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거울에 비친 내 얼굴
유명한 분이 팀장으로 오셨다. 몇 년 뒤, 그분이 퇴사하실 때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해 질문했다. 그분은 이렇게 답했다.
“나를 회사가 전문가로 영입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퇴사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존경했던 분이었기에 너무 아쉬웠다. 회사와 소통의 언어가 달랐던 것일까? 전문가로서의 자부심도 있으셨고, 회사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셨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누구나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가치가 있다는 것은 상대방의 반응에서 나온다. 가치가 있다는 것은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을 배운다.
그분은 나와 세대가 달랐음에도 내가 좋아하는 문화적 취향-애니메이션, 게임, 드라마, 영화, 컴퓨터-을 이해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공통된 관심사가 있어 더 좋아했나 보다.
관심사가 일치하면 피곤하지 않다. 반대로 관심사가 다르면 피곤하다.
전략과 해결 방법이 다르더라도, 문제 인식과 추구하는 가치가 유사하면 에너지가 생기는 소통을 하게 된다. 반대로 가면 피곤해진다. 종교와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싸우게 되는 일이 빈번한 것도 유사한 이유다.
우리는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며 산다. 특히 회사라는 조직은, 내가 생산해 내는 일의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그 증명이 실패하거나 관심을 잃으면 내 일의 가치는 사라진다.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소통 방식의 문제일 수 있고, 좁히기 어려운 가치관의 차이일 수 있으며, 문제를 바라보는 전문성과 경험의 차이일 수 있다. 조직의 성과에 기여하지 못하거나 조직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때 가치는 소멸된다. 나는 쓸모 있는 존재인가? 무섭고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가지고 있다. 내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일 때가 많다. 그래서 내 생각과 일치하기 때문에 정답이라 생각하지 틀린 정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한다. 그러다 보니, 나와 다른 상대방을 답답하게 여기곤 한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다.
물론,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서로 존중하는 아름다운 사회’는 경험하기 쉽지 않다. 모두 자신의 경험을 정답으로 생각하며 살기 마련이다. 서로 다 자기가 맞다고 서로 다른 강도로 주장한다. 래퍼 이영지의 명언이라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을 봤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나를 혼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방심하기가 쉽다. 내가 하고 있는 게 다 맞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나를 혼낼 수 있는 사람을 옆에 두는 게 최고다."
일을 하다 보면, 가끔 벽에 부딪친다. 내 이야기가 더 이상 중요한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금세 지치게 된다. 어느새 내가 그동안 느꼈던 자부심-나 스스로 가치 있다고 믿는 마음-은 저 멀리 찾을 수 없는 곳에 가버린다. 다행히 훌륭한 리더를 만나면 그 자부심을 찾아주기도 한다.
자부심이 쪼그라들 때쯤 나타나는 강력한 빌런이 있다. 그 빌런의 이름은 “비교”다. 가끔 친구인지 착각할 정도로 가깝다.
나 빼고 모두 잘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압박을 경험한다. 바짝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타인을 향한 부러움은 극대화된다. 그리고 곧 두려움이 되어 찾아온다. "다들 저만큼 가 있는데, 나만 여기서 뭐 하고 있지?", “다들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지고 있네?”라는 느낌이 계속 괴롭힌다.
심리적 부담은 점점 커진다. 나는 내 돈 내고 시간 내서 배운 적 없는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을 장착하고 있고, 학습한 적 없는 무기력을 배우기 시작한다. 고귀한 줄 알았던 나의 가치가 환경에 의해서 부정당하기 시작한다. 내 책임감과 노력의 가치가 저렴해지고 내 자부심은 초라해진다.
문제의 시작이 어디였을까? 글 초반에서 찾았다. 나는 가치가 상대방의 반응에서 나온다고 했다. 나에게 가치란 타인의 인정에 기반한 가치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타인은 내 가치를 모르는 ‘무지한 사람’ 일 수 있다. 타인에 의존하는 가치가 얼마나 취약한지 바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자신만의 핵심 가치, 고유한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
조직은 우리를 평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대로인데 나에 대한 평가는 계속 달라진다. 팀장이 누구냐에 따라 내 역량이 3(중간)이 되기도 하고 5(최고)가 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이것이 내 문제라기보다는 환경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그 환경을 거울로 생각하면 명쾌해진다. 그 거울이 깨졌다면? 혹은 착시라면?
내 강점이 약점으로 보이고 내 자부심이 갑자기 초라하게 보인다면, 어쩌면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거울의 문제일 수 있다.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Omae Kenichi)가 그의 저서 『난문쾌답(難問快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첫째는 시간 배분을 달리하는 것, 둘째는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셋째는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나는 문제의 원인을 내 안의 어떤 것에서 찾는다. 『난문쾌답(難問快答)』에서는 ‘복잡한 문제일수록 명쾌하게 행동으로 답하라’고 조언한다.
나는 ‘비전 상실’이라는 내 문제 앞에 어떤 행동으로 답할 것인가? 깨진 거울 앞에서 표정을 바꾼다고 달라질 것이 있을까?
타인 역시 내 가치를 비추는 유일한 거울이 아니다. 그저 수많은 거울 중 하나일 뿐이다. 그 거울이 내 모습을 일그러뜨린다고 해서 내 본질이 변하는 것이 아님을, 나는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