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의 배신
야구 여왕 시즌1을 재밌게 봤다.
스포츠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야구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성장한다. 그 모습이 감동적이다. 노력과 현실, 성장을 위한 아픔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감독과 코치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어떻게 보면, '이게 뭐라고 진심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어쩌면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인데 말이다.
‘스포츠는 지면 아파요 - 추신수, 야구 여왕’
모두가 잘하고 싶었고, 열심히 했었고, 최선을 다했기에 그 결과가 아팠나 보다. 그 진심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마지막 회, 출연진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에게 야구란?’
‘제2의 인생이다. 제2의 스포츠다. 진짜 내 종목이다. 도전이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설렘이다’라고 답한다. 설렘이란 단어가 참 예쁘다.
나는 오늘 책상 앞에 앉아서 그냥 하면 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왔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해왔던 방식 그대로 그리고 정성을 다해 일했다. 마음은 편했지만 마음은 미지근했다.
야구 여왕을 보면서, 나는 나를 투영했다. 나에게 현재와 다른 새로운 영역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에게 설렘이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추신수처럼, 나는 아키텍트를 키우는 아키텍트로서 정성을 다했다. 누군가의 성장을 보는 것은 행복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것 같아 진심을 다했다. 그런 면에서 추신수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요즘,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분야 아키텍트를 육성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내가 아키텍트로 성장했기 때문에, ‘아키텍트를 키우는 아키텍트’라는 코치 역할로 나를 정의했다. 직접 안타를 치는 즐거움보다 타인이 안타를 치도록 판을 짜는 역할, 일종의 ‘메타 플레이어’이다.
코치, 리더, 교육 담당자 입장에서는 ‘인정의 결핍’이 생기곤 한다. 후배(동료, 제자)의 성장은 보람차지만, 그것이 나의 성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의 성장을 돕는 것과 별개로 나만의 개인 종목이 필요해 보인다. 내가 뛸 운동장은 어디일까?
테니스 선수였던 송아(현 테니스 코치)는 야구를 전혀 모르던 사람이다. 공을 맞추는 테니스 특성 때문인지 공을 잘 맞춘다. 송아는 욕심이 있다. 잘한다. MVP도 받았다. 그런데 더 잘해서 MVP를 또 받고 싶어 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잘하고 싶은 마음, MVP를 받고 싶어 하는 마음, 주전 선발로 뛰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보인다. 물론 노력했는데 잘 안 돼서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인다.
모든 스포츠에서 우리는 인생을 배운다. 그리고 비슷한 결을 찾는다. 그래서 공감할 수 있다.
회사에서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기도 하고, 나의 노력과 열심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속상해하기도 하고, 나만 열심히 하고 있다는 착각이나 편향 때문에 불만을 느끼기도 한다. 주전으로 뛰는 사람, MVP처럼 빛이 나는 사람이고 싶지만 뒤에서 뒷바라지하는 사람으로 역할을 감당하기도 한다. 열심히 했는데 아쉽게 방출되는 결과를 보는 것처럼, 책임지는 리더자리에서 내려오기도 한다.
인정받고 싶고, 보상받고 싶다. 상대적 한계를 느끼고 타고난 재능과 노력 사이에게 갈등한다. 나만 진심이고 열심인 건가 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모두 우리에게 있는 욕구와 결핍들이다. 계속 고민하는 ‘비전 상실’도 결핍이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해 높은 평가를 기대한다. 그러나 팀 이동 후 계속 아쉬움이 있었다. 나를 영입한 팀장,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생각하며 내 실망감을 감추긴 했지만 평가 문제에 있어서는 줄곧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팀 이동 후 첫 평가 면담을 기억한다.
면담 장소에 도착해 자리에 앉는 동안 나는 팀장의 곤혹스러운 눈빛을 봤다. 나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나는 그 순간 아키텍트 특유의 설계 본능이 발동했다. 팀의 평화와 후배의 진급, 그리고 나의 대인배적 면모를 결합한 완벽한 시나리오를 짰다.
'부담 갖지 마세요. 제 고과 후배들 주시죠.' 그 순간 나는 내가 ‘존나 멋있다’고 생각했다. 영웅 서사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모니터에 찍힌 초라한 등급을 확인한 순간, 내 안의 영웅은 온데간데없고 억울함에 입술을 깨무는 속 좁은 사내만 남았다. 나는 멋진 선배, 대인배라는 환상에 비싼 값을 치르고 '나쁜 성적표'를 샀던 것이다. 말은 고귀했으나, 마음은 그 비싼 거래를 감당할 만큼 넓지 못했다. 이것이 내 민낯이다.
그 이후에도 비슷하게 행동했다. ‘후배를 챙겨주시죠.’
나는 생각보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멋있는 선배는 가면일 뿐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사실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
고과에 예민한 후배들을 보면서 부질없다고 속으로 ‘코웃음’ 치면서 정작 나는 코가 막혀 숨을 못 쉴 정도로 고과에 예민하게 직장생활을 해왔다. 이중적인 모습이 내 안에 있다. 나만 이상한 것인가?
이런 결핍이 오랫동안 쌓이니 또 다른 기회를 찾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항상 이전보다 훨씬 잘했다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늘 기대에 못 미친 평가를 받는다. 이럴 땐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어떤 실행을 유발하게 될까?
보상과 평가는 우리를 배신한다.
공정함을 기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공정함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회사의 고가 평가는 주관의 객관화라는 본질적으로 모순을 가지고 있다. 평가자의 편향, 최근 효과(Recency Effect) 같은 오류가 섞인 ‘주관적’ 판단을 ‘객관적’ 틀에 강제로 끼워 넣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정함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존중의 영역에 가깝다. 내 평가 데이터의 정확성이 아니라, 내 자존감의 상처 유무에 가깝다. 그래서 팀장이 면담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내 노력과 수고는 1인칭 생중계로 본다. 타인의 노력은 3인칭 요약본이다. 나는 항상 열심히 하는 것 같고 타인은 아닌 것 같이 느낄 수 있다. 자기 위주 편향(Self-serving bias)이 작용한다. 나에게도 논리적 오류가 발생하다.
회사의 평가는 나에 대한 ‘정답’은 아니다. 회사가 가진 ‘거울’의 상태일 뿐이다. 서글프지만 담담하게 수용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거울은 나를 왜곡하여 비출 수 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나만의 ‘야구’를 시작해야 한다.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존나게 멋있어’로 시작했다가 ‘존나게 실망’하는 모습이 인간적이다. 모순을 동력 삼아 다음 단계로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