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발걸음의 기록

by Vini

숨 가쁜 터널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혼란이 끝나고 나니 어느덧 마흔 중반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이지만 정작 '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한때 꿈 많던 시절은 그저 아련하게 느껴지기만 했고, 잠깐씩 시작한 일들은 빛나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나의 오늘 역시 특별할 것 없는 잿빛의 연속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3살 터울의 사춘기 아들 녀석들과의 전쟁은 익숙하다 못해 체념의 단계에 이른 지 오래다. 싫은 소리 몇 마디 하면 어느새 닫혀버리는 굳은 문 앞에서 열쇠로 달그락 거리다가 한숨 쉬고 돌아서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집 안의 평화는 불안정한 시소 같았고, 언제든 한쪽으로 기울어질 위태로움을 안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새로운 시작을 택했다. 10년 전에도 사업을 하겠다며 큰 소리가 치더니 허공에 다 날려버리고 조용히 직장으로 돌아갔지만 이번에는 또 다르다며 다시 사업의 길로 뛰어든 것이다. 그의 눈빛은 간절했지만, 그 불안정한 불씨가 10년 전처럼 우리 가족 전체를 태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은 잠 못 이루는 밤을 선물했다. 모른 척, 무심한 척 내색은 안 했지만 이런 일련의 일들은 나에게 또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숨이 턱 막혔다.


이 혼란 속에서 나를 지탱할 무언가가 간절했다. 우연히 시작된 산책은... 처음에는 그저 집 밖으로의 도피처에 불과했다. 나에게도 크게 숨 쉴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느릿한 발걸음이 이어지고, 무심코 스치는 바람과 햇살,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은 내 안에 엉켜 있던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주는 것을 느꼈다.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만났고, 나의 불안과 막막함을 마주할 용기를 얻었다. 걷는 시간은 나에게 잊고 있던 '나'의 언어를 되찾아주었다. 그리고 이 발걸음의 기록이, 나의 산책이, 어쩌면 나처럼 길 위에서 위로를 찾는 누군가에게 작은 공명으로 닿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


이 글은, 평범한 한 40대 여자가 발 한 걸음, 글 한 줄로 다시 숨 쉬는 이야기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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