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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츠파이 Nov 16. 2023

'국민 욕받이에서 영웅이 되다' 오지환의 성장기

2023년 오해를 스스로 극복한 주인공들 1탄 

국보의 수모, 비난의 시작

2018년 국감장에 국보 선동렬 감독이 소환됐다. 

야구가 9회까지하는 경기인 줄도 모를 것 같은 국회의원이 선동렬 감독에게 '이 선수'를 왜 2018년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로 뽑았는지 몰아세우며 "삼성과 LG, 대표적인 재벌 기업의 선수라 뽑은 것 아니냐."는 '야알못' 스런 질문을 던졌다.


국감장에서 어떻게든 메스컴의 눈에 띄어 다음 선거에 유리한 인지도를 쌓으려는 국회의원의 욕심에 의해 선동렬 감독은 이후 그 어떤 팀에서도 감독직을 맡지 못했고, 이 선수는 국민 욕받이가 되어 소속팀 팬들을 제외한 9개 팀 팬들에게 긴시간 조롱을 당한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야구팬들이라면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한국시리즈 MVP이자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이 유력한 오지환이다. 


사실 이 사건 전까지 소속팀 팬들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실수를 범하는 이 선수를 비하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죽하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경기를 지배한다는 의미로 '오지배'란 별명이 붙었을까? 


'90년생 4대 유격수' 화려했던 출발! 하지만..

오지환은 프로 데뷔전에도 큰 기대를 받았던 유망주였다. 현재 프로야구 스타 선수들이 의례 그랬듯이 오지환도 경기고등학교에서 에이스 투수겸 유격수로 활약했다. 고교시절 우승 경험은 없긴 했지만 2008년 대통령배 결승까지 혼자 팀을 이끌었고 2008년 U-18 대표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8년 U-18 국가대표팀은 IBAF U-18 야구 월드컵에서 가장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며 우승을 차지한 '역대급' 팀이었다. 특히 김상수, 허경민, 안치홍, 오지환은 고교 최고의 유격수로 꼽히던 선수들로 '90년생 4대 유격수'로 불렸다. 이 4인방은 프로에 입단한 이후에도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선의의 경쟁을 펼친 대표적인 라이벌들이다. 

이 대회에서 주장으로 팀 우승을 이끈 오지환은 지명타자로 대회 올스타에 뽑히는 영광을 누렸다.


2008 애드먼턴 키즈들도 어느새 팀 내 베테랑들이 됐다


고교야구와 U-18 월드컵 활약을 앞세워 2008년 겨울 드래프트에서 LG에 1차 지명을 받았다. 2009년 2군에서 경험을 쌓은 오지환은 '리빌딩'을 기치로 세운 박종훈 감독이 선임된 2010년 고졸 2년차 신인이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하는 파격 기용의 주인공이 됐다. 

시즌 개막전부터 3점 홈런을 터트리며 '슈퍼 루키'의 등장을 알리는 듯 했지만, 프로 데뷔전부터 지적 받았던 불안한 수비는 LG 팬들의 뒷목을 잡게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타석에서도 금새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무려 137개의 삼진을 당하는 극악의 선구안이 약점으로 떠올랐다. 

큰 기대를 받았지만 타율 .241-13홈런-61타점-27실책-137삼진이란 여러 방향에서 임팩트 있는 성적을 남기고 2010시즌을 마무리했다. 


LG팬들은 오지환이 충분한 경험을 쌓은만큼 큰 성장을 이룰 것으로 기대했다. 오지환과 동기인 김상수는 삼성 왕조의 일원으로 빠르게 적응했고, 안치홍은 데뷔시즌부터 올스터MVP와 팀의 우승을 이끄는 활약을 펼쳤기에 오지환에 거는 기대치도 높아졌다. 

그러나 KBO리그 역사에서 고졸 신인이, 그것도 야수가 데뷔하자마자 그정도 활약을 펼치는 예는 매우 드물다. 2011년 .212-2홈런-10실책, 2012년 .249-12홈런-25실책, 2013년 .256-9홈런-20실책 등 오지환의 성장폭은 매우 더뎠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마다 실책을 범하며 팀 패배의 원흉이 되는 오지환에게 오지배란 별명이 붙은 것도 이즈음이다. 


1년에 이런 장면 20번 넘게 보면 복장이 터진다

미디어가 만든 '불공정의 상징' 국민 욕받이가 되다

동기들에 비해 늦긴 했지만 오지환은 조금씩 리그를 대표하는 유격수로 성장해나갔다. 2014년까지 매년 20개가 넘는 실책을 범했지만 2015년부턴 실책수가 10개 내외로 급감했고 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를 무기로 메이저리거를 방불케하는 호수비를 펼치기 시작했다. 


