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1] 멀쩡하게 회사 다니던 내가 정신과에 갔다

그리고 왜 지금은 괜찮아졌나

by 봄날의 초원

처음에는 몰랐다.

잠이 얕아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피곤했다.


회사도 그대로였다.

가정에도 별일 없었다.

그래서 이유를 찾지 않았다.

찾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자주 빨라졌다.

메일을 열었다가 닫았다.

닫은 뒤에도 심장은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들 그 정도는 안고 산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버티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버티는 게 능력이라고 여겼다.


결정적인 날은 회의실에서 왔다.

회의는 평소처럼 진행되고 있었다.

상사가 질문을 했다.

어렵지 않은 말이었다.


대답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멈췄다.


회의실의 시간은 흘렀다.

나만 정지해 있었다.

누군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날 알았다.

이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갔다.

이름을 말하고 앉았다.

의사는 오래 묻지 않았다.

나는 오래 대답했다.


이야기를 하던 중

의사가 짧게 공감의 말을 했다.

그 한마디에

괜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이 조금 부끄러웠다.


약을 받았다.

봉투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손에 무게가 남았다.


약사에게 검정색 비닐봉지를 달라고 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며칠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괜히 시작했나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몸이 먼저 반응했다.


가슴이 조용해졌다.

그다음에 생각이 따라왔다.

생각은 늘 몸보다 늦었다.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신 거리가 생겼다.

불안이 나를 덮지 않고 옆에 머물렀다.


‘그냥 그런가 보다’라는 말이 가능해졌다.

이 말은 체념이 아니었다.

과잉 해석을 하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까웠다.


약 때문인지, 시간 때문인지, 운동 때문인지는 모른다.

아마 약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의미를 붙이며 살았다.

굳이 필요 없는 인정에 매달렸다.

해야 할 일을 찾기보다

시킨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 되었다.


팀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뒤

나는 점점 안전한 선택만 했다.

불안은 거기서 자랐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괜찮다.

완전히는 아니다.

다만 예전처럼 겁먹지 않는다.


불안이 오면

‘아, 왔구나’ 하고 본다.

쫓아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불안은 없애는 대상이 아니었다.

다루는 대상이었다.

거리만 유지하면 된다.


정신과에 다닌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았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갔던 것이다.


요즘도 가끔 가슴이 빨라진다.

그럴 때는 숨을 고른다.

메일을 바로 열지 않는다.


버티는 방식도 달라졌다.

이를 악물던 버팀에서

속도를 조절하는 버팀으로 바뀌었다.


나는 여전히 일하고 있고

여전히 불안하다.

다만 그 둘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불안은 나의 일부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당신은 불안과

어떤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