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기자의 에세이집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의 초반에 박노해 시인의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가 인용되어 있다. 여기에 다시 옮겨 본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
변상욱 기자는 ‘불행을 불행으로 끝내는 건 지혜롭지 못지 못하다. 불행 앞에서 우는 사람이 되지 말고, 불행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발자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박노해의 시가 위로가 된다는 말로 한 꼭지의 글을 마무리하였다.
몇 주 전에 이 글을 읽었을 때 나 역시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그날 저녁 약속에서 만났던 공부하는 지인들에게 박노해의 시를 읽어 주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박노해의 시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박하고 싶어진다. 새가 날 듯이 하늘을 날아다니면 그저 산에서 놀 뿐이라고. 사람이 그렇게 살면, 자유로울지 어떨지는 몰라도 동물처럼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는 마음이 생긴다.
솔직히 인정해야겠다. 나는 부러운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부럽다. 그들이 어떻게 그곳에 있는지 존경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라는 제목의 책도 있지만 그리고 산의 나무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무들에게서 배우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시기하지 말라는 교훈도 있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하늘이 온통 새의 길일지는 몰라도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은 아니다. 이것은 사실 확인의 문제는 아니고 개인의 가치와 신념에 관한 사안이니 시비를 걸 것은 없다. 다만 오늘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나는 어디를 향해서 걷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곳은 명확한가? 나는 그곳을 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곳을 향해서 걷고 있는가?
목적지에 도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지극히 단순한 교훈이다. 그들은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갔다. 그리고 여기에 교훈을 하나 추가한다면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엇을 원하든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게 되지 않을까! 물론 능력의 제약을 받겠지만 많고 적음의 문제일 뿐이고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디로 가고자 하며, 길은 어디일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다. - 마태복음 5장 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