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상
차범근, 한국 축구 역사에서 그의 이름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개인적으로는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인물이기도 하다.
1972년 19세의 나이에 국가대표로 선발된 차범근은 고려대학교 재학시절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리며 국내외 각종대회를 석권하였다. 그가 그라운드에 나서면 마치 한 마리의 호랑이가 초원을 누비는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특히 1976년 한국에서 열렸던 박스컵(박대통령컵 축구대회) 말레이시아전에서는 종료 7분을 남기고 1대 4로 리드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혼자서 세 골을 넣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4대 4 동점을 만드는 기적을 연출했다. 지금 60대 이상의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명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날 경기의 영상이 남아 있는 테이프가 없어 그 장면을 다시 볼 수 없다니 몹시 아쉽다.
공군에서 군복무와 함께 선수생활을 이어가던 차범근은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했고 결승전에서 북한과 0대 0 무승부를 이루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차범근은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를 지켜보던 분데스리가 다름슈타트에서 그를 불렀고 차범근은 가계약한 상태에서 90분을 종횡무진 뛴 끝에 입단 테스트에 합격을 하고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입대당시 단축복무 혜택을 주기로 했던 공군이 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차범근은 6개월을 군에 더 머물러야 했고 1979년 꿈에 그리던 분데스리가로 갈 수 있었다.
차범근이 입단한 팀은 당시 한국 교민이 가장 많이 살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였다. 차범근은 이곳에서 4 시즌을 뛰며 153경기에 출전 56골의 기록을 세웠다. 56골이라는 놀라운 득점도 중요하지만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동안 UEFA컵 우승과 DFB-POKAL 우승의 주역이 된다.
1983/84 시즌을 앞두고 재정적 어려움을 겪던 프랑크푸르트는 차범근을 이적시장에 내놓았고 바이엘 레버쿠젠이 그를 영입한다. 당시 레버쿠젠은 리그 10위에도 들지 못하는 팀이었으나 차범근 영입 후 리그 상위팀으로 도약하고 1986/87에는 유럽대항전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차범근은 레버쿠젠에서 6 시즌을 활약하며 214경기 출전에
62골을 기록한다. 이로서 차범근은 컵대회와 유럽대항전을 제외한 분데스리가에서만 308경기 98골을 기록한다.
이 기록은 1998년 스위스 스테판 사퓌자에 의해 깨어질 때까지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 득점이었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 못지않게 국가대표로서도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 136경기에 출장해 58골을 기록했다. 그의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세계 역대 최연소인 24세 139일의 나이로 A매치 100경기 출장을 기록하며 센추리클럽에 가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어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한다.
당시 한국에는 해외파 선수가 차범근 한 명뿐이어서 매 경기 상대팀들은 차범근만 집중 마크했다고 한다.
독일에서 귀국 후 차범근은 당시 국내에서 생소하던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교실을 오픈하며 유소년 축구 사업에 뛰어든다. 당시만 해도 축구선수가 되려면 학교에서 선수생활을 해야만 했으나 차범근축구교실을 시작으로 유소년의 생활스포츠와 클럽 축구를 통해서도 축구 선수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유소년축구사업에 열중하던 차범근은 1990년 울산현대 축구단의 감독이 되면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다. 1996년 12월에는 위기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킨다. 그러나, 멕시코와 네덜란드에 연달아 패하면서 대회 도중 해임되었고 중국 핑안 감독으로 떠난다. 또한 K리그 승부조작설을 폭로하면서 차범근은 5년간 국내지도자 자격을 박탈당한다.
이후 야인 생활을 하면서 차범근은 해설위원으로 데뷔했고 2002년 월드컵 해설을 계기로 '국민해설위원'으로 추앙받는다.
2004년 수원 블루윙스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차범근은 부임 첫해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2006년과 2007년에는 준우승, 그리고 2008년에 또다시 우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9년과 2010년 팀이 부진에 빠지자 사임을 했고 이후 축구해설과 축구교실에 전념하고 있다.
차범근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춘기 시절 독일에 있는 그에게 편지를 보냈고 차범근은 답장과 함께 자신의 사진에 사인을 한 엽서를 보내주었다. 나에게는 그 사인이 된 엽서 한 장이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고 내가 고려대학교로 진학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그 답장과 엽서는 이사를 하는 동안 분실이 되었다.
추억 속의 사진은 2007년 8월 삼성월드매치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삼성 블루윙스를 이끌고 LA를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며 2017년 FIFA U-20 월드컵 당시 찍은 사진이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이자 내 인생 진로에 있어 중요한 인물인
차범근. 앞으로도 오래오래 한국 축구를 위해 힘써주시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