타격도 기복이 있긴 했지만 가능성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2016년 데뷔 이후 첫 20홈런을 터트리며 .280-20홈런-78타점-17도루를 기록했고, 2020년엔 데뷔 후 첫 3할을 기록했다. 하지만 데뷔 초반 보여줬던 실책의 임팩트가 강했던 탓인지 LG팬들을 제외한 타팀팬들은 오지환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짙었다. 어찌보면 당대에 강정호, 김하성, 김상수, 김재호 등 공수에서 안정적인 활약을 보인 선수들이 많았고 WAR이나 세이버메트릭스 지표가 크게 각광받지 않은 탓도 컸다. 


그리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로 뽑히자 병역 면제를 위한 꼼수 선발이란 평가가 잇따르며 백만 안티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오지환이 당시 대표팀 선발 경쟁자였던 김선빈이나 김성현보다 클래식 지표에선 떨어졌지만 OPS를 비롯한 세이버 지표는 근소한 우위였고, 수비력에서는 오히려 뛰어나단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국제대회에서 '한방'을 칠 수 있는 장타력을 갖고 있는 점도 이점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언론들은 선동렬의 감독 취임부터 문제삼는 불편한 분위기 속에 오지환도 '청탁'을 받았을 것이라 넘겨짚는 '아니면 말고'식의 기사를 쏟아냈다. 오지환이 '불공정하게 선발됐다'고 이미 결론을 내린듯이 말이다. 대표팀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귀국 이후 선동렬 감독이 국감장에 불려나오는 수모를 당했다. 물론 상단에 첨부한 영상처럼 어이없는 질문을 퍼붓는 국회의원들의 삽질 덕분에 국감 이후에 옹호하는 여론이 조성됐지만, 오지환은 '국민 욕받이'로 긴시간 고통스런 시간을 보낸다. 



이 시기 오지환과 함께 '청탁'으로 국가대표에 들어갔다는 의혹은 받은 박해민이 2023년 LG 트윈스 소속으로 팀 우승의 일등공신이 되고, 대표팀에서도 주축 선수로 활약한 것을 본다면 이 시기 국회의원들의 삽질이 얼마나 부화뇌동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서른이 넘어 터진 포텐, KBO리그를 대표하는 유격수로 거듭나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은 '국민 욕받이'였던 오지환의 이미지를 바꾸게되는 첫 터닝 포인트였다. 당시 감독이 선동렬 감독 논란시 "내가 감독이라면 오지환을 대표팀에 뽑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김경문 감독이란 점에서 더 대단했다. 

처음엔 비아냥 대는 여론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스라엘과의 첫 경기에서 결정적인 동점 투런 홈런과 결승 적시 2루타를 터트리며 승리를 안기자 팬들의 야유는 환호로 바뀌었다. 

이후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다시 만난 이스라엘을 상대로 승부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투런 홈런을 쏘아올리며 자신에게 따라붙던 혹평을 잠재우는데 성공한다.


2022년 김현수에 이어 팀의 주장이 된 오지환은 팀의 리더이자 주축 선수로 완전히 거듭난다. 화려한 수비에 비해 기복있는 타격 때문에 '지명 수비'란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2022년엔 .269-25홈런-20도루-87타점을 기록하며 데뷔 후 첫 20-20클럽에 가입했고 골든글러브의 주인공이 됐다. 


그리고 2023년, 오지환은 .268-8홈런-62타점을 기록하며 LG 트윈스를 정규시즌 1위로 이끈다. 시즌 초반 부상 때문에 18경기를 결장한 것을 고려하면 여전한 위력이었다. 그리고 LG의 29년만에 한국시리즈에서 3차전 9회 투아웃에서 터진 기적적인 역전 3점 홈런을 포함해 .400-3홈런-8타점-OPS 1.567이란 본즈급 활약을 선보이며 팀 우승과 함께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스포츠 팬들은 '스토리'가 있는 선수를 사랑한다. 그 스토리의 주인공이 극복하기 어려운 역경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록 그 깊이가 깊어진다. 

한 개인이 감내하기 힘든 중압감과 비난을 오랜 기간을 거쳐 이겨내고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 오지환에게 LG팬들은 깊은 연민과 감동을 느끼지 않았을까? 


33살의 나이, 동기들에 비해 늦게 깬 포텐, 전 국민의 적에서 영웅으로 성장한 스토리는 한국 프로스포츠를 대표하는 스토리텔링 중 하나로 자리잡을 것이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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