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 유재학

한국 농구 최고의 명장

by LA돌쇠

내 프로농구계의 수많은 감독들 중 한 팀을 18년씩이나 맡고 있는 감독은 오직 그가 유일하다. 더욱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절대 불리하다는 예상을 깨고 한국팀에게 금메달을 안긴 감독이 바로 그다.

만 가지의 수를 가지고 있다 하여 붙여진 그의 별명은 '만수'다.


그의 이름은 유재학이며 나보다 한 살 많은 196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82학번이다. 경복고시절부터 '코트의 여우'라 불릴 만큼 영리한 플레이를 선보였던 유재학은 연세대학교를 거쳐 기아자동차 창단멤버로 입단하였다. 당시 실업농구는 현대와 삼성 양강체제였지만 기아의 가세로 양강체제여서 삼강체제로 재편되었다. 이후 김유택, 허재, 강동희가 가세하면서 실업농구는 기아 1강 체제로 재편되었다.


기아가 실업농구의 최강자로 바뀐 것이 유재학에게는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무릎 부상에 덧붙여 강동희의 등장으로 유재학은 기아에서 설자리를 잃었고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하게 되었다.


이후 유재학은 모교인 연세대 코치를 시작으로 대우증권,

전자랜드를 거쳐 현대 모비스의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속의 모습은 2015년 8월 프로아마최강전으로 기억된다.


사실 유재학과 나는 농구 외에 또 다른 연결고리가 있다. 다름 아닌 아들들이다. 유재학의 아들과 우리 아들은 친구이고 농구도 같이 한 사이다. 우리 집에 놀러 와 잠도 자고 간 적도 있고 나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현재는 미국에 살고 있는데 아직도 우리 아들과 소식을 전하고 있다.


현재 유재학은 한국 프로농구연맹의 경기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농구행정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NBA의 필 잭슨이나 팻 라일리 같은 명장들도 감독을 거쳐 구단의 사장까지 오르며 행정가로도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유재학도 꼭 그 대열애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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