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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뻬 Jul 10. 2023

자폐 동생의 형

1. 경전철 신림선에서 발생한 한 묻지 마 폭행 사건과 변호사의 조력

6월, 푹푹 찌는 더위에 오전 미팅이 있어서 몸을 싣고 자문회사인 A사의 관악산기슭 사무실로 갔다가 신림선 경전철을 타고 여의도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에어팟을 귀에 꽂고 무인으로 운용되는 경전철을 타고 책을 읽으며 평화롭게 전철에 몸을 맡겨 이동을 하고 있는데, 순식간에 보안요원으로 보이는 사람 3명과 20대 초반 앳되어 보이는 성인 남성 총 4명이 전철로 뛰어와 들이닥쳤다. 보안요원들은 20대 초반 남성이 무슨 큰일이라도 벌인 양, 양팔을 잡고 제압을 하고 있었고, 이 남성은 괴로운 듯 몸부림을 치는 동시에 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하는 부분은 이 양반들이 맞은편에 앉아서 평화로이 책을 읽고 있던 나의 바로 앞에 출몰을 하였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에어팟을 빼고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파편화된 정보를 취합하여 정리하자니, 20대 초반 남성이 어떤 지하철의 승객이신 할머니의 안면을 타격했는데, ‘도주'하고 있어서 제압을 하고 있다는 상황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묻지 마 폭행' 사건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눈살을 찌푸리고 상황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 눈앞에 들이닥친 상황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입을 떼고 ‘선생님들, 이 분은 자폐증이 있는 분이에요’라고 말했다.


순간 지하철 내 정적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내 앞에 보안요원 3명, 30명 정도 되는 지하철 내 승객 들 모두가 나와 당사자를 쳐다보며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하기 시작했다. ‘묻지 마 폭행’이라는 흉악한 사건이 당황스러운 사건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나도 처음 맞이하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내 동생도 지하철을 타면서 승객분을 때린 적이 있는지라 나름 능숙(?)하게 자폐증이 있는 20대 초반 남성에게 ‘선생님, 제가 어머니한테 연락을 드릴 테니 전화기를 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양해를 구한 후, 보호자인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자폐 가족구성원을 가진 부모들은 대체로 방어기제가 내재되어 있다. 한국 사회에서 크고 작은 많은 차별과 차별의 시선들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보호자 분에게 지하철 내 상황을 설명드렸더니, 자폐 남성의 어머니는 나에게 바로 답변하시길 ‘우리 아이는 독립적으로 지하철을 탈 수 있고, 이동할 수 있어요. 도움과 성의는 감사드리지만 저희 아들은 혼자 지하철을 사용할 수 있어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 저도 친동생이 자폐이고 독립적으로 대중교통을 탈 수 있고, 사회화가 되었지만 이번엔... 선생님께서 한 번 오셔야 할 것 같아요. 할머니의 안면을 때렸대요’라고 답변을 드리며 방어기제를 무너뜨리는 한편, 내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상황을 설명드렸다. 


내가 전화하는 사이에 나의 커멘트로 인해 분위기가 순식간에 전환된 지하철 내 승객들은 의협심 혹은 공동체의식을 보이며, 보안요원들에게 자폐를 가진 사회적 약자니 제압을 하지 말라고 하며, 흥분한 자폐아 친구에게 괜찮다고 진정시키는 등, '약자'를 배려하는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갑자기 집중되는 시선에 부담이 커졌는지, 사건의 당사자인 자폐아는 갑자기 보안요원에게 제압당하느라 늘어져서 구멍이 뚫린 본인의 티셔츠를 찢기 시작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말해서 그렇지, 사실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난동을 피우는 사이, 다음 역인 서울병무청 역에 지하철이 경전철이 도착하였는데, 갑자기 자폐인 20대 초반 청년이 전철 밖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보호자에게 전화를 하면서 사건을 설명하던 나는 졸지에 지하철 내 ‘보호자’가 되어 사건을 클로징 하는 사회적 의무(?)를 부여받기 시작하였다. 승객들은 내가 사건을 수습하느라 일어나서 놔뒀던 내 서류가방을 나한테 전달해 주면서 나가서 사건을 마무리하라고 종용하여 졸지에 벌어진 사건을 클로징 하는 중대한 임무를 가지고 나의 종착역이 아닌 다른 역에서 내려서 위임받은 임무를 집행하기 시작하였다.


