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청부사
네덜란드 축구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수리남 출신 아버지와 네덜란드 출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굴리트는 옮기는 팀마다 우승을 시켜 '우승청부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HFC하를럼에 리그 사상 최연소 나이인 16세에 입단한 굴리트는 1981~82 시즌 팀을 리그 4위에 올려 UEFA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따냈고 폐예노르트 로테르담으로 이적해서는 요한 크루이프와 함께 뛰면서 리그 우승과 함께 컵대회 우승을 일구어 낸다.
인종차별로 인해 팀을 PSV 아인트호벤으로 옮긴 후에는 리그 2연패를 이끈다. 이로 인해 크루이프는 명실상부하게 네덜란드 최고의 선수 자리에 등극한다.
이후 AC밀란으로 이적해서는 디에고 마라도나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1987-1988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끈다.
이후 굴리트는 네덜란드 출신 마르코 반바스턴과 프랑크 레이카르트와 함께 '오렌지 삼총사'를 이루며 AC밀란의 전성기를 이룬다. 이후 UC삼프도리아와 첼시에서 감독 겸 선수로 활약을 하다 은퇴를 한다.
굴리트는 네덜란드 국가대표로서도 대활약을 했다. 1970년대 네덜란드 축구가 크루이프 중심의 축구였다면 1980년대 네덜란드 축구는 굴리트에서 시작해서 굴리트에 의해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진 못했지만 유럽에서는 네덜란드가 최강이었고 그 중심에는 굴리트가 있었다.
굴리트는 최고의 올라운드 플레이어 중 한 명이고 탁월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몸싸움에 능하고 뛰어난 점프력과 스피드, 그리고 화려한 발기술과 슈팅력까지 갖춘 그야말로 완벽한 축구 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려한 선수 경력과는 달리 굴리트는 자도자로서는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첼시에서 감독 겸 선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굴리트는 첼시, 뉴캐슬,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LA갤럭시 등을 거쳤지만 첼시에서의 FA컵 우승 외는 뚜렷한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해임당했다.
추억 속의 사진은 2008년 5월 굴리트가 LA갤럭시 감독 당시
찍은 사진이다.
굴리트는 2018년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직에서 물러난 후 특별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지금까지 지도자로서 뚜렷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지만 지도자로 성공했던 오렌지삼총사 반바스턴, 레이카르트와 같은 지도자로서도 성공하는 모습을 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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