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맹랑한 꿈이 주는 뇌과학적 쓸모

2017년, 뇌과학 분야에서 권위 있는 학술지 중 하나인 미국신경학회지(Neurology)에 수면의학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호주 스윈번 공과대학(Swinburne University of Technology)의 매슈 페이스(Matthew P. Pase) 박사팀이 주도한 이 연구는 무려 12년에 걸쳐 60세 이상 노인 321명의 수면 패턴과 건강 데이터를 정밀 추적한 대규모 프로젝트였습니다.


연구진의 목표는 수면의 구조(sleep architecture)가 향후 치매 발생 위험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참가자들의 수면을 뇌파 검사(PSG)를 통해 아주 정밀하게 분석했습니다. 얕은 잠, 깊은 잠, 그리고 우리가 흔히 ‘꿈을 꾼다’고 말하는 REM(Rapid Eye Movement) 수면 단계로 나누어 관찰했습니다.


12년의 추적 끝에 드러난 결과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체 수면 시간의 양(Quantity) 보다 훨씬 더 결정적인 요인이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치매 발생 위험과 가장 뚜렷하게 연관된 지표는 다름 아닌 REM 수면, 즉 꿈을 꾸는 단계의 감소였습니다. 전체 수면 시간 중 REM 수면 단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1% 줄어들 때마다 치매 발병 위험이 약 9%씩 높아지는 경향이 관찰된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꿈 없이 푹 자는 것을 숙면이라 여기곤 합니다. 꿈은 그저 뇌가 쉬지 못해 만들어내는 잡음이나 피로의 부산물 정도로 치부하기 쉽죠. 하지만 이 연구는 정반대의 사실을 말해줍니다. 우리 뇌에 있어 꿈을 꾸는 단계는 기억을 정리하고 감정을 처리하며 뇌세포의 회복을 돕는 중요한 과정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비논리적인 이야기를 하면 “꿈 깨”라고 말하곤 합니다. 꿈은 종종 ‘비현실적이고 쓸모없다’는 뉘앙스를 품고 있습니다. 밤에 꾸는 꿈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이야기들로 가득하고, 우리가 인생에서 품는 꿈(Vision) 역시 때로는 현실성 없는 허황된 망상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꿈의 '허무맹랑함'에 대해 변명해 보려 합니다. 뇌가 매일 밤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며 스스로를 회복하듯, 우리 인생 또한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엉뚱한 꿈을 꿀 때 비로소 숨을 고르고 회복할 여유를 얻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쓸모없어 보이는 그 꿈들이 어떻게 우리 뇌와 삶을 지탱하는지, 그 놀라운 기능을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뇌과학이 밝혀낸 꿈의 두 가지 선물


세계적인 수면 과학자이자 UC 버클리의 신경과학 교수인 매슈 워커(Matthew Walker)는 꿈을 가리켜 “밤새도록 진행되는 심리치료(Overnight Therapy)”라고 정의합니다. 그의 연구팀은 우리가 꿈을 꾸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화학적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우리가 렘(REM) 수면에 빠져들어 꿈을 꾸기 시작하면, 뇌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낮 동안 스트레스를 유발했던 핵심 화학물질인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e)의 분비가 뇌 안에서 완전히 차단(completely shut off)되는 것입니다. 24시간 중 유일하게 뇌가 이 스트레스 물질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휴식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화학적 안전지대에서 뇌는 낮에 겪었던 불쾌하거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다시 꺼내어 재생합니다. 평소라면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날 기억들이지만, 꿈속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제거된 상태이기에 안전하게 그 기억들을 재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즉, 꿈은 우리 기억에서 감정의 가시를 발라내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자고 일어났을 때, 어제보다 덜 슬프고 덜 화가 나는 이유는 밤새 뇌가 꿈이라는 과정을 통해 기억의 쓴맛을 부드럽게 중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꿈의 또 다른 기능은 뇌의 정보 연결 능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매슈 워커 교수는 이 과정을 ‘정보의 연금술’이라고 불렀습니다. 꿈이 그렇게 허무맹랑하고 뒤죽박죽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뇌의 사령탑인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논리와 이성을 바탕으로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휘합니다. "이건 말이 안 돼", "저건 불가능해"라며 정보를 검열하죠. 하지만 렘수면 상태에 들어가면 이 전전두엽의 기능은 일시적으로 느려집니다. 대신 시각과 감정을 담당하는 영역은 평소보다 30% 이상 더 활발해지며 전면에 나섭니다.


논리라는 감독관이 자리를 비운 사이, 뇌는 평소라면 절대 연결하지 않았을 엉뚱한 정보들을 자유롭게 섞기 시작합니다. 과거의 기억, 최근의 경험, 그리고 막연한 상상들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무질서하게 결합합니다.


워커 교수는 이 과정을 통해 뇌가 “가장 멀리 떨어진 정보들 사이의 지름길을 찾아낸다”라고 설명합니다. 비틀스의 명곡 <Yesterday>의 멜로디가 꿈속에서 탄생했듯,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바로 이 ‘비현실적인 연결’의 순간에 잉태되는 것입니다.


낮에 꾸는 꿈이 만드는 기적


뇌과학적으로 볼 때 밤의 꿈이 '논리(Logos)가 잠든 사이 감정(Pathos)이 춤추는 시간'이라면, 낮에 우리가 품는 비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의 변곡점을 만든 사건들은 언제나 현실성이라는 차가운 이성을 잠시 꺼두는 순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63년 8월,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앞에 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이 그토록 강력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가 "I have a Plan"이라고 말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I have a Dream"이라고 외쳤습니다.


