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는 충만감을 느낄 수 있을까?
오늘을 열심히 그리고 잘 살자. 스스로 다짐하면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하루를 살려고 했지만, 어떻게 하루가 지났는지 저녁이 되었고, 충만한 기쁨은 느껴지질 않는다.
하루는 상대적으로 짧고 기억할 수 있으므로 잘한 것은 무엇이고 잘못한 것은 무엇인지 따져보아서 잘한 것은 계속 잘하고 못한 것은 고쳐보자 생각한다. 그러면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충만한 하루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으리라.
그런 식으로 저녁에 반성하고 아침에 다짐하여 살아보지만, 인생은 이렇게 제품의 품질을 개선하듯이 그렇게 오류를 찾아서 수정하고 개선하면 더 좋아지는 방식으로 고쳐지고 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충만한 하루를 산다는 것이 원죄를 지닌 인간에게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정반대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 따위는 던져버리고 욕구가 말해주는 대로 솔직하게 살면 되는 것일까? 그래서 쓸모없이 스스로를 공연히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책임과 유능함의 문제일까? 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남아있고, 그것을 잘 해내기에는 능력을 넘어서는 수준이라 은근한 스트레스에 눌려있는 것일까? 그러다 보니 정작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흙을 퍼 날랐다 한들 여전히 흙무더기는 산처럼 쌓여있으니 마음 편히 잠을 잘 수는 없는 운명일까?
욕심 때문에 일용할 양식이 있음에도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운 것일까? 욕심을 내려놓고 겸손하고 기쁘고 감사하게 하루를 충만하게 살면, 그래서 그렇게 산 하루가 모여서 인생이 되면 충만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99를 충만하게 살다가도 마지막에 1을 망쳐서 100을 망칠 수도 있고, 99를 망쳤어도 마지막에 1을 잘해서 100이 충만해질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인생은 단순한 사칙연산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을 돌아보고 충만한 기쁨이 느껴지질 않아도 좋은 것이다. 속이 쓰리고, 답답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해도 좋은 하루였을 수 있다. 다만 나는 기록된 위인들처럼 어떤 사명을 부여받고 이 땅에 온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는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