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수록 허무해지는 이유
영화 '어쩔수가없다' 마지막 대사가 계속 기억에 남는다. 아내 이미리(손예진)가 남편 유만수(이병헌)를 안고 눈물 흘리며 하는 말.
“그렇게 열심히 살지 말지”
열심히 살면 보상받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믿음을 깨뜨린다. 차라리 ‘열심히’ 살지 않았더라면,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관객들에게 이야기한다. 주인공 유만수는 열심히 살았던 것처럼, 열심히 죄를 짓는다. 영화는 호불호가 크다.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나에겐 재미가 있었다.
우리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을 받을 때면 불안해진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우고 있다고 했던 것이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15년이 지났다. 그리고 요즘은 인공지능(AI)이 세상을 먹어치고 있다.
Why Software Is Eating The World? - Marc Andreessen, 2011
AI Is Eating The World - Pietro Demicheli, 2025
세상의 변화만큼 잘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성실함’을 대하는 우리의 생각이다. 성실함은 칭찬받는 덕목이다. 오랜 시간 동안 최고로 평가받는 태도 중 하나이다. 그렇다. 성실함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 큰 충격에 빠진다.
성실함은 열심히 사는 것이다. 성실함에 대한 애정과 허망함을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무기력하게 경험할 수 있다. ‘열심히 살았는데, 왜?’라는 질문에 ‘어쩔수가없다’고 답한다. 영화가 너무 재미없다고 이야기하는 관객들을 향해 감독은 ‘어쩔수가없다’고 답한다. 왜냐면, 열심히 만들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리더 역할을 하고 있을 때, 후배가 찾아와 나에게 말해 주었던 피드백이 생각난다.
“선배님, 제 생각에… 열심히 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그 피드백이 그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리더는 깊은 생각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고민은 어렵다. 그래서 때로는 성실함이 도피처가 된다. 성실함으로 도망간다고?
답을 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논리와 이유를 만들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럴 때, 바쁘게 뛰어다니며 눈앞에 보이는 ‘해야 할 일’을 처리하다 보면 답답한 고민과 생각으로부터 좀 편해진다. 사람들은 바쁘게, 열심히 뛰어다니는 리더에게 뭐라 말하지 못한다. 성실함은 멋진 변명이 된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방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을 줄 모르는 데서 온다. –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팡세(Pensées)』’
성실함과 바쁨은 사뭇 다르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구현된다. 뜨거웠던 관계에 권태가 찾아오고 열심히 일했던 사람에게 번아웃이 찾아온다.
오래전에 읽었던, 톰 드마르코(Tom DeMarco)의 저서 『슬랙(Slack)』은 성실함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지나치게 효율적인 조직은 변화할 능력이 없다.(A corporation that is too efficient is incapable of change.)’ – 톰 드마르코(Tom DeMarco), 『슬랙(Slack: Getting Past Burnout, Busywork, and the Myth of Total Efficiency)』
성실함은 ‘효율’에 집중하고 비전은 ‘효과’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효율(Efficiency)과 효과(Effectiveness)의 비교다. 성실하게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으면,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착각을 준다. 이쯤 되면 성실함은 나를 배신한다.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일을 매우 효율적으로 하는 것만큼 쓸모없는 일은 없다.’ (There is nothing so useless as doing efficiently that which should not be done at all.)’ – 피터 드러커 (Peter Drucker)
비전이 사라진 자리에는 정체된 일상, 즉 해야 할 일만 남는다. 빨리 처리해서 ‘완료(Done)’로 만들어야 한다. 왜 하는지, 전략은 괜찮은 건지, 효과가 있는 것인지, 방향은 맞는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할 틈(여유, 공간, 슬랙)이 없다. 그래서 여유가 없으면 변화도 없다.
전 팀장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팀 회의 때였다. 팀이 추진하고 있는 일에 대한 논의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궁금해서 툭 던진 질문이자 말이었다.
“저는 이 일이 여전히 유효한지 모르겠습니다. 유효한 것인가요? 저는 의문이 듭니다.”
사람들은 생뚱맞은 질문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도 굴러 들어온 돌, 외부에서 막 합류한 사람이니 그동안의 이력도 모르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팀장은 사석에서, 내 질문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던 그 질문이 우리 팀에 가장 필요한 질문이었다고 했다. 나를 높게 평가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라고.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업의 의미를 반복적으로 질문하는 것에 대한 팀장의 평가였다.
바빠 죽겠는데, 열심히 달려야 하는데 지금 이 시점에 그런 질문을 하면 어쩌란 말이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효율과 효과를 비교하듯, 우리는 속도와 방향을 비교하고 스칼라(Scalar)와 벡터(Vector)를 이야기한다. '나는 왜 이토록 바쁜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여유'가 없다면, GPS 수신 불능의 상태와 다름이 없다. 이것이 비전 상실의 공포다. 나의 성실함은 나를 배신할 준비를 마친 상태다.
나는 요즘 비전을 상실했다. 회사에 출근하면 일에만 집중한다. 내 책상에는 해야 할 목록과 완료 유무로 가득하다. 정말 열심이다. 비전 상실을 회피하려고 성실했다는 생각이 몰려온다.
지금은 인공지능(AI) 시대이다. ‘지치지 않는 성실함의 끝판왕’이 등장했다. 나와 같은 ‘성실한 인간’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어떻게 더 열심히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대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우리의 성실함은 이제 ‘실행’이 아니라 ‘사유(思惟)’로 전환해야 한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이런 말을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나 성실함이 아니라, 정보를 선별하고 전체 맥락을 파악하는 통찰력이다."
글을 쓰는 마지막에 스스로의 검열이 동작한다. 우리는 누구나 생존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데, 성실함에 대한 고민이 너무 배부른 소리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그 검열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하고 마무리한다.
나에게 생존은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내 고민은 생존을 위한 자가 진단이다.
배부른 소리가 아니라, 길을 찾는 소리다. 내 삶의 욕구는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이는 본능이다.
처음에 성실함은 좋은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무조건 성실함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방향을 잃은 성실함은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주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그 자리에 단단히 고립시킨다.
그저 나는,
내 성실함이 올바른 방향으로 힘을 발휘하기를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