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굽 투수
국보급 투수' 선동열에게 딱 맞는 별명이다.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나서 그렇지 만약 10년만 늦게 태어났다면 분명 선동열은 박찬호나 류현진을 훨씬 뛰어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고교시절부터 초특급투수로 주목을 받던 선동열은 대학 진학을 놓고 고려대와 연세대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의 스카우트와 관련된 이야기가 임창정이 주연한 '스카우트'라는 영화로 소개될 정도다.
고려대에 진학 후에도 선동열은 부동의 에이스였다. 그가 등판하는 날이면 상대팀 투수가 지레 겁먹기 일쑤였다. 대학 2학년이었던 1982년 선동열은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맞는다.
한국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일등공신이 되고 대회 MVP에 선정된다.
이때 메이저리그의 많은 팀들이 눈독을 들였지만 당시에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따고 병역면제를 받아도 국내에만 있어야 한다는 조항 때문에 결국 미국 진출을 하지 못하고 국내에 머물러야 했다. 결국 선동열은 1985년 해태타이거즈에 입단을 하며 한국 프로야구에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선동열의 입단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는 왕조를 이루기 시작했다. 1986년부터 무려 4년 연속 우승을 하고 1991년과 1993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처음 다섯 번의 우승은 선발투수로서 일군 것이고 1995년 우승은 마무리로 일군 것이다. 그는 해태에서 통산 146승을 올렸고 통산 방어율 1.2를 기록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0점대 방어율을 세 시즌이나 기록했다는 것이다.
1996년 선동열은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한다. 한국에서 최 전성기를 보내고 일본으로 건너온 선동열은 마무리로서 주니치 뒷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며 '나고야의 태양'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일본에서 통산 10승 98세이브를 기록하고 현역에서 은퇴를 한다.
은퇴 후 KBO홍보대사 역할을 하던 선동열은 주니치 드래곤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다가 스승 김응용감독의 부름을 받고 삼성라이온즈의 수석코치로 부임한다. 김응용감독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던 신동열은 김응용감독의 뒤를 이어 2005년부터 삼성라이온즈의 감독이 된다.
감독 부임 후 2005년과 2006년 2년 연속 우승을 일구어 내며 선동열은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2010년 코리안시리즈에서 SK와이번스에게 4대 0으로 스윕 당하며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2011년 조범현의 뒤를 이어 기아 타이거즈의 감독이 되었지만 기대와 달리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2014년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현장에서 떠나 있던 선동열은 2017년 국가대표 전임감독으로 선임돼 2018년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만 선수 선발의 특혜 논란으로 인해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언을 하기도 한다.
추억 속의 사진은 2019년 5월 유명인 초청 골프대회에서 찍은 사진이다.
프로구단에 새로운 감독 자리가 나올 때마다 후보로 언급되는 선동열. 지도자로서 꼭 성공하여 '국보급 투수'에 이어 '국보급 감독'으로도 평가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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