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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투루 살겠다

‘돌아와요, 가출아빠’를 마무리하며

by 봄아범


하루도.

아니.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가끔은 허투루 보내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30회 연재를 마무리했다. 내가 쓰는 문장으로 치유받았다. 글만큼. 그 이상으로 나를 낫게 해 준 상담센터장님께 에필로그를 전송했다. 성실함을 칭찬하는 격려에 이어지는 단어는 허투루.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있는 법을 잊어버렸다. 아나운서를 꿈으로 가졌을 때는 줄넘기를 천 개씩 하며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최종합격을 할 수 있을까. 직장에서 일할 때는 또 다른 자기소개서를 쓰며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머리를 가득 채운 생각. 건강하게 싸우는 부부 십계명. 통 잠자는 아기의 비밀. 진정한 수면교육이란. 완밥하는 아기의 비결. 아빠의 관계가 중요한 이유. 쏟아지는 정보에 어지러웠다. 필요한 것만 골라 습득하느라 바빴다. 있는 그대로 흘러가듯이 두지를 못했다. 때문에, 30개의 글이 쌓였지만 마음은 들쭉날쭉했다. 물론, 폭은 꽤 줄어들었지만.




마감 후 맞는 주말은 꽉 차 있었다. 7시 기상. 가족의 아침 식사 준비. 나와 아내, 아이까지 입을 흰 셔츠의 다림질. 음식물쓰레기 배출과 구축 아파트에서의 안전한 출차. 9시까지 향해야 하는 아이의 직장어린이집. 운동회 대신 가족을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 아기용 레이싱 트랙에서 봄(태명)은 붕붕카로, 나는 운동화로 30분 달리기. 가족의 이미지를 캐치한 앙증맞은 캐리커쳐. 점심으로 멕시칸 음식과 아이스크림. 백화점에서 이르게 진행하는 성탄 이벤트. 주차요금을 줄이기 위한 회심의 장보기. 잊어버릴 정도로 묵혀놨던 세탁물 수거. 연체 직전인, 이미 연체된 도서 9권 도서관 반납. 나머지 분리수거와 세탁과 건조. 일어나서 눈을 감을 때까지 심박수는 70 bpm을 상회했다. 때문에, 의식적으로 조언을 중얼거렸다.


허투루. 허투루.

의식적으로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머릿속까지 그득그득 차버린다. 선물 받은 그림을 바라본다. 채색이 안 되어있는 것이 오히려 반갑다. 살색으로 차오르지 않은, 빈 공간을 닮고 싶다. 비우고 덜어내는 연습을 한다. 모든 것을 멈추고 차창밖을 바라본다. 텅 빈 머리와 마음속에 에필로그의 문장만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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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싱긋 웃는다. 덕분에 호흡을 가다듬는다. 일요일의 새벽출근이 고요해진다. 출장 중의 기차에서도 되뇐다.


허투루. 허투루.


KakaoTalk_20251026_080913563.jpg 뒤늦게 사진첩을 뒤적인다.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던 오전 중에 쉼이 있음을 찾아낸다. 허투루 찍었던 사진. 허투루 찍어서 더 예쁜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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