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돌밥돌밥 시즌1'의 외출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 그리고 문화생활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_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은 새로운 그림 산책을 선물했다. 눈부신 햇살 아래 가득 담고 있는 따스한 색채는 한 올 한 올 붓질마다 살아 숨 쉬고 있었다. 81점이나 되는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림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내 마음속 어둠을 환한 빛으로 물들였다.
“오 봄이여! 한 해의 젊음이여! 오 젊음이여! 인생의 봄이여! - 오르세 미술관 설명문
전시실에서 한 작품씩 감상하다 피에르 오귀스트 코트의 [봄] 앞에서는 걸음과 함께 숨이 멎는 느낌이었다. 숲 속 어딘가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꼭 껴안고 그네를 타고 있는 어린 연인의 모습. 이 작품의 첫 소유자는 ‘첫사랑의 취한 연인들’이라고 묘사했다지. 수줍지만 맑게 빛나는 순수한 감정으로 가득한 얼굴에 스며든 사랑스러운 미소는 메마른 내 감성을 행복과 기쁨으로 적시었다. 붓꽃, 데이지, 나비와 함께 빛나는 봄날... 거칠고 불안한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잠시나마 내 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화가 중 하나이다. 피아노를 막 치기 시작한 때였으니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다. 아빠가 소장하고 있던 르누아르의 작품집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두근거리는 끌림은 르누아르 작품 속 예쁜 소녀들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어린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것은 [피아노 치는 소녀들] [이렌느 깡 단베르양의 초상]이었다. 그중 하나인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 이번 전시회에 온다니 놓칠 수 없지. 피아노 악보 앞에서 하얗고 뽀얀 얼굴이 불그레하게 상기된 듯 열중하는 모습, 풍성하고 탐스러운 노란 머리카락 위로 예쁘게 늘어진 리본, 심지어 두 소녀의 드레스와 리본 컬러는 깔맞춤이다. 푸른 금빛이 도는 도톰한 커튼과 같은 컬러인 화병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붉은 꽃들. 르루아르의 빛과 색채 속에서 그 집안에 깃든 모든 것이 따뜻하고 풍요로움 속에서 행복해 보였다. 마냥 부러웠던 소녀들처럼 곧 나도 피아노를 쟁취하게 되었고 건반 위에 작은 손가락을 얹으며 기뻐하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가질 수 없었던 피아노에 대한 열망, 두 소녀의 해맑은 미소 속에 비친 순수한 열정은 잊고 살았던 나의 시간을 거슬러 불러냈다. 어쩌면 그동안 잃어버렸던 나의 '꿈'과 '열정'에 대한 위로를 이 그림 속에서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맑고 화려한 색채로 스페인 화가 라이문도 데 마드라소 이 가레타의 [가면무도회 참가자들]은 또 다른 인상을 남겼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흥겹게 가면무도회를 즐기다가 살짝 빠져나온 듯, 마주하고 있는 상기된 얼굴의 커플. 그들을 수놓은 정교한 장신구와 드레시한 의상과 구두와 모자 등의 소품까지 찰나의 환희를 영원히 붙잡아두려는 듯했다. 장미덩굴은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을까. 그 화려한 겉모습과 가면 뒤에 숨겨진 그들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문득 나의 일상도 허영스런 모습과 수많은 가면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질문이 떠올랐다.
그림 속에서 나는 잊었던 '나'를 만났고,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발로 걷던 산책이 그림 속으로 이어지면서 나의 일상은 조금 더 풍부한 색채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제 이 그림 속 발자취가 나의 글 속에서 또 다른 숨결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색연필 대신 펜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