자폐인 20대 초반 청년의 핸드폰을 가지고 종착역이 아닌 중간에서 정신없이 나온 나는, 일단 뛰어나간 친구를 찾아서 역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수색을 하다가 보니, 당사자가 지하철 개찰구 밖에서 여기저기 뛰어다니길래, ‘선생님 전화기를 돌려받아야 해요’라고 진정시키고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 순간, 다급하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선생님들이 20대 초반 청년을 제압하기 시작하더니, 흥분해서 뛰어다니는 청년을 땅바닥에 넘어뜨리고 수갑을 채우며 구속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나는 ‘뭐 하시는 거예요!’라고 소리를 치며 경찰관 선생님들에게 ‘저기 저 친구는  자폐증 환자예요. 무슨 혐의로 저분의 기본권을 제한하시는 건가요?’라고 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기록이라도 남기고자 정신없이 얼른 핸드폰을 꺼내서 동영상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현장을 촬영하며 20대 초반 자폐 청년을 변론하기 시작하자 그제야 경찰관 선생님들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지하철 내 할머니 묻지 마 폭행으로 도주하는 용의자를 발견해서 현행범 체포로 긴급 구속 공무 집행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머릿속에는 아드레날린의 영향인지, 기본권 침해, 형소법 등등 변호사로서 당연히 떠올려야 할 수많은 개념들이 떠올랐지만, 사실 머리가 멍해지며, ‘내 동생도 사회에서는 묻지 마 폭행 용의자가 될 수 있고, 저 친구가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것 같이 현행범 체포로 구속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으면서 어쨌든 상황을 우호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서 변론을 하며 자폐 청년의 구속을 풀어주고 보호자 인계까지 수습을 도와줬다.


반추하건대,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20대 초반의 자폐증 청년은 대중교통을 타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화가 되어서 어딘가로 이동하던 중, 자기 루틴이 침해받는 사건이 일어나서 흥분하기 시작했으리라—이러한 침해는 정말 사소한 것으로 일어난다. 할머니께서 선의를 가지시고 ‘청년…’ 하시면서 말을 붙이셨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루틴이 침해받은 당사자는 흥분을 하고 사회의 규범을 깨기 시작하여, 종국적으로 112에 보고되기로는 ‘구속의 대상인 도주 중인 현행범 묻지 마 폭행범’으로 보고되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사건을 다 겪고 진이 빠진 채 터덜터덜 여의도로 복귀하면서 와이프 그리고 친한 친구들에게 오늘 촬영한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짧게 '자폐증 친구가 묻지 마 폭행 현행범 체포 당해서 도와줬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어'라고 말했는데, 자폐를 직, 간접적으로 다뤄본 와이프와 친구들은 다들 공감을 해주며 그저 안타깝다며 내 마음에 위로를 해주었다. 


그저 주변에서 일어날 법 한 사건이었지만, 사회적인 사건이 자폐증을 간접적으로 평생 동안 경험해 온 나라는 개인에게 개인적으로 다가오며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비극적이기도 하였고 (얼굴에 폭행을 당하신 할머니도 비극적, 구속을 당한 자폐 청년도 비극적), 조력을 한다고 나름 움직였던 나한테도 차가운 현실이 비극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들은 생각은, 어쨌든 내가 경험했던 경험을 알려서 이 사건의 당위성에 대해서 절차적 정당성을 따지는 당위의 차원의 논의에서 벗어나, '이 선생님은 자폐증이 있어요'라고 말했을 때, 공기 중에 경험했단 지하철 내 정적과 당황스러움을 없애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정신의학적으로 자폐증은 현재 추산 유병률이 3%대인 질병이며, 이 말인즉슨, 인구 약 33명 당 1명 정도가 자폐로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거기다, 한 가구를 3-4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3%에 3의 배수 혹은 4의 배수를 곱한 대한민국의 약 10% 정도의 인구가 가족, 혹은 친척 중에 자폐증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자폐증인 가족 구성원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질병이다. 


자폐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제고라는 목적이 있어서 '자폐 동생의 형'을 생각으로만 10년 전부터 기획하였는데, 자폐에 관한 스토리들을 비자폐 형제자매 시각으로 풀어쓰며 자폐에 대해서 인식 제고를 하고자 한다. 


#자폐증 #묻지마폭행 #공론화 #구속 #현행범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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