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2] 유지하려는 사람과 앞서가려는 사람

커리어에서 ‘유지’는 정말 안전한 선택일까

by 봄날의 초원

아무 일정도 없는 날이었다.

회의가 없었다.

메일도 잠잠했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미뤄둔 것부터 처리했다.

시간이 빨리 흘렀다.


이런 날이면

지금 상태로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움직여서 흐트러질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나는

새로운 판을 벌이지 않는다.

이미 돌아가는 것들을 정리한다.


그 편이 편하다.

몸도 덜 쓰인다.

일이 문제없이 지나간다.


며칠 뒤

지인 가족과 식사를 했다.

아이들 목소리가 시끄러웠다.


함께 식사한 형님은

요즘 준비하는 게 있다고 했다.

현재가 아닌 미래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대신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만 말했다.

긴 대화는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그 말들이

내가 최근에 피하고 있던 장면 같았다.


요즘 나는

시키는 일을 정리하는 데 익숙해졌다.

새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형님은

앞을 보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느라 앞을 보지 못했다.


속도가 다르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팀장이라는 말은

나를 보호해 준다.

동시에 나를 가둔다.


요즘 나는

시키는 일을 정리하는 데 익숙해졌다.

새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게 안전해 보였다.

괜히 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대신 마음 한쪽이 조금씩 불편해졌다.


일이 싫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이 상태가 제일 설명하기 어렵다.


엑셀을 켰다.

대출이자 항목에서 손이 멈췄다.

그 줄은 늘 같다.


몇 달은 버틴다.

조금 더도 가능하다.

그래서 뭔가 싶었다.


숫자가 버텨준다고

내가 버티는 건 아니었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나 자신을 설득할 수는 있었다.

설득이 오래 갈수록 몸이 먼저 반응했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상태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조용히 닳는다.


눈에 띄지 않게 줄어든다.

그래서 나중에야 알아차린다.


앞으로 가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쪽에도 넘어지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여기에 그대로 서 있는 것도

안전해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느낀다.


지금 이 자리는

내가 오래 머물 곳은 아닌 것 같다는 감각.

그 감각이 요즘은 자주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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