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꺼진 엔진과 사라진 지도
회사는 매년 연말이면 조직 개편을 시도한다.
매년 크게 바뀔 듯 소문만 무성할 뿐, 대개는 큰 변화 없이 지나가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변화들이 몰려왔다. 직속 라인이 모두 교체되었다. 함께 일했던 동료는 다른 조직으로 이동했고, 예기치 못한 휴직자까지 생겼다.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변화는 또 다른 변화를 만든다.
변화가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났다.
오랜 직장 생활의 내공이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 자부했다.
착각이었다. 평소 같던 의욕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가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어제는 가치 있던 일이, 오늘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가 툭 던지듯 말했다.
“그건 당신이 배가 불러서 그래.”
“비전이 안 보이는 거네.”
못 들은 척 넘겼지만, 그 말은 밤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비전 상실’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나는 그대로인데, 환경과 동료와 리더가 바뀌었다고 해서 왜 나는 이토록 달라져 버린 걸까?
나는 똑같은데, 왜 어떤 이를 만나면 일이 즐겁고 어떤 이를 만나면 성과가 달라지는 걸까?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며 끊임없이 진로를 고민했다. 조직 문화 설문을 하면 늘 ‘비전’에 대한 이슈가 가장 크게 거론된다.
비전이 없다.
이것은 실체가 있는 말일까?
비전을 잃었다는 느낌을 심리학에서는 ‘실존적 진공(Existential Vacuum)’ 상태라고 부른다. 의미치료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은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의미는 우리가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우리는 늘 비전을 고민하며 그것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어쩌면,
비전은 찾는 것이 아니라 내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발자국일지도 모른다.
내 발자국을 확인하든, 아니면 비전을 다시 찾든.
이제 나를 위한 여정을 시작해 보려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