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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뻬 Aug 20. 2021

그 해 여름은 청량했다

락 페스티발이 열렸으며, 도시는 춤췄다.

2021년 여름, 코로나로 집콕하는 광복절 연휴날 밀린 업무를 하며 자료정리를 하다 2014년 파리 법대생 시절 사진들을 발굴했다. 


더운 여름에 에어컨도 안 나오는 소르본 대학이나 바로 그 옆 파리법대도서관인 생줸비에브 도서관에서 머리를 쥐어짜며 각각의 졸업논문을 함께 쓰며 고생했던 전우같은 동기들, 가끔 쉬러갈 때 먹었던 아이스크림 및 크레페 등 학생 시절의 스테리오피티컬한 모습들이 아련히 떠오르는 사진들.


그때 당시에도 남다른 총기를 가지고 교수들에게 과감한 법리적 질문을 날리며 수업에서 독보적인 에이스(?) 혹은 질문받이 역할을 했던 친한 동기는 교수자격시험을 우수하게 통과하여 국제법 학계에서 촉망받는 교수가 되었더라. 


국제 평화와 안보의 수호와 투자자문 등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다, 현실적지만 그래도 드리머의 소지가 남아있는 업무를 도맡고 있는 나에게 오랜만에 기분 환기가 되는 사진들이었다. 7년 전에 나는 하늘을 뚫는 드높은 이상을 가지곤 했었지... 하며.


본론으로 돌아와서, 파리의 여름은 각종 페스티벌 및 외지인으로 굉장히 붐비어 로컬들은 대부분 그랑 바캉스로 떠난 (Grandes vacances, 여름휴가). 2달간의 그랑 바캉스는 여름을 지나 가을에 보졸레 누보를 마시고, 성탄절을 지나 겨우내기를 하고 부활절 봄까지 달려오면서 잃어버렸던 유소년기의 본연의 자아를 찾게 해주는 고마운 트리거다.


하여, 여름의 파리는 로컬들이 빠지고 대부분의 관광객으로 붐비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Rock en Seine이라는 대표적인 락 페스티벌을 필두로 여러 이벤트들을 열어 아직 바캉스에 떠나지 못 한 로컬들이 외부인들과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채널을 열어둔다.


  

Festival Soirs  d'été, Place de la République. Mairie de Paris. 여름밤 페스티벌, 파리 시청. 2014


대부분의 로컬들은 관광객들이라면 질색을 하며 평화를 깬다느니, 외국어가 사방팔방 너무 많이 들린다느니 불평불만을 하지만, 그래도 내심 도시에 유입되는 활기 혹은 '국제적인 것'을 즐긴다. 더군다나, 국내 총생산량의 상당수 부분을 관광업 및 서비스업으로 창출하는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사실 도덕적이나 윤리적으로 관광객에게 불평불만을 하면 안 될지도. 어쨋든, 정치경제적인 논리 외에 천부인권을 기반으로 하는 지구촌은 하나니까.


수많은 여름 사진들 중에서도 눈길을 끈건 Place de la République에서 진행되었던 한여름 밤의 보사노바 즉흥축제. 

Circulez, tout le monde!


  

여느 때와 같이 메트로에서 내려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광장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바캉스의 끝과 9월 가을이 진입하기 전 마지막 여름의 끝을 잡으며 정열적으로 보사노바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었다. 사람이 모여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사진으로 표현이 되지는 않았지만, 인간 사회에서 나이를 불문 남녀노소가 생기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표출하는 듯 한 광장 불특성 다수 다중행위예술이었다. 


반추하건대, 그 해 여름은, Place de la République이라는 지금으로 치면 매우 '힙'한 곳으로 이사한 여름이었으며, 유소년기부터 익숙했던 협의의 부르주아지 생활양식에서 벗어나서 광의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관찰한 여름이었다. 정제되고 예의바른 그들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말그대로 세계에 대한 관찰을 통해 휴머니즘을 경험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알을 깨는 경험과 비슷한 경험을 한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별것도 아닌 일상의 경험이 삶의 반환점이 될 수 있는 경험을 한, 젊은 날의 예술의 도시에서 목도한 예술혼은 법학자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의 호수에 작은 반향을 일으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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