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새롭게 만나다
새벽의 10분은 귀하다. 늦잠을 자면 30분을 지각하고, 강제로 일찍 일어나면 반나절이 멍하다. 여행지에서 폭풍 같은 주말을 보낸 다음 날. 월요일 새벽 5시 50분. 일어나야 하는 시간을 이미 15분 넘긴 때에 부재중 전화가 찍혔다. 꿈에서나 볼법한 처음 마주하는 번호였다. 낯선 발신인에게서 차를 빼라는 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가족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주차장은 대부분 전쟁 중이었다. 협소한 공간 탓에, 조금이라도 늦게 단지에 들어오면 정상적인 주차가 어려웠다. 다른 차를 막고서라도 이중주차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럴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기어 변속. 언제든 밀 수 있도록 중립 기어를 박아야 하는 것이 예의였다. 다만, 정신이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어제의 핸들은 아내가 잡았다. 여행의 후유증으로 변속을 바꾸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아내에게 향하는 괜한 원망을 모자와 함께 누르며, 잠옷 위에 롱패딩을 둘렀다. 맨발을 운동화에 욱여넣으면서 대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콜백을 했다. 다급함 반, 짜증 반이 섞인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로 향하는 길이 뜀걸음으로 바뀌었다. 꼭대기 층에서 지하까지 달려가서 문을 힘차게 열었다. 더 굳건하게 문이 꿈쩍도 안 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우리 차는 똑똑한데? 아뿔싸. 내가 멍청했다. 자동차 키는 점퍼 주머니에 없었다. 여행지에 다녀오면서 파우치에 들어있는 그대로였다. 열쇠가 나를 놀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내 탓을 하고 싶었지? 열쇠를 두고 온 건 너잖아. 네 탓이야. 어때. 뭐라고 할 사람도 없지? 그러니까 화를 내지 마.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나한테 낼 수 없는 울분까지 아내에게 폭발시킬 만반의 준비를 했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듯이 문고리를 돌렸다. 마침내,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내의 얼굴은 주말 내리 병간호를 한 간병인의 피로가 그대로 묻어있었다. 그렇다. 나는 여행지에서 B형 독감 환자였다.
지금이 12시인지, 15 시인지도. 내가 누워있는 숙소가 604호인지, 705호 인지도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몸져누운 건 아니었다. 봄(태명)에게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눈썰매와 스키의 추억을 선물해 주자는 아내의 제안을 들을 때는 괜찮았다. 평창으로 향하는 자동차의 시동을 걸 때도 목이 칼칼한 정도였다. 강원도의 바람을 셔츠 한 장으로 맞아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안일했다. 짐을 이고 지는 동안 유약해진 면역력은 촛농처럼 흘러내렸다. 초를 다 녹여버릴 정도의 뜨끈뜨끈한 이마를 아내에게 맡긴 후, 그녀에게 들은 말이 여행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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