍사스는 2006년 존 대니얼스를 단장으로 임명한다. 당시 대니얼스의 나이는 28살로 MLB는 물론이고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나이어린 단장이었다. 파격 중의 파격 인사였지만, 테오 엡스타인이나 프리드먼 등 젊고 똑똑한 인재들이 MLB 단장이나 스탭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대니얼스는 초반 경험 부족 탓에 어이없는 트레이드를 단행하긴 했지만, 1-2년 경험이 쌓인 이후론 텍사스를 체질부터 바꾸는 좋은 움직임을 보여줬다. 


독선적인 벅 쇼월터 감독을 경질하고 좋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춘 론 워싱턴 감독을 영입해 팀 분위기를 바꿨다. 몸값이 높은 스타 플레이어들을 젊고 유능한 선수들로 맞바꾸며 팜 시스템을 한순간에 개선했다. 뿌리부터 강해진 텍사스는 2010년 90승 72패 지구 우승을 차지하더니 팀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조쉬 해밀턴과 엘비스 앤드루스, 이안 킨슬러, 마이클 영, 클리프 리 등 투타에 짜임새 있는 전력으로 자신만만했지만 상대는 '가을의 사나이' 범가너가 버티는 샌프란시스코였다. 범가너를 위시해 맷 케인, 팀 린스컴 등 에이스급 투수들이 버틴 샌프란시스코의 벽을 넘지 못하고 1승 4패로 패퇴했다. 


2010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젊은 유망주들이 더욱 성장한 텍사스는 2011년에도 월드시리즈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역사상 최고의 3루수 중 한 명인 아드리안 벨트레를 영입해 더욱 강해진 텍사스는 월드시리즈에서도 세인트루이스를 만나 3승 2패까지 밀어붙이며 우승을 바로 눈앞에 뒀다. 6차전 9회말 7-5로 앞서있던 텍사스는 2011시즌 2승-3패-32세이브, 평균자책 2.74를 기록한 마무리 네프탈리 펠리스를 마운드에 올렸다. 


푸홀스에게 2루타를 맞고 랜스 버크만에게 볼넷을 허용하긴 했지만, 삼진 2개를 잡으며 2사 2-3루 상황으로 경기를 이끌었다. 세인트루이스는 전문 대타 데이빗 프리즈를 기용했는데 볼카운트 2스트라이크 1볼에서 통한의 동점 3루타를 허용했다.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들었다. 


다행히 텍사스는 10회초 조쉬 해밀턴의 투런 홈런이 터지며 다시 우승을 목전에 뒀지만, 이번엔 데런 올리버와 스캇 펠드만이 아웃 카운드 3개를 잡지 못하고 다시 동점을 허용한다. 


그리고 연장 11회말 텍사스에 비수를 꽂았던 데이빗 프리즈가 끝내기 홈런을 터트리며 진정한 가을의 강자가 누구인지 증명한다. 

6차전을 허무하게 내준 텍사스는 7차전 상대 선발 크리스 카펜터에게 봉쇄당하며 2:6으로 패하며 역전 우승을 내준다. 그야말로 통한의 월드시리즈였다. 


그 이후 몇 년간 텍사스는 강팀의 면모를 유지했다. 2014년 추신수를 영입하고 로우그네드 오도어란 걸출한 2루수를 배출하는 등 성과를 보여줬지만 우승에 다다르진 못했다. 결국 리셋 버튼을 누를 텍사스는 2010년대를 이끈 스타 선수들을 정리했고 2020시즌과 2021시즌엔 승률 30%대의 탱킹 시즌을 보낸다. 


드디어 월드시리즈 우승의 꿈을 이루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2023시즌 메이저리그 개막을 앞두고 공식 홈페이지가 선정한 파워랭킹에서 전체 30개 구단 가운데 19위에 머물렀다. 2022시즌 코리 시거와 마커스 시미언 등 과감한 FA투자를 단행하긴 했지만 승률 30%의 팀이 한순간에 바뀌는 건 기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텍사스는 강력한 타선을 바탕으로 정규리그에서 90승 72패를 기록하며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그리곤 100승 가까이 거둔 강팀들을 차례로 격파했다. 탬파베이 레이스와 최다승(101승)을 기록한 볼티모어 오리올스, 월드시리즈 단골손님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연파하고 11년 만에 다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제이콥 디그롬과 맥스 슈어져 등 에이스급 투수들이 모두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이었지만, 8개의 홈런을 터트린 강력한 타선을 앞세워 3개의 홈런에 그친 애리조나를 눌렀다. 시거(.286-3홈런-6타점)와 시미언(.292-2홈런-8타점)이 타선을 이끌었고 아돌리스 가르시아는 중요했던 1차전 극적인 끝내기 홈런을 터트리며 시리즈의 분위기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텍사스를 이끌고 우승을 차지한 브루스 보치 감독은 텍사스의 첫 월드시리즈 도전을 막았던 상대 감독이었지만, 13년만에  적이었던 텍사스에게 우승을 선물한 감독으로 탈바꿈했다. 



2023년 한-미-일 프로야구엔 유난히 우승에 한이 맺힌 팀들이 마지막 라운드에 올라있다. 


일단 첫 시작은 언더독으로 시작해 63년만에 우승을 차지한 텍사스의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한신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드라마의 결말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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