당시의 현실적인 데이터와 논리로만 따지자면, 흑인과 백인 아이들이 손을 잡고 형제처럼 지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망상이었습니다. 만약 킹 목사가 현실 가능성만 계산하는 전전두엽의 통제하에 있었다면, 그는 “우리는 점진적인 법 개정을 요구합니다” 정도의 건조한 연설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밤에 꿈을 꾸는 뇌처럼 논리적 검열을 잠시 끄고 심장의 목소리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서, 미시시피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노예의 후손과 주인의 후손이 한 식탁에 앉는 비현실적인 장면을 마치 눈앞의 현실처럼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그 허무맹랑한 꿈이 군중의 마음속에 심어지는 순간, 불가능해 보였던 변화의 에너지가 폭발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미래 조망(Prospection)'의 힘으로 설명합니다. 우리 뇌는 재미있게도, 생생하게 상상한 미래와 실제로 경험한 현실을 화학적으로 완벽하게 구별하지 못합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꿈을 품고 그것을 상상할 때, 뇌에서는 도파민(Dopamine)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됩니다. 흔히 도파민을 ‘보상 호르몬’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사실 도파민은 ‘기대감의 호르몬’입니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보다,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품을 때 도파민은 왕성하게 분비되어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킹 목사의 꿈이 그랬듯, 허무맹랑한 비전은 현실을 부정하는 도피가 아닙니다. 오히려 팍팍한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진통제이자, 마르지 않는 연료입니다. 꿈의 크기가 클수록, 그 꿈이 비현실적일수록, 뇌가 만들어내는 기대감의 에너지는 더 커집니다.


계산기를 내려놓고 허무맹랑해지기


심리학을 공부하고 코칭 현장에서 많은 분을 만나며, 저는 종종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안타까움은 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느새 꿈을 꾸는 순간조차 습관적으로 가성비라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게 정말 가능할까?”,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고 말이죠. 저 역시 논문을 쓰고 새로운 커리어를 준비하며 실현 가능성이 낮은 일들은 아예 목표 목록에서 지워버리곤 했습니다. 실패 뒤에 찾아오는 헛된 노력의 쓸쓸함과 아픔을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산이 딱 맞아떨어지는 목표는 우리를 안심시키지만, 가슴을 뛰게 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뇌과학이 말해주듯, 우리 뇌와 마음이 가장 활기차게 살아나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논리와 계산이 멈춘 그 허무맹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가끔 사막의 여행자들이 바라보던 북극성을 떠올립니다. 그들이 북극성을 바라보며 사막을 건널 때, 그 별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까요? 아닐 겁니다. 그 별은 닿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에 있기에, 역설적으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가장 확실하게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어주었습니다.


우리 마음속 허무맹랑한 꿈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나는 80세에 우주여행을 갈 거야”라거나 “언젠가 세상의 모든 아이가 웃는 도서관을 지을 거야” 같은 꿈들 말입니다. 누군가는 비웃을지 모를 그 꿈이 실제로 이루어지느냐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건, 그 말도 안 되는 꿈을 품고 있을 때 우리가 현실의 고단함을 견딜 힘을 얻는다는 사실입니다.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있기에 혼탁한 현실에서 길을 잃지 않게 기준이 되어 주는 마음의 북극성 같은 그런 엉뚱한 별 하나가 뜨면 좋겠습니다.


영혼의 신분증


어릴 적 읽었던 김동인 소설가의 무지개를 쫓던 소년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소년은 아름다운 무지개를 잡기 위해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길을 떠납니다. 무지개는 잡힐 듯 말 듯 계속해서 멀어지고, 소년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며 고난을 겪습니다. 함께 길을 떠났던 친구들은 하나둘 포기하거나 목숨을 잃지만, 소년은 끝까지 무지개를 쫓습니다. 사람들은 “무지개는 잡을 수 없는 허상이야”라고 말렸지만, 소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에는 오직 찬란한 일곱 빛깔만이 가득했으니까요.


동화의 결말은 묘한 울림을 줍니다. 소년은 마침내 무지개는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실체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 실체(Fact)를 깨닫고 발걸음을 멈춘 순간, 소년은 비로소 자신의 손과 발을 내려다봅니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물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백발이 성성한 노인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년을 늙게 만든 것은 흐르는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늙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무지개가 없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꿈꾸기를 멈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무지개라는 허상을 쫓아 달리는 동안, 그는 늙지 않는 소년으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꿈을 꾸면 그만큼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는 압박감이나 꿈만 꾸고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계시지는 않은가요? 만약 당신이 그러하다면, 이제는 그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꿈은 반드시 성취해야만 하는 숙제도, 치열한 노력으로 갚아야 할 청구서도 아닙니다. 꿈은 내가 비록 지금은 초라해 보일지라도, 내면 깊은 곳에서는 무엇을 동경하고 어떤 가치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영혼의 신분증’입니다.


가령 “언젠가 숲 속에 도서관을 짓겠다”라는 꿈을 품고 있다면, 당장 적금을 붓거나 벽돌을 나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꿈을 품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지혜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귀한 정체성은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당신이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삶을 지탱해 줄 것입니다.


노력이 꿈의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는 아닙니다. 꿈은 성과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지키는 보루입니다. 그저 밤하늘의 별처럼, 당신의 마음 가장 높은 곳에 허무맹랑한 꿈 하나를 가만히 띄워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꿈이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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