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3] 착한 척을 선택해 온 시간

팀을 위한다는 말 뒤에 숨었던 것들

by 봄날의 초원

회의가 끝나면

늘 같은 순간이 온다.

말해야 할지,

말하지 말아야 할지.


팀원이 항상 일을 잘할 수는 없다.

의욕이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지 못하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그런 경우에는

옆에 앉아 차분히 대화한다.

조심스럽게 말을 고른다.


표현은 늘 비슷하다.

조금만 더 정리하면 좋겠다는 말.

방향은 괜찮다는 말.

다음에는 더 나아질 거라는 말.


나는

질책하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는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착한 팀장처럼 보인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아무리 이런 과정을 반복해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말은 반복되고

상황도 반복됐다.


그 사이

나만 빨라졌다.

팀원이 하지 못한 일을

내가 채우기 시작했다.


회의 자료는

밤에 다시 고쳐졌다.

보고서는

내 손에서 마무리됐다.


다음 날

상사는 묻는다.

왜 이렇게 됐느냐고.


나는 말한다.

내가 놓쳤다고.

내가 더 챙기지 못했다고.


팀원의 이름은

거기 없다.

언제나 그렇다.


그 이름을 말하면

나는 나쁜 팀장이 된다.

책임을 떠넘기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모든 책임은 항상 나였다.


그 선택이

팀을 보호한다고

생각했다.

나름의 정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상해졌다.


질책받아야 할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음 일을 받는다.

나는 다음 보고를 준비한다.


팀은 조용하다.

갈등도 없다.

하지만 긴장도 없다.


어느 날

상사는 말했다.

내 업무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박하지 않았다.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팀원일까.

아니면

나 자신일까.


착한 척은 편하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착한 척은

항상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은

조용히 나에게 돌아온다.


판단하지 않은 대가.

말하지 않은 대가.

냉정하지 않은 대가.

갈등을 피한 대가.


그 대가는

성과로 돌아오지 않는다.

지친 얼굴로 돌아온다.

지저분한 환멸과 자기부정으로 온다.


나는 어느 순간

팀을 이끌고 있는지

아니면

덮고 있는지

구분하지 못하게 됐다.


착한 팀장은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좋은 리더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말을 고른다.

오늘도 이름을 지운다.


아직

착하지 않을 용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확신은 없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나는

팀을 위해서라기보다

욕먹지 않기 위해

착해져 왔다.


그 선택이

언제까지 통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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