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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말을 걸다.

by 당근타르트


요즘도 가끔, 누군가와 처음 인사를 나누게 될 때면 마음이 살짝 굳는다.

어떤 질문이 나올까, 조심스럽게 상상해 본다.

“결혼은 하셨어요?”

“남편 분은 뭐 하세요?”

“아이는요?”

질문 하나하나가 나를 향한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안다.

그저 자연스러운 대화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도.


하지만 그 순간마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과 조심스러움으로 마주하게 된다.

혼자가 된 사람에겐, 때때로 세상이 너무 쉽게 말을 건넨다.


사별 이후의 삶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버겁다.

그리움, 책임, 경제적 변화, 부모 역할의 균형, 어디에도 완벽할 수 없는 하루들.

그런데 여기에 더해지는 건 종종 ‘사회의 시선’이다.

‘안쓰럽다’, ‘불쌍하다’, ‘뭔가 결핍된 사람 같다’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아도 분명히 느껴지는 어떤 눈빛들.


어쩌면 무심한 말보다 더 선명하게 마음을 할퀴고 가는 시선.

나의 얼굴에서 상실이 느껴지는 건가?

하고 거울 속에 나를 한참 동안 살펴보게 되기도 한다.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혼자가 된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나를 ‘혼자인 사람’이라 부르기 때문에

내 삶이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낸 이후의 삶은 텅 빈자리만 남은 것이 아니다.

슬픔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엄마이고, 누군가의 딸이며, 친구이고, 이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죽음으로 누군가를 떠나보내게 된 사람은 그저 슬픔에 머물러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작고 단단한 용기를 지닌 사람이다.


나는 그런 존재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결핍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삶이 멈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삶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조금 더 다정하고 조심스러워지기를 바란다.


다정한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나는 겪어본 사람으로서 안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시선이 어떤 날은 하루를 버티게 한다는 것도.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 속에서도 우리는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묵묵히 하루를 살아낸다.

때로는 무너지고 때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그 모든 시간은 ‘다시 살아가는 연습’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이가 지금 소중한 누군가와 이별하게 되었다면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은 결핍된 사람이 아니에요.

지금도 잘 살아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시선이 때로는 차가워도 그럴수록 누구보다 따뜻하게 내가 나를 안아줘야 해요.

밥은 꼭 챙겨 먹고 하루에 한 번쯤은 스스로를 다정하게 토닥여주세요.



우리의 슬픔은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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