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의 피로

정서적 비용에 대한 보고서

by 행복한자유인

나는 강의나 발표를 좋아한다. 그래서 사내 우수 강사, 최우수 강사상도 받았다.


발표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나에게 잘했다, 재밌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많지 않다. 난 나의 부족함을 더 잘 기억한다.


큰 강당에서 발표한 일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게 집중했지만 나는 졸고 있는 한 사람이 유독 눈에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집중하는 99명의 사람보다 불편한 표정을 보이는 한 사람의 눈치를 살핀다.


나는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대학교 때는 학교 근처에서 어학을 상담해 주는 누나의 말에 혹해 1년 치 어학 교재를 구매하기도 했고, 사회 초년생 때는 보험 상담사와 통화하다 가입한 보험의 개수가 여럿 있었다.


회사에서는 사람들의 요청에 즉각 반응하는 편이었고, 윗사람의 유머에는 배를 잡고 큰 웃음으로 화답했다. 열심히 하고 거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쳐내기보다는 떠안는 일들이 많았다.


내게 주어진 일들이 많아지면 내 존재감이 커진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동료들이나 선배가 나를 칭찬하곤 했는데 칭찬의 결과는 해야 할 일들과 부담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칭찬을 좋아하지 않았다.


동료 피드백 중 99%의 긍정보다 1%의 부정이 99% 크기로 느껴졌다. 나는 미움받는 걸 유독 싫어했고, 비난, 비판을 두려워한다. 찬성, 반대로 나뉘어 전투하듯 토론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토론에서는 논리가 아닌 감정이 느껴진다.


영희와 대화할 때는 영희의 편이 되고 주고, 철수와 이야기할 때는 철수 편을 들어준다. 공감을 잘하고 상대의 긍정적인 면만 말한다. 그래서 때로는 거짓이 포함될 때도 있다.


사람들이 행복한 것이 좋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자 하는 것이 내 태도이다. 속마음과 다를 때가 많이 있기 때문에 감정 노동, 감정 소비를 많이 하는 편이다.


나의 단점이지만 장점이기도 해서 나는 이 장점을 살려 개발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일들에 정성을 쏟기도 했다. 나와 회의를 하거나 내가 진행하는 일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명불허전’이라는 피드백을 줄 정도로 나에게 좋은 평가를 해준다.


개발자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했을 땐 ‘아키텍트계의 나영석 PD’라고 극찬을 듣기도 했다. 개발자 행사에서 추첨 선물에 당첨되어 행복하게 웃으며 뛰어가는 사람에게 하이파이브를 치며 함께 즐거워하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사람들의 행복을 추구하고 사람들의 웃음을 기대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는 것, 나를 싫어하는 것, 나를 비판하는 것에 취약하다. 그 취약함을 공격하는 사람도 있다.


회사에서 내가 받은 상들은 이런 장점들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결국 나는 관계 중심의 사람이다. 회사 내 조직 이동도 관계에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면, 뜻이 있어 기획팀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팀장과 실장이 정성을 다해 회유해서 포기한 일도 있었다.


오래전 회사에서 했던 심리 검사에서 나를 ‘타인의 눈으로 빛나는 다이아몬드’라고 표현했다. 인공지능은 이런 말을 한다.


‘타인의 행복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한 예술가가 치르고 있는 정서적 비용에 대한 보고서 같아요.’


흥미롭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관심 없는 한 개인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상당히 피곤할 것 같다. ‘비전 상실’를 생각하다 보니, 지극히 깊은 한 개인의 이야기까지 내려온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한다. 현상 이면에 있는 여러 이유들, 그리고 그 이유가 가지는 보편적 원인들을 생각해야 한다. 한 개인의 이야기가 타인의 입장에서 피곤한 것처럼, 누구에게나 각기 다른 모습 이면에는 ‘피곤함’이 있다. 채우지 못한 ‘결핍’이 있다. 말하지 못한 ‘억울함’이 있다.


이 글은 어쩌면 소위 말하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Good Person Complex)’에 대한 이야기다. 소위 ‘착한 사람’의 피로감, ‘거절하지 못해 쌓인 마음의 먼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내가 착한 사람이란 뜻은 아니다. 충분히 알고 있다.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지나치게 신경 쓰다가 맛이 간 사람의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가족과 같은 회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사회생활에서는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배웠다. 사람들은 나의 네트워크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는 ‘관계 중심'에서 '자기중심'으로의 전환을 꿈꾼다. 아울러 ‘약한 유대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을 더 지향한다. 나에게는 강한 관계로서의 ‘친함’이 중요했었다. 무의식적으로 ‘깊고 끈끈한 관계’만이 가치 있다 생각했나 보다.


비전을 상실하고 내가 깨닫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관계에 대한 생각이다. 내가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던 ‘관계’가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관계의 배신’을 경험한다. 이런 경험은 나에겐 임팩트가 큰 한방이다. 덕분에 싫어하는 사람이 명확해졌고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굳이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타인의 눈으로 빛나는 다이아몬드'보다 ‘내 안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투박한 원석’이 되고 싶다. 내면의 만족에 관심을 두고 싶다.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켜야 하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불가능한 세상을 꿈꿨다. 그런 세상을 꿈꿨으니 ‘비전 상실’을 처절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면,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리라.


이 콤플렉스는 나를 독보적인 위치로 올려놓은 동력이자 힘이었다. 덕분에 충분히 행복하고 좋았다. 다만 모든 성공에는 실패 인자가 있는 것이고, 대가가 있었을 뿐이다.


이 콤플렉스는 피곤함을 준다. 피곤하면, 잠시 쉬면 된다. 인지하고 있으면 된다. 과로로 쓰러지지 않도록 관찰하고 관리하면 된다.


모두를 만족시키려 애썼던 그 시간들이 헛된 것은 아니다. 그 덕분에 많은 것을 얻었다.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법도 배웠다. 다만 이제는 그 행복의 명단에 <나>를 가장 먼저 올리려고 할 뿐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나는 여전히 투박한 원석이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를 깎아내지 않는다. 나라는 원석이 가진 고유한 결을 따라, 나만의 빛을 내며 걸어가겠다.


월, 일 연재
이전 08화나만 진심이었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