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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자고 그런 게 아닙니다

가족만으로, 충만해진 남자

by 봄아범


제목 그대로다. 결혼기념일마다 코스프레를 하는 것도. 그 상태로 사진을 찍는 것도. 내가 하자고 그런 게 아니다. 아내의 제안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사람으로부터 충전을 받는 외향형인 나.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내향형인 아내. 의외의 면이 있다며 신기하게 여겼다. 나 또한 그랬다. 내가 좋아할 거라 생각하고 추천한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지 못했다. 초심자의 마음으로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준비했다. 평소에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은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의 캐릭터 옷을 입기로 했다. 일상에서 하지 않았던 옷차림과 분장. 스튜디오 섭외까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즐거웠다. 아내의 몸에 생각하지도 못한 생명이 찾아와 더욱 기뻤다. 2021년 12월. 아내와 나. 4개월이 된 태아까지. 세 사람은 북촌에 있는 스튜디오에 처음 방문했다. 시작은 언제나 서툴다. 그곳은 셀프사진관까지 겸했다. 주말에 사람이 붐빌 수 있다는 걸 간과했다. 환복 장소는 생각보다 협소했다. 직접 사진을 찍으려는 연인과 가족들 사이에 주어진 시간이 짧았다. 밀려가듯 조명 앞에 섰다. 미리 연습한 표정과 포즈를 서너 번 취했을까. 촬영이 끝나버렸다.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가는 차 안. 아내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 불만의 이유를 물었다. 아내는 양치기 아가씨 캐릭터 '보 핍'의 의상을 입었다.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느라 속치마를 잊었다. 캐릭터만큼 풍성하지 않은 모양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위로가 필요했다. 2% 부족한 것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전했다. 아내의 대답은 내 말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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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부터 아나운서를 꿈꿨던 소년. 2012년부터 종교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진행, 제작하는 남자. 2023년부터 가족과의 기록을 남기는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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