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마이클 조던
농구대통령' 허재. 요즈음 학생들은 그를 예능인으로 안다. 그도 그런 것이 한 예능프로에서 자신의 아들들과 한 팀을 이뤄 뛴 경기에서 도저히 '농구대통령'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농구실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평범한 아저씨 몸매에 허덕 거리는 저질 체력이 한국 농구의 최고 선수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허재는 분명 우리나라 최고의 농구선수였다. 아마 본인이 NBA 진출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에이전트를 잘 만나
마케팅을 잘했더라면 하승진에 앞서 최초의 NBA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허재의 명성은 이미 용산고 시절 널리 알려져 있었다. 대학 진학을 두고 고려대, 연세대, 중앙대가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을 벌였고 허재가 중앙대로 진학을 결정하면서 대학 농구의 판도가 중앙대로 기울기도 했다.
김유택에 강동희까지 가세하면서 '허동택'트리오를 결성하게 되었고 기아자동차까지 허동택트리오가 함께 하면서 마치 NBA의 시카고 불스처럼 기아왕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그 중심에는 허재가 있었다.
허재의 장점은 농구의 기본기라 할 수 있는 슈팅, 드리블, 패스에 모두 능하다는 것이다. 기본기를 바탕으로 골밑을 강력한 드라이브로 휘젓고 다니고 수비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바로 3점 슛을 날려버렸다. 거기에 왼손잡이라는 장점마저 있어 상대팀 선수들이 수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선수생활 말년을 원주 TG삼보에서 보내게 된 허재는 2002-2003 시즌에 팀을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고 2003-2004 시즌에는 비록 2년 연속 통합우승에는 실패했지만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현역에서 은퇴를 하였다.
현역에서 은퇴 후 허재는 잠시 미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떠났고 2005년 KCC이지스의 부름을 받고 감독으로 농구코트에 복귀한다.
허재는 전주 이지스에서 10 시즌 동안 감독으로 재직하며 우승 2번, 준우승 1번의 성과를 올린다.
또한 두 차례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한 허재는 눈에 띄는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한국 팬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 준 바가 있다.
중국에서 벌어진 대회에서 중국과의 경기 후 중국인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자 육두문자를 날리며 퇴장해 버린 일화가 있다.
추억 속의 사진은 2005년 1월 은퇴 후 허재가 지도자 연수차
미국을 방문해 한 한인은행에서 만나 찍은 것이다.
최근 허재는 주로ㅕ TV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선수 때 보였던 강한 카리스마의 이미지와 달리 허당끼 넘치는 모습에 팬들은 친근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 허재는 농구 코트로 복귀할 것으로 기대하며 지도자 허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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