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1일째 기록)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었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 설렜다. 아나운서라는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렸다. 합격은 가슴에 환희를 가득 채웠다. 첫 방송은 떨림과 아드레날린의 축제였다. 마이크 앞에 서는 일만큼, 그보다 더 심장을 뛰게하는 봄이 태어났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건 실전이었다. 심장이 철렁하는 순간을 몇 번 겪었다. 그 후, 그저 정상심박수인 60bpm이 행복해졌다.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에 감사했다.
봄의 하원길에 제일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매일의 하원을 담당하면서 정해진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어린이집에 가야했다. 아이를 만나자마자, 안고 달래서 카시트에 앉혀야했다. 더 차가 붐비기 전에 강남역 사거리를 뚫고 집에 가야했다. 10분이라도 늦게 하원하면 길에서 40분을 더 보냈다. 대로가 아닌 골목을 누벼도 내비게이션의 시간이 늘어나는 걸 보며 가슴을 졸였다. 봄의 입에 요거트와 과자를 물려주다가, 간식을 다 먹으면 외치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굴착기! 우와! 굴착기야!”
시간에 쫓겨 발을 구르는 아빠와 다르게, 봄은 뒷좌속 카시트에서 운전석을 발로 차며 ‘즐거움’을 표했다. 보고싶었던 아빠를 만나 품에 안기는 하원의 시작부터 기쁨이었다. 집에 가는 길, 차 안에서는 ‘숨은 굴착기 찾기’ 놀이가 열렸다. 옆 차선을 통해 보이는 앞모습과 뒷모습. 가벽 사이에 빼꼼 나온 등. 심지어 공사를 마치고 잠자고 있는 버켓까지. 눈에 굴착기와 비슷한 것만 있으면 외쳤다. 내가 포크레인을 찾았다고. 박수쳐달라고. 아빠도 함께 놀아달라고. (주변에 이렇게 굴착기와 공사현장이 많은 줄 아이덕분에 알았다!) 아이의 열렬한 요청에 영혼없는 반응으로 박수를 치며, 급하게 차선을 변경했다.
“급한 일 없잖아.”
설 연휴 첫 날 오후. 짧은 나들이 후에 집에 가자고 재촉하는 나에게 아내가 말했다. 봄이가 충분히 놀게 기다려주자며. 그제야, 아이의 속도에 맞추고 아이의 시선을 따라갔다. 상가 앞을 떠나고 찾아오는 자동차를 보며 놀고 있는 봄. 기사 삼촌이 트럭에 박스를 몇 번 싣는지 센다. 삼촌이 바로 타지 않고 휴대폰을 보면 왜 그러냐고 묻는다. 트럭에 그려진 막걸리가 뭔지 궁금해한다. 트럭이 출발하면 안녕! 하고 큰 소리로 인사한다. 눈에서 멀어질 때까지 쳐다보고, 떠난 자리에 새로이 주차하는 승용차를 반긴다. 차에서 내리는 형아와 누나들에게 손을 흔든다. 모든 것이 새롭고 즐겁다.
가슴 답답한 연말과 연초를 보냈다. 가슴 뛰는 일이 없었다. 새해 계획은 ‘오늘도 무사히’였다. 안전과 편안함을 갈구했다. 무사고와 빠른 귀가에 집중했다. 때문에, 꾸물대는 아이를 답답하게 여겼다.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놓치고 살았다. 늦게나마, 봄을 따라하며 깨닫는다. 아이는 늑장을 부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처음 만나는 굴착기와 크레인을 반가워한 것뿐. 길에 떨어져있는 낙엽을 보고싶은 것뿐. 그 잎파리를 엄마와 아빠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것뿐. 봄의 마음을 닮아간다. 주말에도 일하시는 트럭삼촌과 가족을 뒤에 태우고 운전하는 또 다른 아빠(!)를 응원한다. 그제야, 나의 하루도 좋은 날이 된다. 가슴이 뛴다. 이번엔 나 혼자가 아니다. 아내와 봄의 마음도 나처럼 두근대는 순간이 많기를. 그것이 우리의 새해 복이기를.
+ 그리고 모두의 새해 복이기를 기도하는 설.
#봄아범일기 #새해 #새해복많이받으세요 #굴착기감별사 #형아의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